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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만이 도읍한 '상하장'의 지명의 뜻은 고구려였다...... by 창조양자역학

위만이 도읍한 '상하장(上下鄣)'의 지명의 뜻도 고구려(高句麗)였고!
상하장도 고구려 초기 도읍 졸본에 있었다......



왕검성의 위치 논증 1탄글   에 이어서


드뎌 제 2 탄.....!!!!!!!!!! 개시합니다~!









* 주의사항: 이 글의 저작자는 저이며 이 글에서 말하는 주장은 저의 뇌에서 나온겁니다. 그니까 여러분들이 했다고 거짓말치거나
논문에 멋대로 인용하지마세요. 인용할려면 출처 밝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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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96년 위만이 동쪽으로 도망하여 요동의 요새를 빠져나와 패수를 건너 진나라의 옛 빈 땅인 상하장(上下鄣)에
살게되었다. 점차 진번,조선의 만이와 옛 연,제의 망명자를 복속시켜 거느리고 왕이 되었으며
왕검에 도읍을 정하였다."(
사기,한서 조선열전)



상하장(上下鄣)이란 '위의 성','밑의 성'의 뜻이다.
위만은 상하장에 살게된 뒤 어디로 옮겨갔다는 기록은 위만조선에 관한 각종 기록들 어디에도 안 나온다.
단지 거기에서 세력을 불리고 불리다가 왕검에 도읍을 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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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상하장上下鄣=왕검성=위만의 중심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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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전세계의 어떤 역사학자,역사학계 심지어 재야사학자도 ..,
아무도 이 상하장(上下鄣)의 위치를 찾아내지못했다...!



                                                                 (뭐?????!!!!!!!!!!!!!!!!)




이 상하장(上下鄣)의 위치만 찾아낸다면 위만조선의 수도 왕검성을 찾을 수 있다.







                                                             (뭐라고??????!!!!!!!!!!!!!!!!!)





상하장(上下鄣)의 위치에 대한 단서에 대한 기록과 그 요약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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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들의 단서 

"기원전 196년 위만이 동쪽으로 도망하여 요동의 요새를 빠져나와 패수를 건너 진나라의 옛 빈 땅인 상하장(上下鄣)에
살게되었다. 점차 진번,조선의 만이와 옛 연,제의 망명자를 복속시켜 거느리고 왕이 되었으며
왕검에 도읍을 정하였다."(
사기,한서 조선열전)

"위만이 준에게 말하길, 서쪽변방에 거주하도록 해주면 중국의 망명자를 거두어 조선의 번속이 되겠다고
준을 설득하니 준은 그를 믿고 사랑하여 박사에 임명하고 규를 하사하며 백리의 땅을 봉해주어 서쪽 변경을
지키게 하였다. 위만이 중국의 망명자들을 유인하여 그 무리가 점점 많아지자 사람을 준에게 파견하여
속여서 말하기를, "한나라의 군대가 열 군데로 쳐들어오니 왕궁에 들어가 호위맡기를 청합니다."
하고는, 드디어 되돌아서서 준을 공격하였다. 준은 위만과 싸웠으나 상대가 되지못하였다."-[
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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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서들의 요약


0. 요동의 요새를 빠져나와서 패수를 건넜다는걸 보면 절대 요동은 아니다.

1. 패수의 동쪽

2. 진나라의 옛 빈 땅이다. 즉 조선의 영역이 아니다. 조선의 영역도 아닌 곳에 위만이 거주하여서
준에게 이 곳에 살게해주면 조선을 지켜주겠다고 한 것이다.

3. 진나라의 옛 빈 땅은 '상하장(上下鄣)'이라 불린다.

4. 조선의 서쪽 변방의 백리 밖에 안되는 땅. 조선의 서쪽 변경

5. 중국계 망명자들이 드글드글거리는 땅(조선계보다는 중국계가 훨씬 많은 땅)

6. 위만이 상하장에 살게된 뒤 어디로 옮겨갔다는 기록은 위만조선에 관한 각종 기록들 어디에도 안 나오며
단지 거기에서 세력을 불리고 불리다가 왕검에 도읍을 정하였다라고 하므로 조선 땅과는 무관한 상하장에
왕검성이 있다.

7. 위만이 거주할 시 조선,한나라,진나라 어느 누구의 땅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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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상하장(上下鄣)이 어디인지 찾자!!!!!!!!!!!!!!!!!!!!!!!!!!!!!!!!!!!!!!!







1.  자. 여기까지 단서를 요약했으면 먼저 첫번째.  패수는 어디인가?



연개소문의 아들 연남산의 묘지명에 "주몽은 해를 품고 패수에 임해 나라를 열었다."라고 적고 있다.
그렇다. 바로 주몽이 도읍했던 졸본 즉 오녀산성이나 혹은 그 근처에 난공불락의 수도 왕검성이 있던 것이다.


이 패수는 바로 오녀산성 근처의 혼강의 지류 '부이'강이다. 











혼강의 지류 부이강(비류수,패수)과 압록강은 서로 연결되어있다. 그래서 부이강과 압록강은 동시에 다
패수라 불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2. 자. 그럼 두번째. 진나라의 옛 빈 땅은 어디인가?


[사기],[한서],[위략]을 통틀어 보면 기원전 300년 연나라 진개가 요하 서쪽의 진번을 멸망시키고 요하 동쪽의
고조선을 쳐서 압록강까지 고조선을 밀고 2천리의 영토를 개척 후 요동에 장(성),새(나무로 만든 성)를 짓는다. 
이 때 지어진게 바로 연나라의 장성과 연나라의 나무로 만든 요동성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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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문헌을 보면 '장'과 '새(혹은 요)'의 차이를 알 수 있다.



* 요徼=새塞=나무로 만듬.

* 성城=장障=돌로 만듬.

* 장성長城과 새塞 = 장,새障,塞   =돌 성과 나무 성   1)





                                                                        (돌성 = 성城=장障)


                                                                        (나무성 = 요徼=새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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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조선 자손이 점점 교만하고 포악해지자 연나라는 장군 진개를 파견하여 조선의 서쪽 지방을
침공한 후 2천여리의 땅을 빼앗아 만번한에 이르는 지역을 경계로 삼았다. 마침내 조선의 세력은 약화되었다."
-[위략]

 
"기원전 300년 전후하여 연나라 진개가 진번과 조선을 침략하여 복속시키고 관리를 두어 국경에
장(돌 성),새(나무성)를 짓다
."(사기 조선열전,한서 조선열전)

"연나라가 또한 장성을 쌓아 조양에서 양평에 이르렀다." - 사기 흉노전

"요동에서 누상묘,강상묘를 짓던 '고조선'은 남쪽으로 후퇴하여 청천강 이남에 세형동검 문화 세력이 되버리며
연나라 장성이 요동에서 발견되며 연나라계 세죽리 연화보 문화가 요동에서 유행하게된다."
(고고학적 사실)



그리고 기원전 221년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하고 조선으로 쳐들어와 패수(압록강)를 넘어  
청천강 이남까지 요동외요(요동 바깥 나무 성)를 설치하여 연나라의 장성과 요동외요를 이어서 만리장성의 동단으로
삼고 조선을 제후국으로 복속시킨다.


"(진시황이) 성을 쌓았는데, 서쪽으로는 유사(流沙)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요수와 만나며
동쪽은 조선과 연결되었다."
-회남자 인간훈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후 동쪽으로 패수를 건너 조선을 멸하였다." - 염철론


"기원전 214년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뒤, 몽염을 시켜서 장성을 쌓게 하여 요동에까지 이르렀다.
이 때에 조선왕 '비'가 왕이 되었는데, 진나라의 습격을 두려워한 나머지 정략상 진나라에 복속은
하였으나 조회에는 나가지않았다. 비가 죽고 그 아들 준이 즉위하였다."
-[위략]


기원전 222년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한 후 요동외요(요동 바깥 요새)에 소속시킴.(한서 조선열전)


말하자면 청천강 이북은 모두 진나라의 영토가 된 것이다.



                            (연나라 장성(장새)과 진나라 장성(요동외요)을 이은 만리장성)





                         (짱개 장성이 한반도에 있다니! 우리민족 강토에 있다니! 삼천리 금수강산에 있다니!)




                                                               (한반도도 밟고 가신 대진제국)




                                                              (영화 미이라3 중 진시황 )









진나라의 옛 빈 땅에 있는 '상하장'을 진개가 쌓은 요동의 장,새와 진나라의 압록강 이남에서 청천강 이북까지의
요동외요는 전혀 관련이 없다.

기록에서도 이 셋이 같다는 언급은 없다.


고로 상하장은 별개의 것이다. 요동이나 압록강 이남에서 찾으면안된다.

그렇다면  마지막 남은 상하장의 후보지는 길림성 환인시(졸본 오녀산성) 일대 밖에 없다.




하지만 이 지역에선 진나라의 성이나 요새같은건 발견된 적이 없다.
그럼 이건 도대체 무슨 뜻일까???



.......,














그렇다.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있던 것이다...



진나라가 쌓은 '상하장'이 아니다. 진나라의 옛 빈 땅이 '상하장'이라 불리고있는 것이다.




                                            (뭐야? 그렇게 간단한 문제였냐?)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야한다.

일단 '상하장'이라 추정되는 졸본(길림성 환인시) 일대에는 진나라의 장성같은건 안 나온다.


1. 진나라가 산성들에 기초적인 요새들을 지어서 '상하장'이라 불리게되었다.
(하지만 그런 유물,유적은 출토되지않았다.)


2. 그러므로 졸본 일대는 '상하장'이라 불렸고 진나라 땅이지만 상하장은 단순한 지명이라 추정할 수 있다.
그럼 지명쪽으로 풀어볼 때 어떤 결과가 나올까?







위만조선의 중심지 상하장을 지도에서 찾을려면 위만조선이 멸망한 후 위만조선의 땅이 4개로 나누어져 설치된
현도,진번,임둔,낙랑 안에서 찾아야할 것이다.





상하장이란 지명과 연관될만한건 낙랑군이나 요동군 요서군에 대한 한서지리지의 각 현 일람표를 보아도 상하장과
대응될만한건 찾아볼 수 없었다.  진번,임둔은 폐지되어 낙랑에 통합되었는데. 낙랑군의 어느 현에서도 상하장과
대응될만한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랬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건 현도군이었다....!


앞서 요약한 상하장을 찾기위한 6가지 단서에서도 상하장은



0.패수의 동쪽이며

1. 진나라의 옛 빈 땅이고

2. 위만이 거주할 시 조선,한나라,진나라 어느 누구의 땅도 아니었고

3. 조선의 영역이 아니고 위만이 맘대로 거주한 걸로 봐서

4. 조선계보단 중국 망명자들이 드글거리는 땅인 것으로 봐서







조선계 고질 토착 문화인 세형동검문화가 가득한 청천강 이남이 아니라 청천강 이북에서 찾아야된다.


그렇다면 당연히 패수의 동쪽이니깐 혼강의 지류인 부이강(패수,비류수) 동쪽 일대인 현도군 땅에서
상하장을 찾을 수 밖에 없게된다.





한서 지리지 현도군편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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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菟郡, 武帝元封四年開. 髙句驪, 莽曰下句驪. 属幽州.[1] 戸四萬五千六, 口二十二萬一千八百四十五,
縣三. 髙句驪, 遼山, 遼水所出, 西南至遼隊, 入大遼水. 又有南蘇水, 西北經塞外.[2] 上殷台, 莽曰下殷.
[3] 西蓋馬, 馬訾水西北入鹽難水, 西南至西安平, 入海, 過郡二, 行一千一百里. 莽曰玄菟亭.

 

현도군(玄菟郡), 무제(武帝) 원봉(元封) 4년에 열었다.[9] 고구려현(髙句驪縣)[10]은 왕망이 하구려(下句驪)로
고쳤으며 유주(幽州)에 속한다.[1] 가구수는 4,5006이고 인구수는 22,1815명이다. 현은 3개이다.

•          고구려현(髙句驪玄), 료산(遼山)에서 료수(遼水)가 나오는데 서남쪽으로 료동군 료대현(遼隊縣)에
이르러 대료수(大遼水)로 들어간다. 또한 남소수(南蘇水)가 있는데 서북쪽으로 새(塞) 밖을 지난다.[2]

•          상은태현(上殷台縣), 망(莽)은 하은(下殷)이라 했다.[3]

•          서개마현(西蓋馬縣), 마자수(馬訾水)가 서북쪽으로 염난수(鹽難水)로 들어가는데, 서남쪽으로
요동군 서안평현(西安平縣)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이 강은) 2개의 군(郡)을 지나고 1100리를 흐른다.
왕망은 현도정(玄菟亭)이라고 했다.  -한서 지리지 현도군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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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도군은 기원전 108년 위만조선 멸망 이후 기원전 107년에 세워진다. 설치가 이리 늦엇던건 그만큼
조선족들의 반발이 낙랑,진번,임둔보다 더욱 거세었다는 것이다.

현도군의 위치는 길림성 환인시(졸본 오녀산성 일대) 일대다.
기원전 75년에 현도군은 결국 조선족의 강력한 저항으로 서북방으로 쫓겨나는데. 후한서 삼국지의 동이전은
이 세력을 '고구려高句麗'라고 부르고 있다.









현도군의 4개의 현은 서북방으로 옮겨가면서 현 이름도 같이 옮겨갔는데.  
그렇다면 길림성 환인시에 고구려현도 잇고 상은태현도 있었다는 얘기다.  일단 길림성 환인시에 고구려현이
있었다는건 이미 학계도 인정하고있다. 그럼 상은태현도 있었을 것이라고 볼 때 일단 '상은태'란 말은
상하장이란 말과 유사한 점이 있다. 

상은태(上殷台)는 위 상(上). 험준할 은(殷)  , 망루,높은 곳 대(台)로 이루어져있다.
상하장(上下鄣)은 위 상(上), 아래 하(下), 성 장(鄣) 이니까 하下 빼곤 뜻이 서로 일치된다.

위의 한서 지리지 현도군편에서도 말하듯 왕망은 상은태현을  '하은(下殷)'이라 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아래 하(下)가 나오니까 상하장과 비슷한 뜻을 발견할 수 있다. 요컨데 상은태, 하은이라는 지명은
상하장과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상은태란 말은 높은 험준한 성이란 뜻이 되고, 상하장은 높은 곳과 낮은 곳의 성이란 뜻이 된다.


이건 부여와 초기 고구려에서 성행하던 성 문화와 유사한데. 중국은 산성이 없는 반면 부여,고구려는 
산성과 평지성이 나누어져있어 평지성은 거주 지역이고 전쟁을 할 때에는 산성으로 대피해서 험준한 곳에서 싸운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서 주몽이 도읍한 흘승골성(=홀본=졸본=오녀산성)도 상하장과 연결될까?


紇升骨(흘승골)은 고구려가 건국한 도읍이라고 하는 곳인데 이병도는 紇升(흘승)은 전도(顚倒)된 글자로서
升紇(승흘)이라 써야 맞으며 이는 높다 혹은 위를 뜻하는
수리 · 술 · 솔 · 솟의 사음(寫音)이고 骨(골)은 溝漊(구루) 혹은 忽(골)이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고구려편은 "구루溝漊란 고구려 말로 성城을 뜻한다." 라고 적고있으니
흘승골성은 놀랍게도 '높은 성'이란 뜻이다.

 '구루'가 '높은 성'이란 뜻이니까 고구려란 국호 역시 '높은 성'이 된다. 



상하장(위의 성,밑의 성) = 고구려 = 흘승골 = 상은태 다.


결론을 완벽히 내리자면 상하장위의 성,밑의 성)이란 고구려의 산성 체계와 평지성 체계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 뜻이 고구려 국호와 도읍 이름에도 담겨있다는 것이다.











(주몽의 첫 도읍지, 졸본(오녀산성).  기록상의 왕검성과 매우 유사한 모습이다. [사기],[한서]의 조선열전은
위만조선 우거왕이 한나라와 싸울 때 '험준한 곳'에서 싸웠다고 한다. 또 왕검성은 험준한 곳에 있어
1년 동안 한나라 5만대군이 포위해도 함락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오녀산성 역시 산성과 평지성 체계로 되어있다.)


(기원전 2세기 위만조선 당시부터 분포하는 적석총 무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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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상하장을 찾았다. 이 길림성 환인시 일대는 상하장의 단서의 3,4번의 요건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


5번대로라면 이 상하장이 왕검성이 되는 것이다.




결론: 위만이 도읍한 '상하장(上下鄣)'의 지명의 뜻은 고구려(高句麗)와 유사하며
상하장도 고구려 초기 도읍 졸본에 있었다.









============= 참고 ============================================================================
=============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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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강지리지太康地理志》(283년에 편찬)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고, 장성長城은 여기에서 시작한다.」(樂浪遂城縣有碣石山, 長城所起.)


《한서漢書 한안국전韓安國傳》(무제시기)
이후로 몽괄에게 [군사를 주어] 진나라는 호(흉노)를 공격하여 수천리의 땅을 얻었는데, 황하의 [안쪽을 전부]
경내로 삼았으며, 돌로 『성(城)』을 만들고, 나무로 『새(塞)』를 만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흉노족은 황하에서 말에게 물을 마시게 하지 못하였고, 봉수를 설치한 이후로는 말을 유목하지 못하였습니다.  
及後蒙恬/爲秦侵胡, ?數千里, 以河爲竟, 累石爲『城』, 樹楡爲『塞』, 匈奴不敢飮馬於河, 置烽燧然後敢牧馬.


【사기색은】장집이 말하길:「요?는 새塞와 [동일한 의미]이다. 목책(木柵)과 하천(水)으로
이민족(蠻夷)과의 경계(국경界)로 삼았다.」라고 하였다. (【索隱】張揖曰:「?, 塞也. 以木柵?水爲蠻夷界.」)


《진서晉書 당빈전唐彬傳》
북로가 북평을 침략하니 당빈唐彬을 사지절?감유주제군사?령호오환교위?우장군으로 삼았다.
.....
그리하여 옛날의 변경을 천여리나 개척하여, 진秦나라의 장성長城과 새塞를 수복하였다. [진나라의 장성과 새는]
온성溫城(지금의 하북성 온현)에서부터 갈석碣石[산](낙랑군 수성현. 지금의 평양 일대)까지 이어지는데,
산과 계곡에 걸쳐서 3천리를 이어진다.
(北虜侵掠北平,以彬?使持節?監幽州諸軍事?領護烏丸校尉?右將軍......遂開拓舊境,?地千里.
復秦長城?塞,自溫城?于碣石,綿?山谷且三千里.)

 

먼저 장성長城이 아니라 “장성長城과 새塞”라는 표현이 주목된다.
 
이것은 이미 여러번 말한 바와 같이 돌로 높게 쌓은 장벽만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온성溫城은 지금의 하북성 온현인데, 여기에서 3천리나 떨어진 갈석산은 평양밖에 없다.
이것을 통해서 갈석산은 하북성의 존재하는 산을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또한《태강지리지太康地理志》나 후대의 《통전通典》과 《태평환우기太平?宇記》의 기록 또한 명확한 사실임을 알 수 있다.

 

북한 북부의 중국 관전현에서 출토된 “승상 이사 과(丞相斯戈)”나, 평안남도에서 출토된 “진25년 동과(秦二十五年銅戈)”와
같은 진나라 시대의 무기들은 사료의 기록을 더욱 뒷받침해준다.

 


* 그러니까 진나라의 군사 시설이 평양지역까지 이어지긴 했지만, 그것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장성(長城)의 형태는 아니라는 소리다. 
이병도는 『태강지리지』의 내용이 터무니없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장성에 대해서 만리장성을 생각했기 때문에
나온 의견이 아닐까 싶다. 





덧글

  • 황룡 2012/03/23 22:16 # 답글

    오호 뛰어난 추리력! 거기다 완벽하군!
  • 창조양자역학 2012/03/24 01:22 #

    고맙소 황룡대왕 껄껄껄!
  • 명림어수 2012/03/24 02:11 # 삭제 답글

    ??????????

    진나라땅이었다가 진나라가 망한 후에
    비어버리게 된 땅이 "고진공지故秦空地" 아닌가요?

    언제부터, 진나라땅 옆에 있는 땅을 고진공지라고 하게 됐는지????
  • 창조양자역학 2012/03/24 02:50 #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야합니다.

    일단 '상하장'이라 추정되는 졸본(길림성 환인시) 일대에는 진나라의 장성같은건 안 나옵니다.


    1. 진나라가 산성들에 기초적인 요새들을 지어서 '상하장'이라 불리게되었다.
    (하지만 그런 유물,유적은 출토되지않았다.)


    2. 그러므로 졸본 일대는 '상하장'이라 불렸고 진나라 땅이지만 상하장은 단순한 지명이라 추정할 수 있다.
    그럼 지명쪽으로 풀어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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