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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검성이 요동군,요서군에 있을 수 없다는 결정적 증거 by 창조양자역학

왕검성이 요동군,요서군에 있을 수 없다는 결정적 증거








왕검성= 평양 =낙랑군에 있다는 강단의 주장은 이미 논파했다.
그럼 이번엔 재야학도의 왕검성 = 요동 혹은 요서 존재설을 논파하자.




(강단사학계와 재야사학계가 각각 주장하는 왕검성 위치)










""요동태수는 위만을 바깥 신하로 삼을 것을 약속하여 국경 밖의 오랑캐를 지켜 변경을 노략질하지 못하게 하는
한편, 모든 만이의 군장이 중국에 들어와 천자를 뵙고자 하면 막지 않도록 하였다. 천자도 이를 듣고 허락하였다.
이로써 위만은 병위와 재물을 얻게되어 그 주변의 소읍들을 침략하여 항복시키니, 진번과 임둔도 모두 와서 복속하여
그 영역이 사방 수천리가 되었다." -사기 조선열전



긴 설명이 필요없다.







그래도 긴 설명이 필요한가?









왕검성이 요동군 험독현에 있다면 위만조선 멸망 후 세워졌다는 현도,진번,임둔,낙랑이 왜 요동에 있지않단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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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명림어수 2012/03/23 01:29 # 삭제 답글

    일종의 순환논법이군요.
    왕검성이 요동/요서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중에
    요동/요서군이 저기 있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테니...

    다소 긴 설명이 필요할 듯........
  • 창조양자역학 2012/03/23 01:33 #

    음.., 그러면 또 글을 올려야겠군요. .........................,
  • 창조양자역학 2012/03/23 06:31 #

    보충 설명 추가했습니다.
  • ddd 2012/03/23 07:40 # 삭제 답글

    요동 요서의 위치가 어딘가가 핵심 쟁점인데 그걸 무시하고 저렇게 논리를 전개하면 어쩝니까.
  • 창조양자역학 2012/03/23 08:17 #

    요동 요서의 위치가 어딘가냐를 논하는게 무의미하기때문입니다.
  • 창조양자역학 2012/03/23 08:18 #

    '동북아역사재단'에서 편찬한 '요동군 연구'를 보시면 요동군 관련 고고학 연구가 모두 이루어져
    진나라 때부터 한나라 때~~광개토 때까지 요동군 위치를 일정했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 글쎄요아닌듯 2012/05/16 14:20 # 삭제 답글

    진대의 공지라는 말은 요동 외에는 다른 곳을 찾을 수 없게 하는군요. 진이 6국을 공격했을 때 연멸망후 요동으로 이주해 다시 세력을 키웠던 연왕을 토벌했던 일이 있습니다. 그게 진이 동쪽으로 가장 멀리 원정했던 것이었죠.
  • 제홍씨帝鴻氏 2012/05/16 20:17 #

    진대 공지는 위만 때 아무의 영역도 아닌 곳이라고 나옵니다. 그니까 요동이라고 보긴 힘듭니다. 위치 설명으로 보아 길림이라고 보는게 적당.
  • 제홍씨帝鴻氏 2012/05/16 20:18 #

    길림의 환인,집안시
  • 그건아닌듯 2012/05/16 21:35 # 삭제

    아무 영역도 아니니까 요동반도죠. 요동군의 인구는 무척 적었고 사기 화기열전에 보면 요서와 요동을 인구가 적고 외딴 곳이라고 소개합니다. 야인들의 습격이 잦다고 하죠. 심지어 후에 대도시로 성장하는 연조차도 당시 개념으로는 머나먼 변방인 겁니다. 나중에 기사를 보면 요서지역에 도로를 놓다가 한의 국고가 탕진되어 비판하는 이야기도 많이 나오죠.
  • 그건아닌듯 2012/05/16 21:38 # 삭제

    그리고 그전에 진나라가 연을 멸망시키자 연왕이 도망쳐 다시 정착했다가 토벌당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이 먼 변방에 다시 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뭔가 기반이 될만한 것들을 남겨둘 이유가 없는 것이죠. 한초에 요양에 일부 병력이 주둔은 합니다만 그게 다였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고조선과 한 사이의 공백지라는 의미에서 요동반도 외에는 답이 없어요.
  • 제홍씨帝鴻氏 2012/05/16 23:03 #

    요동반도가 허구라는건, 요동군이 거기에 있기때문이죠. 위만조선이 멸망한후 현도 진번 낙랑 임둔을 설치햇다하지. 요동군을 설치했다는 말은 없잖아요?
  • 제홍씨帝鴻氏 2012/05/16 23:04 #

    위만이 요동으로 갔다는 말은 없습니다. 요동의 요새를 빠져나와 동쪽으로 패수를 건너 상하장으로 갔다고하죠.
    고구려의 연남산묘지명에 패수는 졸본의 강 비류수이며 상하장은 졸본 일대로 볼 수 있습니다.
    졸본 일대 부근에 '상은태'현이라고 하는데. 상하장과 이름이 유사하다는건 이미 위만조선카테고리 글에서 언급했습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5/16 23:10 #

    한나라가 진나라의 요동외요를 지키기가어려워 후퇴하여 진개의 요동 옛 요새를 수리하였다고합니다.
    요동외요란 '요동의 바깥 요새'란 뜻입니다. 그리고 고조선과 패수浿水를 국경으로 하였다고합니다.

    한서지리지 어디에도 요동군에 패수浿水라는 강은 안흐르고 다만 패수沛水라는 짝퉁 강이 흐르지만 글자가 틀립니다.

    고로 요동의 바깥 요새는 요동 이외의 땅인 청천강 일대에서 찾아야하며 이렇게 볼 경우 거리가 멀어서 지키기 어려워 요동으로
    후퇴하였다는게 성립이 됩니다.

    애초에 이런 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이 정해지는게 고조선 준왕 시절일 뿐더러 .., 세형동검문화의 준왕 시절 고조선으로선 청천강을 넘어봣자 졸본,국내성 일대의 고구려족과 연합하여 졸본,국내,압록강 국경선만 사수하는게 고작입니다.

    세형동검문화도 청천강 이남으로만 나타나니깐요.

  • 글쎄요아닌듯 2012/05/16 14:23 # 삭제 답글

    또 요동군 이야기를 하시는데 요동군의 중심지 요양은 요하와 접하고 있는 군사요새였죠. 이 요새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나오고 위만이 이주할 때 지났던 요새도 이 요양의 요새로 보고 있습니다. 요하는 요동반도 서쪽경곌르 가로지르는 강이죠. 요동반도 중앙을 가로지르는 산맥에 의해 고조선과 한의 세력권이 갈려있었다고 본다면 고조선의 번국으로 시작한 위만조선은 이 요하와 산맥 근처 어디에 있어야만 하죠
  • 제홍씨帝鴻氏 2012/05/16 20:17 #

    요동요새가 요동의 요새라는건 동의합니다. 요양이거나 아니면 후한서 고구려전에도 나오는 고구려후 추를 왕망의 신하 엄우가
    요새로 유인하였다는 그 요새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녀산성의 서북쪽 어딘가에 '(요동)요새'가 있다고보이네요.
  • 글쎄요아닌듯 2012/05/16 14:26 # 삭제 답글

    이 요양은 후에 고구려의 요동성이 되는 곳이고 ... 상하장이라는 해석을 요즘 희한하게 하는데 원래 그 문장에서 상하 라는 말은 왕래한다는 동사입니다. 장은 장쇄를 뜻하는 글자인데 1950년대 이후 성벽이나 성문에 대한 고래의 개념이 희박한 인간들이 그 글자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해석을 하더군요. 그냥 도시나 마을인가부다 하고 대충 해석을 하니까 상하장에 정착했다 같은 희한한... 찜찜한 해석이 나오죠.
  • 제홍씨帝鴻氏 2012/05/16 20:14 #

    상하장, '상은태'현. 이 두 개의 연관성에 대해선 이미 글을 여러개썼습니다. 상하라는 말이 왕래를 한다는 것에 대해선 어떤 명확한 증거가 없어서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 글쎄요아닌듯 2012/05/16 14:30 # 삭제 답글

    장 이라는 글자는 '반드시' 성벽을 두르고 있는 도시거나 혹은 그 성벽에 지나는 문을 뜻하는겁니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상하장에 정착했다 이런 소리를 하려면 돌로된 성벽이 있는 큰도시가 두개나 비어있었다는 어이없는 이야기가 되죠. 그게 아니고 한과 새외를 나누는 요새의 문을 왕래하면서 사람들을 모았다고 하면 굉장히 이해가 쉽게 납득이 되는것인데도. 이 해석을 받아들이게 되면 한과 새외를 나누는 요양요새의문과 위만이 정착한 곳은 상당히 가까웠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 글쎄요아닌듯 2012/05/16 14:35 # 삭제 답글

    전쟁이야기로 돌아가서 요동반도에는 큰 강이 세개가 흐릅니다. 요하와 압록강 사이에요. 그중에는 패수(한자가 좀 다르다) 도 있죠. 다른 곳에서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거기에 사서에 나오는 세강 다 있습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5/16 20:16 #

    요동반도에는 위만조선이 있었다면 그에 따른 유물 유적이 나와야되지만 한무제 당시에도 이 지역에 한나라 문물들이 많이 나오는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위만조선이 망한 지역에 현도 낙랑 진번 임둔을 설치했다는데. 왜 요동군을 설치했다는
    말은 없을까요? 이런 모순점도 생각해야합니다.
  • 그건아닌듯 2012/05/16 21:43 # 삭제

    순서를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위만조선이 준왕과 전쟁을 벌여 준왕을 밀어낸 것이 먼저고 한과 위만조선이 전쟁을 한 것이 두번째입니다. 당연히 위만조선의 영토에는 준왕의 영토가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준왕이 머문 고조선의 후기 도성은 평양근처였을 것으로 추정되죠. 위만조선은 요동에서 뿌리를 내리고 준왕조선의 변경백으로서 시작했고 그곳이 그들의 근거지였다는 것을 부인하려고 하시는 이유는 이 준왕조선과 위만조선을 구분하는데 혼동이 오시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5/16 23:02 #

    위만이 요동으로 갔다는 말은 없습니다. 요동의 요새를 빠져나와 동쪽으로 패수를 건너 상하장으로 갔다고하죠.
    고구려의 연남산묘지명에 패수는 졸본의 강 비류수이며 상하장은 졸본 일대로 볼 수 있습니다.
    졸본 일대 부근에 '상은태'현이라고 하는데. 상하장과 이름이 유사하다는건 이미 위만조선카테고리 글에서 언급했습니다.
  • 그건아닌듯 2012/05/16 23:23 # 삭제 답글

    요동요새에서 해안을 따라 남동쪽으로 가면 요동의 패수가 나옵니다. 곧장 동쪽으로 가는 길은 천산산맥이 가로막고 있죠.
  • 제홍씨帝鴻氏 2012/05/16 23:27 #

    요동요새에서 동쪽으로 패수를 건너야지. 남동쪽으로 가면 어쩝니까 ;; 그건 패수를 건너는게아니라 따라가는 격인데.
    그리고 애초에 문현,번한현의 패수는 그 패수가 아니라 이 패수沛水임.
  • 제가 알고있는 2013/08/13 22:11 # 삭제 답글

    한단고기에 보면 한사군의 위치가 요동 요서 지방에 위치했다고 나옵니다. 그당시 부왕 준왕이 위만에게 찬탈 당하면서 요령에서 평양쪽으로 도읍을 옮겼다는 학설이 통설이 되고 있습니다. 그로인하여 준왕은 자신이 한왕 이다라며 평양에 도읍을 옮기게 된것입니다. 그러므로 왕검성은 요령지방에서 평양으로 준왕이 옮겨갔으며 요동지방에 있던 위만은 한에게 공격당하여 한사군이 설치당하게 되는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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