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풍후 애드센스


채도를 사용한 염제신농의 앙소문화와 그 기원 by 제홍씨帝鴻氏

채도를 사용한 염제신농의 앙소문화와 그 기원




                             (기원전 3천 5백년~기원전 3천년 시기 중원을 다스렸다는 염제신농)






(앙소문화의 지도 위치)



기원전 5000~기원전 3천년까지 황하 중류 유역에서 존속하던 앙소 문화(마가요+앙소+묘저구 유형 통합 명칭)는
앙소 문화는 농경 문화가 발달하였고 도자기 제작 기술이 수준급이었다.

물고기,소뿔 토템 신을 가지고 있다.
중국에 채도를 최초로 들어온 대표적인 채도 문명이다.






(앙소 문화의 채도)
(앙소 문화의 채도)

(앙소 문화의 채도)


(앙소 문화의 채도)


채도란 채색토기로 토기에 채색을 하여 무늬를 그려넣은 걸 말하는데. 이런 채도는 일정하게
수메르 이전 우바이드 문화,이란,인도,중앙아시아,황하 일대에까지 퍼져 있어 서아시아 문화권과 중국 문화권이 서로 연결되어
밀접한 교류와 인간들끼리의 빈번한 이동이 있었음을 증명한다.



앙소문화의 채도는 서아시아 문화권의 채도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이며
앙소문화에서 발견된 토기에 그려진 앙소 문화의 신(神)은 두 뿔 달린 모자에 물고기를 달고 있다.








(앙소 문화 채도에 그려진 앙소 문화의 신(神) 두 뿔이 달려있고 모자의 양옆에도 뿔들이 많이 박혀있으며
두 마리 물고기가 양 옆에 있는게 특징적이다.)





이 신의 모습은 수메르의 물고기들을 달고 사는 수신(水神) 엔키(Enki)와 거의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기원전 3천년대 수메르 진흙 도장 그림에 나오는 엔키의 모습. 그의 양 어깨에서 두 물이 솟아오르고
있으며 물고기들이 나오고 있고 그는 앙소의 신과 거의 비슷한 모자를 쓰고있다.)



(기원전 3천년대 수메르 진흙 도장 그림에 나오는 엔키의 모습.)



수메르 이전에 있던 우바이드 문명은 기원전 5천년~기원전 3500년의 문명으로 앙소 문화와 연대가 비슷하다.
우바이드 문명 역시 같은 채색토기를 쓰며 엔키 신을 중심으로 한 물고기 토템 숭배 문화였다는 점
앙소 문화와 마찬가지로 농경에 능하고 개간을 잘했다는 점 은 강력하게 서아시아 문화권과의 중원 지역으로의
강력한 영향을 증명한다.













                                          (기원전 3천 5백년~기원전 3천년 시기 중원을 다스렸다는 염제신농)





앙소문화는 고대 중국 기록들에 공공(共工)과 '염제 신농炎帝 神農'으로 나온다.


중국 기록들에서 공공의 연대는 대략 기원전 4천년~기원전 3천년이며 염제신농의 연대는
각 왕 제위 연대가 8왕들이며 기원전 3500년에서 기원전 3000년대까지라 한다.


공공(共工)은 중원을 지배하던 중국 신화의 대표적인 수신(水神)이다.
복희,여와의 용(龍)을 숭배하는 문명 집단(홍산문명)과 겨루며 대홍수를 일으킬 정도로 강력한 물의 힘을 가졌다고 한다.
또 농경을 하기위해 개간,관개수로를 주로 맡아보는 신이다.

또한 신이경(神異經)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서북쪽 변경에 사는 어떤 사람은 사람의 얼굴에 머리털은 붉으며 뱀의 몸에 사람의 손발을 하고 있다.
(..) 이름을 공공이라고 한다."
-신이경 서북황경

공공이 서북쪽 변경에 사는 머리털이 붉은 자이라 하여 외국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산해경(山海經)은 공공이 박치기하여 무너뜨렸다는 부주산이 중앙아시아 지역에 있는 저 먼 미지의 산으로
적고 있다. 즉 서역의 산이라고 중국 기록들에 나온다는 거다.

이로 보아 공공은 수신을 숭배하며 농경문화가 발달하고 서아시아 문화권을 영향받은 앙소문화의 신이라 하기에 충분한데.



그렇다면 염제신농은 앙소문화의 신인가?




염제 신농은 기원전 3천 5백년에서 기원전 3천년 시기에 중국 황하 일대를 다스리며 도자기를 잘 만들며
농경의 시조로 기록에 나온다.  도자기 잘 만드는 것과 농경을 잘하는건 앙소문화의 주 특징이 아닌가?
또 앙소문화하고 연대도 일치하지않는가?


"신농이 밭을 갈고 도자기를 빚었다.(神農耕而作陶)“ -태평어람(太平御覽)

"神農之時天雨粟,神農耕而種之,作陶冶斤斧,破木爲耜鉏耨,以墾草莽
(신농 시대에 하늘에서 곡식이 비처럼 쏟아져 내려 신농이 대지를 갈고 곡식의 씨앗을 뿌렸다.
그는 도자기를 빚고 도끼와 큰 도끼를 야금(治)하여 나무를 찍고 호미와 쟁기를 만들어 황무지를 개간했다.)
-
逸周書(일주서)


또 염제 신농의 모습은 '제왕세기帝王世紀'에 이르기를 "염제신농은 사람의 몸에 소의 뿔을 하고 있다."라고 적고 있다.


중국의 유명한 역사학자 '왕대유' 역시 이 앙소문화의 신을
염제신농으로 보았다. (천년왕국 수시아나에서 온 환웅 일빛 출판사 정형진 지음 458p)




딱 보기에도 앙소문화의 소 뿔 달린 신은 소머리에 사람이라는 염제신농의 모습과 유사해보인다.






그렇다면 앙소문화의 신 신농과 수메르의 엔키 신은 동일인물인가? 그렇다. 동일인물이다.





'죽서기년'에 이렇게 말하였다.

"소전의 임금이 유교씨의 여자를 취하였다.
그 여자의 이름을 안등이라 한다. 신농을 낳았다.
강수에서 자라 강씨로 성을 삼았다. 그의 세력의 근본은 열산이다. 고로 열산씨라 불렸다.
그의 처음 나라는 '이伊'라 했다.
또 나라 이름을 기耆라 하였다. 합해서 칭하니 고로 호를 이기씨라 하였다."
- 죽서기년



또 노사 염제기에 이렇게 말하였다.


"염제신농씨는 성씨가 이(伊)?다.


"(염제신농은) 그 때 처음에 이계국(伊繼國)을 다스렸다. 고로 이에서 따서 씨를 이기(伊耆)라 하였다.

其初,國伊繼國伊繼,故氏伊耆。" -노사 염제기



즉 염제신농은 '이기'라고도 불렷다. 또 그의 나라 이름은 '이기'엿다.
엔키는 수메르 길가메쉬 홍수 서사시 점토판에서 그의 별칭이 '니니기쿠(Ninigiku)'로 불린다.
또 수메르 신화에서 신들을 이기기igigi라고 부른다.


또 노사 염제기는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는 안등으로 상양에서 신령에 감응하여 신농을 열산의 석실의 아홉 연못에서 낳았다." -노사 염제기


"농업의 신인 염제가 막 탄생했을 때 그 주위의 대지에는 인간이라곤 전혀 존재하지 않았고
오직 아홉 개의 샘(九井)만이 그를 반겨 주었을 뿐이었다.
이 아홉 개의 샘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만일 샘 하나에서 물을 길어 올리면 나머지 여덟 개의 샘물도 함께
출렁거렸다."
- 위앤커(원가)의 중국고대신화 김희영 편역 도서출판 육문사 50~52p



신농이 연못에서 태어났다는 노사 염제기와 중국 신화의 내용은 엔키가 깊은 심연에 거주한다는 수신(水神)의 성격과
일치한다.


신농은 농사신의 성격이 있다. 중국 신화에서 농사신에겐 보통 기(祇)라는 이름이 붙는다.
(대표적으로 중국 신화의 농사신 후직은 이름이 '기'이다.)
이건 수메르 신화의 엔키(Enki)와 대단히 비슷한거다. 엔키는 수메르어로 땅(키Ki)의 주인(En)이란 뜻이다.


이런 논증은 상나라(은나라)의 금문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상나라 금문에서 자신들의 신(神)을 '기夔'라고 기록한다.





(양 뿔을 하고있는 상나라의 조상 기夔. 은나라 말기 코뿔소 청동그릇에 새겨진 '소신여준'이란 금문(金文)에서 나온다. )



이 '기'는 양(羊)의 뿔을 하고있는데. 제왕세기,노사 염제기에서 신농의 성씨가 강씨姜氏로 나오는데.
강(姜)이 한자 뜻이 양머리를 한 사람이란 뜻이다. 염제신농이 소 뿔을 한 모습은 후에 양 뿔을 한 신으로 변해졌던 것이다.



이로써 엔키 = 염제신농 = 기 = 상나라 임을 논증할 수 있다.




또한 염제신농의 아버지 이름이 중국 고대 기록들에서 공통적으로 소전(少典)이라 언급된다.


수메르 이전의 채도 문명인 우바이드 문명을 만든 우바이드 종족의 근원지는 수메르 동쪽의 이란 일대로
이 일대 중에서도 대표적인 채도 문명이 바로 이란 남부 평야가 바로 수시아나 평야이다. 수메르와 바로 가까운
지척에 있는 이 수시아나 땅은 기원전 6천년경 이란 자그로스 산맥을 내려온 이주자들이 자리 잡아 채도 문화를
꽃피웠다.
학계는 이 문화를 '수시아나 문화'라고 부른다. 고대에 이 지방은 '수시아나' 혹은 '수사'라고도 불렸고
성경은 '수산'이라 하고 한다.




(위 지도에서 이라크가 바로 우바이드-수메르 고,   수사가 수시아나다.) 


(수시아나 문명의 채도. 물들의 관개를 고루 맡아보아 작물들이 잘 자라게하는 신의 모습과 신의 양 옆에
관개수로를 잘 다지는 삽(공구)들이 세워져있다. 이것이야말로 관개수로를 맡아본다는 중국 신화의 신 공공(共工),
농사의 신 염제신농의 성격을 제대로 담아내주는 수시아나 채도다.
즉 농사신+수신水神의 성격이 확인 가능하다.  이 말이다.)




채도를 쓰는 서아시아인들에게 있어 그들의 신은 엔키(염제신농)였고 엔키의 아버지 신은 바로
'수시아나' 혹은 '수산'이라고 가정해보고 그것이 중국 기록에 염제신농의 아버지 '소전'이라 적혔던 것일까?


중앙아시아 알타이 신화에는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노인 '나마'에게는 세 아들이 있는데. 장남의 이름이 소준(Sozun)
이라고 나온다. 2)


중국 신화에서 복희는 지구를 강타한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인간이며 복희의 아들은 '소전'이다.
소전의 아들이 바로 장남 신농과 차남 황제헌원이다.  1)

우리는 여기서 어떤 동일한 기원을 찾아볼 수 있겠다.


성경 창세기에는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노아에게 세 아들이 있는데. 장남의 이름은 '셈'이며
(셈,소전,소준이 서로 발음 ㅅ으로 시작하는게 유사)
셈의 장남은 엘람이고 차남은 앗수르다.

수시아나 평야가 후에 역사적으로 기원전 3천~기원전 2천년의 시기에 엘람의 중심지가  된다!


우린 염제신농이 채도를 만드는 수시아나인들의 신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바이드 문명 역시 수시아나 땅,
이란 자그로스 산맥 일대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창세기에는 이 '염제신농이 '엘람'으로 나온다. 그리고 이 엘람은 고고학적으로 수시아나와 연결된다.



그럼 도대체 무슨 말인가? 염제신농이 엘람이면 염제신농은 노아의 손자란 말인가?
소전은 노아의 장남 셈이란 말인가?

도대체 우리에게 있어 염제신농은 무엇인가?



이제 이 이상의 추리가 안된다. 도대체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역사의 구덩이에 심오하여 머리가 어지러워질 따름이다.





결론 요약:


1. 중원 황하 중류의 앙소문화는 염제신농의 나라다.  염제신농 신화는 역사적 사실이 있음이 규명되었다.

2. 앙소문화의 소 뿔 달린 신은 염제신농의 신화적 모습과 일치한다.

3. 중국 신화의 수신水神 공공도 앙소문화의 신이다.

4. 선사시대 중국 채색토기(채도)는 서아시아의 채도 문화권의 영향을 받았다. 같은 채도 문화권에 속한다.
서로 인적 교류가 빈번했다.

5. 염제신농은 수메르의 엔키 신과 동일하다. 그 증거로 앙소문화의 신의 모습은 엔키의 모습과 완벽히 일치한다.
수메르는 우바이드 문화의 기반 위에 세워진 문명으로 우바이드 신앙 종교를 계승했다.
우바이드 문화는 대표적인 채도 문명이다.

6. 우바이드 문화와 동류의 종족으로 여겨지는 수시아나 문명의 채도에서 엔키 신 혹은 염제신농의 농사신+수신水神의
성격이 확인 가능하다.

7. 염제신농의 아버지 '소전'을 통해 동아시아-서아시아 공통 역사 기억의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1)   황제헌원의 가계도가 '운급칠첨 헌원본기(雲笈七籤 軒轅本記)'라는 책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운급칠첨은 11세기에 송(宋)나라의 장군방(張君房)이 편찬한 도교 교리의 개설서로서 이 책의 100권 부분에 헌원본기가
수록되어있습니다. 헌원본기는 황제헌원에 관해 자세히 기록한 사료입니다.

이 책에는 복희가 소전을 낳고 소전이 신농과 헌원을 낳았다고 합니다.

'軒轅, 黃帝. 姓公孫自週制五等諸侯后, 乃有公孫姓. 軒轅爲黃帝, 長于姬水, 合以姬爲姓, 不知古史何据也?
有熊國君少典之次子也伏羲(犧라고도 쓰임)生少典, 少典生神農. 及黃帝습帝位, 居有熊之封焉.'
중요한 부분만 해석하면 황제헌원은 성은 공손이며 헌원은 황제이며 희수에서 태어나서 희로서 성을 삼았다.
유웅국의 임금인 소전의 둘째아들이며 복희가 소전을 낳았고 소전은 신농을 낳고 헌원을 낳았다.



2) 박시인의 알타이 신화의 중앙아시아부분을 보면 홈버그가 채록한 중앙아시아 홍수 전설이 등장합니다.

"옛날에 큰 홍수가 나서 온 세상이 바다(Tengis)가 된 일이 있다. 하느님(Tengri)은 나마(Nama)라는 어진 사람을
살려 주시려고 미리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얼마쯤 있으면 큰 홍수가 나서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도 짐승도 새들도 다 죽게 된다. 그러니 너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베어 배(Kerep)를 만들어라. 홍수가 시작되면 너의 모든 가족과 짐승과 곡식의 씨앗을
가지고 그 배를 타고 살아남도록 하라.]
나마는 높은 산으로 갔다. 나마는 나이가 많으므로 세 아들 소준눌(Sozun-nul),
살눌(Sar-nul),바릭스(Balyks)를 시켜서 큰 배를 만들었다.
홍수가 시작되자 나마는 자기의 가족과 짐승을 데리고 온갖 곡식의 씨앗을 가지고 배에 탔다.
홍수가 시작된 지 이레가 되니, 물이 산꼭대기까지 올라왔고 배가 떠 있었다.
또 이레가 지난 후, 나마는 큰 아들더러 바깥을 내다보라고 하였다.
큰 아들이 내다보더니,
[온 세상이 물바다가 되고, 몇 개의 산꼭대기만 남았습니다.]라고 말하였다.
또 여러 날 지난 후에 다시 내다보니, 이제는 모든 산꼭대기마저 다 물에 잠기고 하늘과 바다뿐이었다.
배는 오랫동안 물천지 위를 떠다녔다. 마침내 홍수가 그치고 여덟 개의 산꼭대기가 바다 위에 섬처럼 나온 곳에
배가 걸렸다.
나마는 배의 창문을 열고 큰 까마귀를 날려보내며 세상 형편을 알아보고 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해가 져도 돌아오지 않았다. 둘쨋날은 중까마귀를 날려보내며 세상 형편을 알아보고 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해가 져도 돌아오지 않았다. 셋쨋날은 작은 까마귀를 날려보냈으나, 또 해가 져도 돌아오지 않았다.
넷쨋날은 비둘기를 날려보내며 세상 형편을 알아보고 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비둘기는 자작나무(birth tree) 가지를
입에 물고 돌아왔다. 그래서 나마는 이제는 홍수가 그친 것을 알았다.
(...)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 큰 홍수 때에 살아남은 나마의 후손이다." 7) -박시인의 '알타이 신화' 청노루 출판사 '중앙아시아' 부분

 

부록:수메르의 엔키 신화와 염제 신농 신화의 기타 유사성




1. 엔키의 농사신의 성격



엔키에 대해 수메르의 점토판 '엔키와 세계질서'는 이렇게 말한다.


"쟁기와 멍에를 그는 만들고, 위대한 왕자 엔키 .... 성스런 밭고랑을 열고,
영원의 경작지에 곡물이 자라도록 했고, 신, 평원의 보석이자 장식품,
그것에 꼭 맞는 엔릴의 농부, 엔킴두, 수로와 도랑의 신에게 엔키는 그것들을 맡겼다.

그 신은 영원의 경작지를 불러, '구누'-곡물을 생산하도록 했고, 엔키는 그것의 크고 작은 콩들을 풍부
하게 만들고,
그... 곡물을 그는 곡물창고에 쌓았으며,
엔키는 곡물창고에 곡물창고를 더했고, 엔릴과 함께 그는 사람들을 위해 몇 곱절로 늘였다:....
그 여성 .... 대지의 원동력, 검은 머리 사람들의 확고한 지지자,
아슈난, 모든 것들의 힘에게, 엔키는 그것들을 맡겼다."


2. 엔키,염제가 아파 앓아눕는 과정에서의 자세한 유사성과 약초,풀


중국의 신화에는 신농씨는 의약(醫藥)을 최초로 만든 사람으로 여겨지며
그는 신기한 채찍으로 풀들을 다 때려보며 그 약초의 독성의 유무 그 약초의 성질을 알아보았으며
거기서 그치지않고 자신이 직접 풀들을 맛봄으로서 풀들의 효능에 대해서 연구했으며 이로
약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치료했습니다.

그는 약초의 성질을 알기 위해 풀을 맛보다가 중독되어서 하루에 열두 차례나 중독되어 죽을 뻔한 적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몸은 유리처럼 투명해서 오장육부(五臟六腑)를 훤히 들여다보고 중독된 부분이 어느 곳인지를
알아내어 치료를 해서 위기를 여러번 모면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메르에도 이와 유사한 신화가 있는데.
'엔키와 닌후르사그' 점토판이 그것입니다.

이 점토판에 따르면 엔키는 수메르의 낙원인 딜문에 있었는데. 그는 딜문에 자라난 각종 풀들을 보고는
'내가 풀들의 운명을 알려고 한다. 이것이 무엇이냐? 저것이 무엇이냐?'라고 하며
온갖 풀들의 맛을 보았고
점토판은 엔키가 '그것들의 운명을 결정했고 그 속을 알았다.'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수메르의 어머니 여신 닌후르사그는 엔키가 허락없이 낙원의 풀들을 뜯어먹은 것에 대해 분개하며
엔키에게 저주를 내렸고 엔키는 두피(頭皮)와 머리카락과 코,입,목구멍,팔,갈비뼈,어깨 등 온 몸에 병이 들었습니다.

신들은 닌후르사그를 진정시키고 그녀의 화를 가라앉히는데 주력했고 그녀는 화가 풀려 엔키의
몸의 각 부분의 병을 치료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중국의 신농 신화와 유사한 것을 볼수있습니다.




-----------------------------------------------------------------------------------------------

이 연구는 여러분들의 후원금으로 만들어집니다. 

 

 

킹제임스성경 고린도전서 9: 11 만일 우리가 너희에게 영적인 것들을 뿌렸다면 우리가 너희의 물질적인 것을 거둔다

해서 그것이 대단한 일이겠느냐?

 

 

 

* 국민은행 563402 -01 -241756  최문석






네이버 카페  '동방.서방제국 집현전'   http://cafe.naver.com/nagwangfal



 














핑백

덧글

  • 제홍씨帝鴻氏 2012/04/05 17:52 # 답글

    추가: 수메르 엔키 신화에는 염제신농이 약초먹다 아파서 누워버려서 배를 투명하게하여 독약 가려내는 거같은 신화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또 엔키 신화는 수신水神적 성격만이 아니라 농사신으로서의 요소도 등장하고있다.
  • ㅇㄹㅇㄹ 2012/04/05 19:41 # 삭제 답글

    수메르와 동방지역 문화가 의외로 유사한 점이 많군요.
    식민빠, 매식자들의 뇌내 구조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겠지만.
    하여간 좋은 자료를 많이 올려주시니 글을 잘보고 있습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06 06:32 #

    ㅎㅎ 그러게요. 매번 감사합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