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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학의 왕검성=낙랑군 주장의 얄팍함 ^^ by 창조양자역학

왕검성이 낙랑군에 있을 수 없다는 결정적 증거



한국사학계가 왕검성이 낙랑군 위치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뭘까?







                                                      (낙랑군의 낙랑토성의 그래픽 복원)


                                                  (북한의 평양 낙랑 구역(낙랑군)의 낙랑 토성)





동북아역사재단의 오강원 교수의 주장을 인용하겠다.   ( '고조선,단군,부여' 동북아역사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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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위 때 사람인 역도원의 '수경주'를 보면 북위로 파견된 고구려 사신이
역도원에게 고구려 도성이 패수 북쪽에 있고 패수가 그 곳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낙랑군 조선현을 지나 서북쪽으로 흘러간다고 말하니까


2. 기원후 5~6세기 때에 지금의 대동강을 고구려 사람들이 패수라고 불렀음


3. 낙랑군 유적이 평양에서 발견되었음.


4. 후한 이후의 한참 늦은 시기의 신찬이 왕검성은 낙랑군 패수 동쪽에 있다라고 함.


5. 기원전 300년 연나라 진개의 침략 이후 요동의 고조선 비파형동검문화가 사라지고 평안도에
세형동검 문화가 나타난다. 그러므로 평안도에서 왕검성을 찾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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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같이 근거가 빈약하다.


1번 2번은 그냥 패수라는 강이 평양에 있었다는 증거지.
그렇다고 그 패수가 왕검성의 패수란 증거는 없다.


한 예로 연개소문의 아들 연남산의 묘지명에 "주몽은 해를 품고 패수에 임해 나라를 열었다."라고 적고 있다.
여기선 패수가 비류수가 되는 것이다.
패수는 대동강이나 청천강만 있는게 아니란다.


3번은 그냥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증거지. 왕검성이 평양에 있다는 증거는 아니다.



5번 증거 역시 빈약하디 빈약하다.
위만조선의 수도 왕검성을 찾으려면 일단 위만조선이란 국가의 성격에
대해 잘 파악해야한다. 문헌을 파악해볼 때 위만조선은 철제무기에 기반하여 수천리를 정복한 강력한 정복국가이며
한나라와 1년을 싸운 강력한 국가엿다. 

그러나 평안도에선 위만조선 시기에도 여전히 세형동검문화가 주류였다. 철기가 주류를 차지하게되는건 
기원전 1세기 낙랑군 설치 이후에서야 가능하게되었다. 
평안도가 위만조선의 중심지라는건  고고학을 무시한 개드립이다.







4번은 후한 이후 어느 시기인지 모를 한참 늦은 시기의 신찬이 왕검성은 낙랑군 패수 동쪽에
있다라고 말한건데.
이거는 후한의 응소가 한서 지리지에 주석할 때 "왕검성은 요동군 험독현에 있다."라고 주석한 걸
한참 후의 후배인 신찬이 보고 빡쳐서 "왕검성은 패수 동쪽에 있다고 문헌에 나오고 낙랑군에 패수가
있으니까 왕검성은 낙랑군임!"이라고 주장한거다.




그렇다면 신찬의 개드립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바로 왕검성 = 낙랑군 = 평양 설이 되는거다.




낙랑군 =평양 설은 맞지만  왕검성=낙랑군=평양 설은 개소리라 이 말이다.







배경음악 출처:성룡의 취권2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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