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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건국자 고이왕은 삼국지 시대 중국인이다. 1탄 by 제홍씨帝鴻氏

백제의 건국자 고이왕은 삼국지 시대 중국인이다. 1탄


이에 대해선 다각도의 검증이 필요할 것 같지만 백제사 연구에 대한 보다 폭넓은 시각을 위해 역사밸리에 게재하는바입니다.



중국 정사,삼국사기를 통틀어 볼 때 고이왕은 서기 3세기(서기 234~236년)에 대방 땅(황해도 한강 유역)에 갑자기 나타나 
한강 유역의 작은 풍납토성을 세우며 옹기종기 모여사는 원시 부락을 정복하고 백제라는 큰 도시 국가를 세우고 풍납토성을
왕성王城으로 발돋움시킨 왕입니다.





                                                                 


이 때부터 백제 역사가 처음으로 시작됐다는 것이 중국 정사와 고고학 그리고 삼국사기에 대한 고고학적 비판 인식을
통해 알 수 있는데.

고이왕은 삼국사기를 보면 중앙집권을 처음으로 시행하고, 중국의 유교식을 많이 반영한 관등 체제,관복,법제를
체계적으로 도입하게 하였습니다.


고이왕은 중국 정사에 의하면 서기 3세기 요동 태수 공손도의 사위 '구태'로 나오며 구태가 바다를 건너
대방 땅(황해도,한강 유역)에 백제를 세웠다고 적고 있으며
삼국지 동이전의 [위략]에선 대방을 침공한 위나라군과 치열하게 대립하는 왕으로 등장하며 삼국사기 백제본기에서도
고이왕은 낙랑,대방과 싸우는 왕으로 나옵니다.



일단 특징들을 요약하자면...,



1. 그가 바다를 건너온 도래인,중국계라는 점. 

2. 구태仇台가 '구이'라고도 발음된다는 점 이것이 '고이'와 연결된다는 점, 이 점을 이미 이병도가 언급한 점.

3. 위나라를 적대한다.

4. 짧은 시간 안에 황해도,한강 유역에 백제라는 왕국을 세우는 능력(물론 요동태수 공손도의 지원도 있지만)

5. 중국 유교식 관제,법제를 도입하여 체계적인 중앙 집권 단계로 나아간 점.

6. 서기 234년에 즉위했다고 삼국사기는 적지만 서기 236년에 강화도에서 사슴 수십마리를 사냥했단 기록으로
보아 사실 서기 236년이 실제 기록일 수도 있다라고 본다면..,



등을 살펴볼 때


고아왕은 중국인이고 뭔가 보통 인물이 아닌 비범한 인물이란 생각이 많이 드는데.
그렇게 볼 때 본인은 혹시 고이왕이 공명(제갈공명)이 아닌가하고 추측했다.



1. 서기 234년에 죽었다는 공명, 고이왕의 신화적 즉위 연대인 서기 234년과 일치하며 

2. 공명이 유교,법제에 능통하고 법치法治를 추구한 점.

3. 공명이 그의 병법서 '심서心書'에 동이東夷를 상하上下가 화목하고 안락한 나라이며 산 바다로 둘러싸여있어
외적의 침입에 쉽게 함락당하기 어려워서 이간시켜야 이길 수 있을 정도의 강고하고 안정적인 나라로 기술하여
동이족에 대해서 상당한 관심을 보인 점,  

4. 위나라를 적대했다는 점.

5. 고이,공명 이름이 유사하다는 점.


등 이외에도 많지만 이런 점들을 볼 때 고이왕이 공명이 아닐까...?라고 추론하게됐고 
밑의 글들은  요점들을 좀 더 길게 써서 밑에다 요약해놓은 것들이고..,



아무튼 개인적으론 고이왕이 공명이 아닐까라 보지만 설사 아니라하더라도 요동태수 공손도의 지원을 받은
'고이'라 불리는 어떤 중국인이 바다를 건너 와서 요동군의 지원을 받았지만
서기 238년에 사마중달의 침략을 받아 공손씨의 요동국(요동군)이 허망하게 망하고 위나라가 수군을 보내
대방(황해도,한강 유역)을 치게 하면서도 고이라 불리는 인물은 그걸 다 막아내고 백제라는 강대한 나라를
일궜다는 점은 쉽게 우습게 볼 수 없는 저력과 지략과 병략 정치력을 갖춘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지금까지 고이왕이 누구이며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인지에 관해서는 실제적인 조사가 없엇다.


고구려에서 내려와서 기원전 18년에 백제를 건국했다는 비류 온조의 신화는 분명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학계는 비류,온조의 환상에 빠져있다.

기원전 1세기에 한강 유역에선 적석총이 안 나온다. 더군다나 풍납토성 유적에선 더더욱이 안나온다. 그것은
풍납토성의 조영 세력과 비류 온조 세력은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이왕이 어떤 인물인지 확실히 밝혀지게되면 지금까지의 백제사 연구는 송두리째 뒤집고 처음부터
다시 정리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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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요점들을 더 정리.



백제 역사 최대의 수수께끼-고이왕
백제 역사 최대의 수수께끼-고이왕
백제 역사 최대의 수수께끼-고이왕
백제 역사 최대의 수수께끼-고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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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역사 최대의 수수께끼-고이왕
백제 역사 최대의 수수께끼-고이왕


제갈공명은 사실 죽지않았다! 그러면 그는 어디로 간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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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건국시조가 공명왕이라는건 다음과 같은 증거가 있습니다.


1. 온조,비류,소서노는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만 나오고 고구려에는 그런 기록 일체없다.

2. 백제국이 세워진건 서기 3세기지. 그 전이 아니다. 최초의 개국자는 백제 고이왕이다.

3. 중국 북사,남사에서 말하기를 '동명왕의 후손 구태가 요동국왕 공손도의 사위가 되어 대방(황해도)에 처음으로 나라를 세워 국호를 백제라 하였다.'라고 기록한다. 즉 구태는 중국계로 중국인인데. 배타고 건너 백제세웠다 이 말이다.

4. 이병도 박사는 구태=고이왕이라고 주장하였다. 구태의 한자는 仇台. 태台는 음이 '이'이기도하니, 그러면 '구이왕'이 되고,
고이왕은 사서들에서 '구이왕'이라고 적기도하니 두 인물은 동일인물이 된다.

5.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서기 234년에 즉위했다는 고이왕은 서기 236년에 한반도 서해 강화도에서 40마리의 사슴을 사냥했다고하며
처음으로 한반도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있다. 즉 고이왕이 강화도에 상륙작전을 하여 40명의 군사들을 사살한 후, 강화도를 점령하고
곧바로 한강유역으로 진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 고이왕은 기록에서도 나오듯, 관제,법령을 시작하고 중앙집권을 단행해 국가의 기틀을 시작하였고, 주변국들을 정벌하며,
위나라와 치열한 전쟁을 치뤄 강대한 백제를 이뤘다.
한강유역의 소부족 공동체들에 불과했던 한강의 부족국가들이 고이왕에 의해 '백제'라는 이름으로 나라가 개국하며 순식간에 나라의 모습으로
탈바꿈되고 주변국들을 빠르게 정복하고 중국과도 대결하는 이 모습은 단순한걸로 판단할수없고 외부세력의 이동에 의한 강력한 나라의 개국으로
보는 것이 옳다.

6. 당시 제갈공명은 서기 234년 사망했다고 정사에 나오나 백제본기에서는 초고왕의 아들인 구수왕이 서기 234년에 죽고,
고이왕이 서기 234년에 즉위하고있는데. 고이왕은 '고모왕'이라고도 일본의 신찬성씨록 기록에서 표기되고있다.

고이왕은 신찬성씨록에 고모왕이라고 적히며, 부여의 시조인 동명왕東明王은 신찬성씨록에 도모왕이라고 적힌다. 명明이 '모'라고 적히는걸 보고도 알수있듯이, 고모왕은 즉 고명왕古明王이 된다. 즉 공명왕孔明王과 발음이 유사한 것이다.


7. 고이왕 계열의 왕들은 책계왕,분서왕이 있는데. 책계왕의 '책계'는 그 어원이나 뜻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추리해보자면 제갈공명의 '제갈'은 중국 발음으로 zhuge이다. 이 zhuge가 '책계'가 된 것이 아닐까? 책계의 중국발음은 zege다.

분서의 한자는 분서汾西로 삼수변이 붙어잇긴하지만 나눌 분分에 서쪽 서西가 있어 천하삼분을 유비에게 제안했던
공명의 유명한 역사적 행적이 고이왕 계열의 왕호로 남겨지게된 것이 아닐까?




등장시기도 비슷하고,
제갈공명도 엄격한 법제,중앙집권 정비에 능한 인물이고 고이왕도 역시 마찬가지이며 둘 다 위나라를 적대한단 점이 똑같다.

초고왕=유비=스사노오=선견임이 여러 역사적 증거를 통해 밝혀졌으므로 제갈공명은 백제 개국자 고이왕이다.










* 결론 요약:


1. 백제의 개국자는 온조,비류가 아닌 고이왕이다.

2. 고이왕은 중국계일 가능성이 매우 많다.

3. 고이왕이 삼국지 시대에 중국 세력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띈 인물이라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3. 고이왕이 공명(제갈공명)이라는 가설도 증거들이 많아서 일리가 있다.

4. 그러나 고이왕이 공명이 아닐 수도 있다.  고이왕의 정체가 무엇인지 가설들이 많아야하나
현재로선 고이왕 = 공명이란 가설 밖에 없다.

5. 고이왕 계열의 왕들은 책계왕,분서왕이 있는데. 책계왕의 '책계'는 그 어원이나 뜻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추리해보자면 제갈공명의 '제갈'은 중국 발음으로 zhuge이다. 이 zhuge가 '책계'가 된 것이 아닐까? 책계의 중국발음은 zege다.

분서의 한자는 분서汾西로 삼수변이 붙어잇긴하지만 나눌 분分에 서쪽 서西가 있어 천하삼분을 유비에게 제안했던
공명의 유명한 역사적 행적이 고이왕 계열의 왕호로 남겨지게된 것이 아닐까?
........,    라는  증거는 굉장히 뇌 속에 강하게 새겨지게하는 마력이 있다.













덧글

  • 해색주 2012/03/31 14:40 # 답글

    너 풍큐지?
  • 제홍씨帝鴻氏 2012/04/01 00:44 #

    뭔 소리?
  • 황룡 2012/03/31 16:16 # 답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제홍씨帝鴻氏 2012/04/01 00:44 #

    왜 웃으시나요.
  • 황룡 2012/04/01 02:13 #

    해색주님 말씀보고 웃겨서요
  • 잠꾸러기 2012/03/31 17:12 # 답글

    실시간 매국
  • 제홍씨帝鴻氏 2012/04/01 00:45 #

    이게 왜 매국입니까?
  • 란시오 2012/03/31 17:55 # 삭제 답글

    똥싸 풍큐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그리고 고이와 공명은 또 무슨 연관...
  • 제홍씨帝鴻氏 2012/04/01 00:43 #

    당시 제갈공명은 서기 234년 사망했다고 정사에 나오나 백제본기에서는 초고왕의 아들인 구수왕이 서기 234년에 죽고,
    고이왕이 서기 234년에 즉위하고있는데. 고이왕은 '고모왕'이라고도 일본의 신찬성씨록 기록에서 표기되고있다.

    고이왕은 신찬성씨록에 고모왕이라고 적히며, 부여의 시조인 동명왕東明王은 신찬성씨록에 도모왕이라고 적힌다. 명明이 '모'라고 적히는걸 보고도 알수있듯이, 고모왕은 즉 고명왕古明王이 된다. 즉 공명왕孔明王과 발음이 유사한 것이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01 00:43 #

    고이왕 계열의 왕들은 책계왕,분서왕이 있는데. 책계왕의 '책계'는 그 어원이나 뜻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추리해보자면 제갈공명의 '제갈'은 중국 발음으로 zhuge이다. 이 zhuge가 '책계'가 된 것이 아닐까? 책계의 중국발음은 zege다.

    분서의 한자는 분서汾西로 삼수변이 붙어잇긴하지만 나눌 분分에 서쪽 서西가 있어 천하삼분을 유비에게 제안했던
    공명의 유명한 역사적 행적이 고이왕 계열의 왕호로 남겨지게된 것이 아닐까?
  • 제홍씨帝鴻氏 2012/04/01 00:44 #

    글 안보는 능력은 탁월하시네요.
  • 제홍씨帝鴻氏 2012/04/01 00:44 #

    그리고 요약 안보셨습니까?



    1. 백제의 개국자는 온조,비류가 아닌 고이왕이다.

    2. 고이왕은 중국계일 가능성이 매우 많다.

    3. 고이왕이 삼국지 시대에 중국 세력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띈 인물이라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3. 고이왕이 공명(제갈공명)이라는 가설도 증거들이 많아서 일리가 있다.

    4. 그러나 고이왕이 공명이 아닐 수도 있다. 고이왕의 정체가 무엇인지 가설들이 많아야하나
    현재로선 고이왕 = 공명이란 가설 밖에 없다.

  • 지나가는 2012/04/09 18:05 # 삭제 답글

    와씨.
    저게 사실임? 유비가 스사노오고 백제고이왕이 제갈공명이라는게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09:03 #

    사실이라고 '추정'되지만 글에도 언급했듯 고이왕이 삼국지 시대 중국인이란건 확실한 사실입니다.
  • wishii 2012/07/10 19:11 # 삭제 답글

    논거가 너무 빈약하네요.... 그에 반해서 결론은 너무 확고하고요.... 모두가 동감할 수 있는 논거를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행인 2012/07/10 21:47 # 삭제 답글

    삼국시대관련인물이란얘기 잘보고있다가 뜬금없이나온 공명관련이야기보고 개폭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완전 아전인수격 해석이란말이 절로 떠오르네요
    공명이 234년 사망당시나이가 54세인데 글쓴이말에 따라 고이왕이라치고....고이왕이 52년 재위했거든요????? 그럼 106살까지 왕헤쳐먹음?? 그 시대에??아 물론 태조왕이라는 예외가 있긴하지만...그건 제쳐두고 아니 한나라의 승상쯤되는 존재가 잘도 정체 숨기고 다른 나라가서 왕노릇해먹어요?? 오나라 거쳐서 배타고갔나?? 환타지 무협소설너무보셨나...상상력만큼은 인정해드릴께요ㅋ
    아니그리고 이름관련해서 그렇게 장난같지도않은 근거랍시고 들이대면 본인스스로 안민망해요???
  • 제홍씨책사풍후 2012/09/26 21:18 #

    사실임.
  • 제홍씨책사풍후 2012/09/26 21:18 #

    120세 산 사람도 있어요. 고대시대에.
  • 제홍씨책사풍후 2012/09/26 21:18 #

    승상이니까 충분히 가능하죠.
  • ㅋㅋㅋㅋ 2012/09/14 10:52 # 삭제 답글

    이건 뭐 요시츠네가 징기스칸이라고 하는 거랑 흡사할 정도의 소설이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제홍씨책사풍후 2012/09/26 21:18 #

    요시츠네징기스칸 맞음.
  • ? 2014/02/06 01:23 # 삭제 답글

    뭔소린지? 고이왕은 구수왕의 동생일 가능성이 높아요 초고왕이 죽은 214년에 태어나서 286년 죽었다고하면 말되요 그리고 고이왕이 공명이면 뭐.
    초고왕은 제갈풍이고 구수왕은 제갈근이고 제갈상이고 책계왕과 분서왕도
    제갈상 제갈첨입니까? 그들이 순간이동이라도해서 촉과 백제를 오갔다는 말인가요? 님의 말은 백제가 촉의 지방정권이다 라고 말하시는것 같은데
    님! 그리고 공명이 234년 죽었죠? 공명이 죽어서 고이왕으로 환생했다 칩시다 고이왕이 1살인데 사반왕 왕위를 뺏어요?사반왕이 갓난아기한테 왕위를 뺏긴단게 말이되나요? 그리고 그리고 공명이 고이왕이면 관구검 따위에게 진 고구려도 공격해서 삼국 통일했어야죠
    고이왕의 정체는.백제 방계 출신 인물이겠죠 무슨 말도 안되게. 공명이 고이왕이라고 주장합니까?
    공명이 고이왕이라고 그래요?
  • 과객 2014/09/03 23:43 # 삭제 답글

    1. 고이왕과 대방 관련 전설은 부여의 위구태와 고이왕을 혼돈하여 파생된 것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2. 위에서 온조비류의 환상에 빠진 학계 운운하시는데 어지간한 백제사 연구자들도 적석총이나 풍납토성의 존재를 인식해서 길원전에 온조와 비류가 남하해서 백제를 세웠다는 언급은 잘 하지 않습니다

    3. 삼국사기에서 고이왕 대에 율령을 반포했다거나 16관등이 설치되었다는 것만으로 고이왕이 중국출신이었다고 보기는 힘들거니와 해당 기사도 사실로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애초에 법률과 관등 관련 기록은 구당서나 신당서 주서 등 사비백제를 다룬 사서의 구절과 거의 일치하므로 후대의 일이 당시에 일어난 것 마냥 소급부회되었을 가능성을 상정해볼 수 있습니다..
  • 개 엉터리 같은 놈 2015/03/06 23:14 # 삭제 답글

    읽어 볼 가치도 없는 내용들이군...
    고구려 연나부에 소속되어 있던 부여계 족장인 구태를 중국계라니...참으로 한심한 놈이로구나...
  • 11 2017/02/12 17:17 # 삭제 답글

    공명이 그럼 죽지 않고 도망 갔다는 것입니까?그럼 오나라를
    거쳤습니까?위나라를 거쳤습니까? 그랬다면 당연히 잡으려는
    기록이 있겠죠.시조 구태설은 허구인게 밝혀졌습니다.
    위나라는 고구려와 우호 관계인데 고구려나 위나라가 백제
    왕이 공명이면 그대로 두었겠습니까?공명과 공손도는 아무 관계도 없으며 동이 열전만 있는게 아니라 흉노열전도 있습니다.

  • 1 2017/04/04 02:35 # 삭제 답글

    첫째로 공명이 죽은것으로 나오는 나이가 50 대고 고이왕 재위기간이 50년입니다 ;;;

    둘째로 고이왕의 즉위한것은 혈기왕성한 20대로 추정되고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기행적인 사냥 집착에 잘나와있습니다. 고이왕은 남성적이고 무예와 사냥을 좋아하는 무인 캐릭터지 공명처럼 재상 캐릭터가 아닙니다.

    셋째로 위나라를 적대한것은 제갈공명이기 때문이 아니라 고이왕의 부인이 위나라에게 멸망당한 공손도의 딸이기 때문이죠. 둘은 동맹관계입니다.

    전혀 아닙니다. 이건 상상이 아니라 망상이라고 하죠.
  • 책사풍후미나모토 2017/06/06 08:40 #

    네. 판타지글이 맞습니다. 그런데 고이왕이란 자가 실존한게 맞긴 한가요?
  • 역사저널 2018/05/02 16:14 # 삭제 답글

    저기요 마한 52개국중에도 백제국이 있다고 기록이 있습니다 삼국동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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