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츙격! 홍산문명의 최고 통치자 전욱 고양씨 by 제홍씨帝鴻氏

전욱 고양 임금의 실존이 밝혀지다!


홍산문명 최고 통치자와 전욱 고양씨의 일치성에 대해서




                           (기원전 3천년대 우하량 문화(홍산 문화)의 최고 통치자 옥인형)






(홍산문명 연표. 크게 보려면 클릭)






중국 고대 기록에 나오는 전욱 고양의 모습은 홍산문화(우하량 문화 단계) 최고 지도자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있다.
이를 총 7가지 사항으로 파악해서 설명할 것이다!
귀를 뚫고 잘 듣도록 하여라!





0. 전욱이 홍산문화(우하량 문화 단계)의 최고 통치자라는 연대,수도 위치적 근거






전욱이 홍산문명과 연결되는건 그의 아버지 한류韓流가 돼지룡 모습이라는 산해경 기록 외에도 또 있다.
바로 전욱의 수도가 홍산문화 땅에 있고 전욱의 연대가 중국 기록에서 기원전 3천년대로 나오는..,

즉 홍산문명의 연대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진서晉書'에는 모용외가 전욱 고양씨의 옛 도읍인 요서 극성에 도읍하였다고 나온다.


"(모용)외는 대극성(大棘城)이 제(帝) 전욱(顓頊)(→전욱 고양씨)의 옛 터라고 여겼으므로
(혜제惠帝) 원강(元康) 4년(294년)에는 그곳으로 옮겨와 살았다." - 진서晉書 모용외 재기


홍산의 땅이 바로 요서에 있다. 요서가 황제헌원,전욱 고양,제곡 고신의 도읍이란 인식은 다른 중국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황제헌원부터 말해보자.

사마천 사기 오제본기에 황제헌원의 도읍은 탁록이라 했다. 탁록은 홍산문화 중심지 바로 근처 남쪽에 있다. 고로 생각할 필요도
없이 탁록은 홍산문화와 연결된다.


전욱을 살펴볼까.
전욱은 북방신이란 점도 그렇지만 '제왕세기'에서 "전욱은 수도를 '박'에 두었고 .... 곡은 박에 거주했다."라는 기록에서의
'박'을 주목해야한다.

'박'은 상나라(은나라)를 세운 상족의 수도 이름인데. 상족의 수도인 '박'도 한 가지가 아니라 세 종류나 된다.

[좌전] 소공 9년에 "마침내 무왕이 상을.. 누르고 ... 숙신,연,박도 눌렀는데. 이는 우리의 북방 토지다."라고
하였다. 주나라의 북방에 숙신,연,박이 있다는 것이며 연은 북경에, 숙신은 요서에 있다. 고로 박도 북방에 있게 된다.

[순자] 성상편에 상나라 시조 '설'의 아들 소명이 지석이라는 곳에서 살앗다고 적는데. 지석은 이른바 상족의 원주지가
된다.
[회남자] 지형훈에서 요수가 지석에서 나온다...라고 하였으므로 바로 요하 일대가 상족의 원주지가 된다.


사기 오제본기와 공자의 대대례에 순 임금 시기인 기원전 2천년 중국의 북쪽에 발發,숙신이 있다고 하였다.


이 발發이 바로 언어학으로 '박'과 연결되며 홍산문명의 수도이고 숙신은 홍산문화에 뒤이어 일어난 하가점하층문화를 의미한다.
또한 상족이 바로 하가점하층문화에서 갈라져 나와 상나라(은나라)를 세웠단 것도 된다.


그렇다면 황제헌원,헌원의 손자 전욱고양,헌원의 손자 제곡고신은 모두 홍산문명이 된다.





1. 전욱계의 돼지룡의 모습

"전욱은 아버지 한류韓流는 머리가 길쭉하며 귀가 작고 사람의 얼굴에 돼지주둥이를 하였으며
비늘이 있는 몸(용龍)에 다리가 굽었다. (...) 전욱을 낳았다."
-산해경 해외경




(기원전 3천년대 홍산 문화의 돼지룡 옥기)



(우하량 문화(홍산문화)에서 출토된 돼지룡 옥기)






2. 말발굽형 옥기를 머리 정수리에 상투로 맨 홍산문명 통치자로서의 모습


"전욱은 태어날 때 머리의 살이 솟아올라 방패와 창이 대립하는 것처럼 높이 솟아있었다." -제왕세기

"(전욱의 모습은) 머리에 뿔과 같은 것이 자란 것으로..." -원화충袁華忠의 논형전역論衡全譯

"전욱은 머리 위가 솟아올라 방패와 창처럼 대립하는 모양이며 금신으로 계절에 따라 움직이는데 정수리의
모양이 말(斗)처럼 사방형이다."
- 백호통白虎通

"(전욱은) 뿔을 머리에 쓴 모양이 마치 방패를 쓴 것 같다. " -논형論衡






(우하량 문화(홍산문화)의 지배자급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말발굽 모양 옥기. 정수리에 상투를 매는데 쓰인다.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기둥이란 상징적 의미도 있다. 고대 중국 서책 '회남자'에 전욱 시절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구리 기둥이 있었는데. 그걸 부주산이라고 한다. 그것의 신화적 표현이 이것이라 추측된다. )











(우하량 문화(홍산문화)의 왕족급의 무덤의 성인 남성의 머리에 놓여진 말발굽 모양 옥기. 정수리에 상투를 매는데 쓰인다. 우하량 제2지접 1호 적석총 21호묘다.)

(우하량 문화(홍산문화)의 왕족급의 무덤의 성인 남성의 머리에 놓여진 말발굽 모양 옥기. 정수리에 상투를 매는데 쓰인다. :우하량 제2지접 1호 적석총 21호묘다.)


(우하량 문화(홍산문화)의 최고 통치자의 무덤의 노년 남성의 복부 근처에 놓여진 말발굽 모양 옥기.
정수리에 상투를 매는데 쓰이는 동시에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기둥을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양 손에는 옥거북이 두 개가 쥐어져있고 양 귀에는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옥벽 두개가 놓여져있다.
그리고 복부에는 구름 모양 옥기가 놓여져있다. : 우하량 제5지점 1호총 중심대묘)




(우하량 문화(홍산문화)의 최고 통치자의 무덤의 남성의 복부에 놓여진 말발굽 모양 옥기. 정수리에 상투를 매는데 쓰인다. 동시에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기둥을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머리에는 옥봉황이 놓여져있다.
: 우하량 제16지점 중심대묘)



(우하량 문화(홍산문화)의 '특별한 인물'급의 무덤의 남성의 머리에 놓여진 말발굽 모양 옥베개.
여기서는 상투가 아닌 베개로 쓰인다. 동시에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기둥을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복부에는 옥곰룡과 옥돼지룡이 있다. : 우하량 제2지점 1호총 4호묘)




(우하량 문화(홍산문화)의 지배자급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말발굽 모양 옥기. 정수리에 상투를 매는데 쓰인다.)




3. 해양신으로서의 속성

"전욱은 수덕(水德)으로써..., 즉위하였다." - 제왕세기 <== 수신水神임.

"뱀이 변하여 물고기가 되었는데 이를 어부라 한다. 어부는 전욱이 죽어 다시 부활한 것이다." - 산해경 대황서경

"북방의 끝에 크고 어두운 바다가 있는데. (...) 매우 춥고 얼음이 쌓여있으며 눈,우박,서리,싸라기눈이 내리며 많은
물이 있는 들이 있는데 전욱과 현명은 이곳의 만이천 리를 다스린다."
-회남자 시칙편








4. "적산(赤山:붉은 산 즉 홍산紅山!!!)에 전욱 임금과 아홉 부인이 묻혀있다.
큰 곰,호랑이,표범,요벽(옥기) 등이 묻혀있다."
-산해경






5. 홍산문화 최고 통치자의 무덤 부장 모습이 신화화됨.

"북방의 우강은 사람의 얼굴에 새의 몸으로 귀에 두 마리의 푸른 뱀을 걸고 있고 두 마리의
푸른 뱀을 밟고 있다. (곽박 주: 자(字)는 현명이며 수신水神이다. 장주가 말하기를 "우강이 북극에 서 있다고
하는데 또는 우경(愚京)이라고 하며 또 다른 책에서는 우강은 몸과 손발이 검으며 두 마리의 용을 타고 있다."고
한다.)"
- 산해경 해외북경

"북해의 신은 이름이 우강으로 신령한 거북이 그를 위하여 심부름을 한다." -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 인용 대황경大荒經


우강의 자(字)는 현명이다. 현명은 전욱의 신하이므로 우강은 전욱의 신하다.

둥근 옥벽,옥팔찌는 완전히 둥근게 아니라 중간이 끊어져있다. 이건 '뱀'을 상징한다.
북방의 우강은 바로 중국의 북방의 홍산문화의 최고 통치자를 말하며 최고 통치자가 무덤에 부장된 모습이 이렇게
신화화된 것이다. 거북이 우강을 위하여 심부름한다는 것도 완벽하게 무덤의 부장 모습과 일치한다.



(옥거북이 2개를 양 손에 쥐고 있는 홍산문화의 최고 통치자)

(우하량 문화(홍산문화)의 최고 통치자의 무덤의 노년 남성의 복부 근처에 놓여진 말발굽 모양 옥기.
정수리에 상투를 매는데 쓰이는 동시에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기둥을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양 손에는 옥거북이 두 개가 쥐어져있고 양 귀에는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옥벽 두개가 놓여져있다.
그리고 복부에는 구름 모양 옥기가 놓여져있다. : 우하량 제5지점 1호총 중심대묘)


(우하량 제5지점 1호총 중심대묘의 옥거북이 2개)



6. 전욱 고양의 도읍은 '박'이라고 중국 사서 '제왕세기'에 나온다. 중국 사학자 '부사년'은 '박'이 요서에
있다고 하였다. 즉 홍산문명 일대다.
진서 모용외전에 모용외가 전욱의 옛 도읍이 요서 극성이라고 주장하였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를 통해 고찰해볼 때 전욱 고양은 바로 '박' 즉 박달 혹은 '박'땅(배달) 문명의 임금이었고 중국이 이를 뺏어갔다는
주장이 성립 가능하다. (배달은 원래 박달이라고 불림이 북한 옛 지명들에서 확인된다. '달'은 한국 고대어로 '땅','산'이란
뜻이다.)

중국 사서의 전욱 고양의 문명은 바로 홍산문명이었고 박달(배달)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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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cbcb 2012/04/08 15:49 # 삭제 답글

    짱개들이 요서 지역 문화를 터무니없이 자기들 것이라고 우기는데 이런 글은 좋은 반박 자료가 될 듯합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08 15:51 #

    ㅎㅎ 네. 실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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