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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초기 기록은 사실 위만조선 왕가의 기록이다. by 궁宮 태왕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초기 기록은 사실 위만조선 왕가의 기록이다.







자세히 적고싶지만 그건 나중에 하겠고 일단 간단히 적어보기로한다.





1. 1대 동명성왕 주몽


주몽이 비류수 가에 도착해 흘승골성에 도읍하여 고구려를 세웠다.
스스로 선인仙人(단군왕검이 선인이라 불림:동천왕본기 참조)의 후손이라 일컫는 비류국 왕 송양과 대결하여 송양을 이겼다.

북옥저 등 주변 소국들을 정벌하지만 한나라 땅은 티끌 하나 안 건드린다.


이 모습은 고조선 왕 준을 도망치게하고 고조선을 먹었지만 한나라는 치지않고 주변 조선계 소국만 쳐 수천리
영토를 확장시킨 위만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2. 2대 유리왕


?? 별 다른 특별한 건 없다. 일단 위만과 3대왕 우거 사이에 있던 성명불명의 왕을 상징하기도한다는 것.



3. 3대 대무신왕


고구려 3대 대무신왕이 동부여를 정벌하여 대소왕과 싸움. 부여가 멸망

고구려 3대 대무신왕이 요동태수의 군대에 포위당해 위나암성에서 항전함.

고구려 3대 대무신왕이 낙랑국을 대적하며 낙랑국 사이에 불화를 겪고 낙랑을 점령한다.

고구려 3대 대무신왕이 한 광무제가 수군으로 하여금 바다를 건너 낙랑을 점령하고 낙랑군을 설치하였다.



위의 사항은 위만조선의 3대 왕 우거왕의 행적과 유사하다. 단재 신채호는 동부여의 위치를 황해도나 강릉으로
추정했다.
기원전 128년에 우거왕에 반항한 '예'의 임금 남려가 있었는데. 그의 왕국은 황해도 함흥에 있었으며 그 지역은
임둔군의 땅이며 동시에 동옥저의 땅이고 후대 고구려인들에겐 동부여로 기억되었다.
무려 28만명의 호구 족보를 한나라에 바치고 위만조선에 대항하나 그 대항은 실패로 끝났다.

이후 우거왕은 한나라 요동군 5만대군의 침공을 받고 한무제는 바다를 건너 낙랑군 일대를 점령하게한다.


이런 일련의 상황은 기원후~1세기 사이인 대무신왕 당시에는 벌어지지도않았던 일이다.
왜냐면 중국 정사 동이전들을 살펴보면 대무신왕은 한나라 광무제에게 사신을 보내와서 '하구려' 국호에서 '고구려' 국호로
다시 바뀌어졌을 뿐. 한나라의 요동군과 전쟁을 했다거나 광무제가 수군을 보내 낙랑을 점령한 사건은 중국 정사
어디를 찾아봐도 없다.
고로 위의 사건들은 모두 위만조선 당시에 있었던 일과 왕들의 행적을 고구려 초기 왕의 행적에 끼워넣은 고구려 왕실의
사관들의 짓이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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