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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헌원과 염제신농이 융합하여 신시(神市)를 이루다. by 제홍씨帝鴻氏

 

황제헌원과 염제신농이 융합하여 신시(神市)를 이루다.




그들의 대결  '판천 대전'과 6천년전의 문명   그리고     신시(神市)의 탄생.













(요하문명 연표. 크게 보려면 클릭)






★○ 헌원과 신농이 퓨전하여 신시(神市)를 이루다. ○★




기원전 5000~4000년에 서아시아로부터 채도 문화를 가지고 온 새로운 종족(환웅족=황제헌원족)이
요하 유역의 차하이(사해),싱룽와(흥륭와) 문화의 빗살무늬토기를 쓰는 돼지룡 종족과 융합하여 조보구 문화를 이룬다.

이것이 초기 환웅 부락이며 황제헌원의 부락이었다. (환웅=황제헌원)




(내몽고 츠펑시 박물관에 전시된 싱룽와 문화의 빗살무늬 토기)


(차하이,싱룽와 문화의 돼지룡 출토 : (출처: SBS 역사 다큐 - 3천년의 퍼즐 신화를 찾아서 에서)


(삼성타랍에서 출토된 홍산문화의 옥돼지룡)








조보구인들은 자신들의 시조가 하늘에서 내려온 구름 신(운사雲師 = 황제헌원 = 환웅)과
구름 신의 부하로 새룡(뇌공),사슴룡(풍백),돼지룡(우사)이 있음을 믿었고 구름 신의 아들이 조개 신(환인)이라고 믿었다.
토착 부족의 돼지룡 신앙은 구름 신의 부하신 개념으로 편입된다.



(홍산의 조보구 문화의 새룡,돼지룡,사슴룡,구름이 새겨진 토기
출처는 ( SBS 역사 다큐 - 3천년의 퍼즐 신화를 찾아서 에서의 장면들. 왼쪽부터 조개,새룡,사슴룡,돼지룡의 순서다.)



조보구 문화에서 나오는 천손강림의 모티브는 매우 진귀한 것으로 동아시아 역사상 제일 오래된 천손강림 그림이며
선사시대에선 유일한 그림이라 할 것이다.




이 때 황하 중류에는 염제신농의 앙소문화가 성장하고있었다.




(기원전 3천 5백년~기원전 3천년 시기 중원을 다스렸다는 염제신농)



(앙소 문화 채도에 그려진 앙소 문화의 신(神) 두 뿔이 달려있고 모자의 양옆에도 뿔들이 많이 박혀있으며
두 마리 물고기가 양 옆에 있는게 특징적이다. 이것이 중국 옛 기록들에 소 머리에 사람 몸을 가졌다는
염제 신농의 모습과 흡사하다. 앙소 문화의 신은 염제 신농이었다.)






그리고 기원전 3500년 시기에 황하 중류의 염제신농의 앙소문화가 북진하여 조보구 문화와 탁록에서
서로 충돌하게되어서
앙소문화인들이 패배하고 앙소문화와 조보구 문화가 융합하여 '우하량 문화(홍산 문화)' 전성기 상태로 업그레이드된다.













이것이 사마천의 사기 오제본기에 나오는 황제헌원과 염제신농의 전투 '판천대전'이었고 염제신농이
패배하고 황제헌원은 두 가지 성과를 얻었다.




1. "마침내 뜻을 얻었다." -사마천 사기 오제본기


2. "제후들의 으뜸이 되었다." -사마천 사기 오제본기

3. "염제 신농의 석기를 이어 황제헌원이 옥기 시대를 열었다." - 월절서




앙소로부터 온 더 질좋은 채색토기와 농경 문화는 요하문명이 원시 국가(고국古國)로 성장하는
우하량 문화 단계(홍산문화) 를 창출하는 거대한 성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 때부터 우하량 문화는 다음의 발전 테크를 이루어냈다.



1. 옥기의 전성기 시대를 열게 되었다.

2.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제정일치 사회의 최고 지도자가 등장하며 최고 지도자는 구름모양 옥기,옥 거북이,옥벽 삼종세트와
함께 무덤에 묻혔다.(단군신화의 세 가지 천부인) 최고 지도자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그야말로 신격화된 최고의 지도자였다.

3. 원시 국가(고국 古國) 단계로 진입하였다.

4. 사회 계층 분화,계급 분화,빈부 격차가 발생하였다.

5. 정치 제사 군사권을 장악한 귀족 계급이 출현하여 다른 사람의 재산권까지 장악하게 되었다.

6. 옥기를 제작하는 전문 장인 집단도 출현하여 최초의 분업화가 이루어진다.


- 홍산 옥기는 옥을 파서 조각하는게 굉장히 힘들다. 구멍 하나만 뚫는데도 4~5일이 걸린다.
두 달 동안 두 사람 이상이 매달려야 제작이 가능한데. 홍산문명에서 그것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

즉 이것은 부족이나 씨족 단위에서 아무나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정교하게 제작할 수 있는
직업군이 분화되어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

즉 그것을 제작하는 전문적인 장인 집단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7. 제단,신전,적석총 3위일체 개념 등 유교적 예제 개념을 갖춘 고도화된 원시 종교가 출현한다.

8. 부락 마을들과는 구별된 제사를 위한 성역(제단,신전,적석총의 집합 장소)이 출현하였다.

9. 룡 신앙이 출현하였다.

10. 여신 숭배가 시작되고, 여신전에 여신상과 곰이 같이 숭배되었다.

11. 이어서 곰룡과 돼지룡의 속성이 혼합된 퓨전 돼지룡 신앙이 출현하고 퓨전 돼지룡 토템족이 곰룡 토템족(최고층 집단)의
후계 2인자가 된다.



(기원전 3천년대 우하량 문화(홍산 문화)의 최고 통치자 옥인형)



(우하량 문화(홍산문화)의 최고 통치자의 무덤의 노년 남성의 복부 근처에 놓여진 말발굽 모양 옥기.
정수리에 상투를 매는데 쓰이는 동시에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기둥을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양 손에는 옥거북이 두 개가 쥐어져있고 양 귀에는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옥벽 두개가 놓여져있다.
그리고 복부에는 구름 모양 옥기가 놓여져있다.
석기는 하나도 발견안되었다

구름 모양 옥기,옥벽,옥거북의 3종 세트의 조합이 인상적이다.(단군신화의 세 가지 천부인을 의미)
: 우하량 제5지점 1호총 중심대묘)



(우하량 제2지접 1호 적석총 21호묘다. 우하량 문화(홍산문화)의 왕족급의 무덤으로 성인 남성 1구가
묻혀있고 구름 모양 옥기가 머리 맡에 있고 정수리에 상투매는데 쓰이는 말발굽모양 옥기가 있고
복부에 짐승 얼굴 옥기가 있다.
무려 20여개나 되는 다양한 옥기들도 옷을 해입고 석기는 하나도 발견안되었다.)



(우하량 문화(홍산문화)의 최고 통치자의 무덤의 남성의 복부에 놓여진 말발굽 모양 옥기. 정수리에 상투를 매는데 쓰인다. 동시에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기둥을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머리에는 옥봉황이 놓여져있다.
옥봉황은 하늘과 교통하는 통치자를 상징.
여기서 위에서 본 최고 지도자의 옥인형이 출토되었는데. 사진에 보이는걸 독자들도 능히 알 수 있다.
: 우하량 제16지점 중심대묘)



(우하량 문화(홍산문화)의 '특별한 인물'급의 무덤의 남성의 머리에 놓여진 말발굽 모양 옥베개.
여기서는 상투가 아닌 베개로 쓰인다. 동시에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기둥을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복부에는 옥곰룡과 옥돼지룡이 있다. : 우하량 제2지점 1호총 4호묘)



(우하량 문화의 대형 적석총,적석 제단들)



(우하량 문화의 원형 적석총. 일종의 피라미드 혹은 수메르의 지구라트적 성격을 띄는거죠. 방형도 있습니다.
MBC 다큐멘터리 '삼족오 고대 한류를 밝히다' 에서 )




( SBS 역사 다큐 - 3천년의 퍼즐 신화를 찾아서 에서의 장면들. 우하량 대형 여신전)
(우하량 문화의 대형 여신전)






(우하량 문화의 여신전에서 출토된 여신상의 얼굴 부분)





(우하량 여신상의 복원)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182 페이지에 표시된 우하량 여신묘에서 나온 진흙 곰발)




(우하량 여신묘에서 나온 진흙 곰턱)



( SBS 역사 다큐 - 3천년의 퍼즐 신화를 찾아서 에서의 장면. 차인표도 출연한 흥미로운 다큐죠.)




(우하량 여신묘에서 나온 곰턱뼈 )

(우하량문화의 대형 피라미드 복원. KBS 역사스폐셜 : 만주 시원 대탐사 홍산문명 편에서.)





이 홍산문화(우하량문화)가 왜 환웅의 신시배달국이며 동시에 황제헌원의 헌원국이 되는지는 이미 입이 아프도록 설명했다.
다음 링크를 참조바란다.
http://ragwangfal.egloos.com/1671437




------------------------한국의 역사서가 기억하는 홍산의 우하량 문화 ------------------------------------



0. 기원전 3897년에 건국 ~ 기원전 3천년대 말기에 멸망

1. 하늘 신 환인

2. 하늘신의 아들 환웅. 별칭은 홍제(洪帝). 직위는 천제(天帝)
--- 곰족과 호랑이족을 다스림. 곰족을 지원하고 호랑이족은 퇴출시킴.

3. 풍백,우사,운사가 환웅의 최고 제사장들(단기고사에는 풍백,우사,뇌공으로 나옴)


4. 360사를 관장하고 인간 일을 5가지로 나누어 가르치고 다스리는 체계적인 신시배달의 종교+정치 시스템
& 교리

5. 웅녀라는 여신+여왕 과 곰 토템 신앙

6. 종교+정치 최고 제사장& 최고 통치자 단군

7. 신시(神市). : 마을과는 별도로 분리된 성스런 성역. 고조선의 '소도'

8. 하늘신 환인과 아들 환웅을 이어주는 천부인 세 가지



참조:삼국유사 단군신화.환단고기,단서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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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홍산 문화(우하량 문화)가 바로 삼국유사의 단군신화,환단고기에 나오는 환웅의 신시배달국인데.
환단고기는 환웅의 신시배달국 건국 연대를 기원전 3897년이라 기록하고 고고학으로는 홍산문화(우하량 문화)의
개시 연대가 기원전 4천년~기원전 3500년 사이니까 얼추 맞는다~!

신시배달이란 성역인 신시(神市)와 나라로서의 개념인 '배달'이다.


단군신화에서 하늘 신 환인의 아들인 환웅이 곰족에게 도래하여 문명의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했다는 단군신화의 기록은 채도와 새로운 종족의 이주로 조보구 문화가 열리고 이어 홍산 문화가
열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단군신화에서 환웅의 밑의 최고 제사장들인 풍백,우사,운사가 환웅의 명에 따라 인간의 일을
360가지 일로 나누어서 통솔하고 곡식,수명,질병,형벌,선악 5가지 일을 주관했다는 것은

홍산문화에서 일어난 귀족계급 출현,귀족들의 사유재산화,계급 분화,사회 복잡화와 연관된다.

특히 '곡식,수명,질병,형벌,선악'을 주관한다는건
최고 지도자,귀족 계급이 백성들의 재산,수명,형벌,선악까지 다 주관하게되고 이 최고 지도자와
종교에게 반항하는 건 곧 죽음과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거고 고도화된 종교의 발달도 상징한다.



홍산 문화에서 여신 숭배가 이루어지고 여신전이 건축되고 이것이 곰 토템과 함께 숭배된건
신시에서 환웅의 아내인 여신 웅녀(熊女)가 숭배되었고 웅녀는 사실 곰이었고 이 웅녀가
최고 지도자 단군의 어머니였다는 단군신화와 일치한다.

홍산 문화에서 적석총,여신전,제단의 집합군인 '성역'의 출현은 단군신화에서 신시神市라는 '구별된 성역의 개념'과 일치되고있다.
(신시와 신시에 세워져있었다는 신의 나무인 박달나무,제사장,구별된 성역이라는 이 네 가지 개념은
삼한의 소도에까지 연장되고있지.)


단군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개념인 [하늘신 환인,하늘의 아들 환웅,여신 웅녀,최고 지도자 단군,풍백,우사,운사]
의 개념도 모두 홍산문화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도 유념해야한다.










(단군신화)





"황제헌원이 염제신농의 석기 시대에 이어 옥기의 시대를 열었다." - 월절서



황제족(우하량 문화)의 최고 지도자는 제사권,병권을 거머쥔 귀족들의 추대를 받아 만인萬人 위에
군림하는 일인독존一人獨尊의 위치에 앉았다. 실로 기록에 나오는 황제헌원(환웅)의 위상과 걸맞았다.

최고 지도자는 각종 다양한 옥기들과 함께 묻혔다.



---------------------중국의 역사서가 기억하는 홍산문명 -----------------------------------------------

0. 유웅국(有熊國:곰 나라)의 기원전 3천년대 말기 임금


1. 중앙의 임금 황제(黃帝) 직위에 있음.(천제天帝의 위치임.)


2. 이름은 헌원. 별칭은 홍 임금(제홍帝鴻)


3. 나라의 관직을 운사雲師라고 부름. 풍백,우사,뇌공이 헌원의 수레 앞을 쓸음.

4. 최초로 옥기 시대를 열었다고한다.


5. 계절,기후를 연구하여 오곡 심는 법을 가르쳐주고 토지를 측량,구획하고 좌대감,우대감을 설치하고
제단을 쌓고 신들에게 제사를 많이 지냈다.


6. 중국 신화에 도철괴물(은나라 청동그릇,무씨사 화상석에 호랑이 괴물로 표현됨)로 나오는 치우와 싸워 이김.

7. "곰,큰곰,호랑이 종의 6마리를 거느리고 염제신농과 싸워 이기다." -사마천 사기 오제본기-


8 산해경山海經에 이르길 헌원의 나라에는 헌원의 언덕이 있는데. 네모난 제단의 모습을 하고 있다.
(홍산문명의 방형 적석총을 의미)

9. 황제헌원은 신이경神異經에서 '제홍'이라는 이름의 개 혹은 큰 곰 모습의 괴물로 나온다. 그 곰 괴물은
자신의 꼬리를 입에 물고 빙빙 돌며 하늘을 향해 웃는다고하는데. 홍산문화의 곰룡 옥기의 모습과
일치한다.

10. 황제헌원의 손자인 전욱은 헌원을 나이 20세에 헌원을 보좌하다가 헌원이 죽자 뒤이어 제위에 등극했다.
산해경山海經에서 전욱의 아버지 '한류韓流'의 모습은 반은 돼지에 반은 용의 모습을 하고있다고 나온다.
(홍산문화의 돼지룡 옥기의 모습과 일치한다.)


11. '전욱'에 이어 즉위한 '제곡'도 전욱과 같이 홍산문명이 있는 요서 땅에 도읍을 두었다.
'제곡'의 도읍의 이름은 '박'으로 단군 관련 야사에 나오는 단군의 도읍이라는 '밝 땅(배달)'과
발음이 비슷하다.


12. 헌원의 아내이자 '여신'인 누조는 최초로 누에를 쳤으며 누에의 '여신'이 되었다.
이는 홍산문명에서 여신전과 옥누에가 발견되어 누에가 신으로 숭배되었음과 누에치기가 있었고
여신이 숭배되었음과 일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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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에 나오는 3개의 천부인 개념도 이 때에 출현하는데.
최고 지도자는 구름모양 옥기,둥근 옥벽,옥거북 3종 세트와 함께 무덤에 매장되었다.





(우하량 문화(홍산문화)의 최고 지도자가 묻힌 제5지점 1호총 중심대묘의 모습)



그 중에서도 최고 지도자의 최고 상징은 바로 구름과 곰룡이었다.


그래서 사마천 사기 오제본기에는 황제헌원이 관직을 모든 관직을 구름으로 이름지어 운사(雲師)라 부르게하였다하니
구름 토템의 특징을 보여주며 이야말로 단군신화에 나오는 운사雲師의 정체라 할 것이다.

(홍산문화 최고 지도자의 상징 구름 모양 옥기)




(우하량 문화(홍산 문화)의 채색토기들에 자주 보이는 구름 무늬)





홍산문명은 곰룡을 최고의 용신(龍神)으로 숭배하였다. 곰룡을 봐보자!




(홍산문화의 곰룡 옥기)



(곰룡 :KBS 역사스폐셜 만주 시원 대탐사 홍산문명 편 중)

(상해박물관 소장 홍산문화 출토 옥곰룡玉熊龍. 사해문화 멧돼지룡은 이 옥곰룡과 달리 코끝부분이 올라가서
멧돼지처럼 되지만 이건 그렇지않고 오히려 내려간다. 입도 돼지와 달리 길지않고 짧다. )


"옥룡 머리 부분은 곰과 닮았는데. 큰 눈과 두드러진 코, 꽉 다문 입과 둥근 귀, C자 모양의 체구,머리와
꼬리가 맞물려있다. 요녕성 조양현 우하량 여신묘 앞쪽의 한 구덩이와 제2지점 2호 적석총 대묘 옆의
차워넣은 흙에서 곰의 아래턱이 출토된 것을 근거로, 또한 민속학 자료 중 동북 소수민족을 곰을
토템으로 숭배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하여 곰머리의 옥룡은 홍산지역 씨족들이 숭배하는
토템의 신으로 여기고 있다. 또한 황제가 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있어 이른바 옥웅신玉熊神이라고 일컬어졌다고한다.
동북 지역은 곰의 중요한 거주지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곰의 용맹한 힘이 사람들로 하여금 경외하게 만들었고
따라서 신을 보는 것처럼 숭배하는 전통의 원류가 오래전부터 있게된 것으로 생각하고있다.
홍산 옥기 중에도 곰 형태로 장식하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우하량 유적지 제16지점 1번 묘에서 머리 두 개의
곰 모양에 3개의 구멍이 있는 옥 장식품이 출토되었다.(옥웅수삼공기) "
-상하이 박물관 소장 중국 고대 청동기.옥기 전시 전집에서-





(옥웅수삼공기)




황제헌원은 스스로를 유웅씨有熊氏(곰씨)라 불렀다고 사마천 사기는 기록한다.


중국의 사마천 사기는
"탁록(홍산문명의 땅)에 황제헌원의 도읍이 있고 황제헌원은 유웅씨有熊氏라 불린다.
전쟁할 때도 곰,호랑이 데리고 싸움."이라고 나온다.

황제헌원도 기원전 3천년대도, 홍산문명 지역의 왕이다.
이거 자체가 홍산문명이 곰 토템이었다는 사료적 근거가 된다. 기원전 4000~3000년대의 우하량 문화
시기에 여신전이 만들어지고 곰룡 옥기가 만들어졌다. 그전의 사해문화에서는 돼지룡 옥기를
만들었지만 이젠 그것이 주로 곰룡 옥기로 대체된 것이다.

여신전에선 진흙으로 만든 곰발까지 나온다.

그래서 홍산문명이 곰 토템을 보유했다는 것이다.
곰과 여신의 결합은 삼국유사의 단군신화엔 웅녀熊女로 나오는 것이고.



황제헌원의 또 다른 이름은 제홍(帝鴻)이라고 춘추좌씨전에서 두예가 주석했다.


제홍은 '제강'이라 불리는데. 제강은 '혼돈'이라고도 불린다. 이 제홍=제강=혼돈이 신이경神異經의 서황경에
곰룡의 모습으로 나온다.




"곤륜의 서쪽에 짐승이 있는데 마치 개와 같이 생겼으며 털은 길고 발은 네 개로
큰 곰같기도한데. 발톱이 없다. 눈이 있으나 보지 못하며 걸을 때 눈을 뜨지 않는다.
두 개의 귀가 있으나 듣지 못하지만 사람이 지나가는 것은 안다. (...)
이름을 '혼돈'이라 부른다. (...) 어떤 일도 하지 않고 항상 자신의 꼬리를 물고 돌면서 하늘을 향해
웃고 있다."
-신이경 서황경

"이 신은 혼돈으로 (...) 사실은 제홍이다.(필원 주:강(江)은 음이 홍(鴻)과 같다. )" -산해경 서차삼경


"옛날에 제홍씨는...,(두예의 주석:제홍은 황제이다.)" -좌전 . 문공 18년




(홍산문화의 곰룡 옥기)


신이경의 서황경에서 하늘을 보고 웃으며 지 꼬리를 물고 빙빙 도는 '혼돈'이라
불리는 괴수가 나오는데. 개같기도하고 곰같기도하다고 나온다. 그 이름은 '제홍' 혹은 '제강'이라고 하는데.

제홍=제강=혼돈이란 개념은 중국 사서에서 자주 나오는 것이다.

자기 꼬리를 물고 빙빙 도는건 중동 신화에서 나오는 꼬리를 물고 빙빙 도는 '우로보로스'의 개념과
유사하다. 홍산문화의 곰룡,돼지룡도 자기 꼬리를 물고 빙빙 돈다.




(그리스 ,이란 신화에 등장하는 꼬리를 물고 빙빙 도는 용, 우로보로스)



문제는 이 제홍이라고 불리는 괴물이 꼬리를 물고 빙빙 돌며 개같기도하고 곰같기도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개하고 곰은 진화론적으로 조상이 '곰개'로 똑같으며 개하고 곰은 생김새도 비슷하다.

그래서 곰룡을 보고 후세 중국인들은 이것이 개인가 곰인가 긴가민가하여 개같기도하고 곰같기도하다고
적은 것이다.
게다가 이 제홍은 황제헌원과 동일 인물이라고 춘추좌씨전에서 두예가 주석했다는 점이나
황제헌원이 유웅씨(有熊氏) 즉 곰씨라고 불린 점...!

이것은 정확히 홍산문화의 곰룡이 중국 고대 신화 사서에서 '확인'되는 것이다.
(이건 필자가 최초로 발견한 것이다.)


또 춘추좌씨전의 두예의 주석에서 두예는 '제홍은 황제헌원'이라 하였다.
황제헌원은 유웅씨有熊氏 혹은 유웅국有熊國의 왕이라고 사마천의 사기 등에 자주 나온다.
즉 자신이 곰 혹은 곰의 나라의 왕이라는 것이다. 사서와 유물이 정확히 일치되고 있는 것이다.

또 중국 사서에서 흔히 황제헌원을 용과 동일시합니다. 이것 역시 '곰룡'이죠.






홍산에서 발견된 옥곰룡 유물이야말로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신의 정체라 할 것이다.




(홍산문화의 곰룡 옥기)










이 때 이미 과거의 돼지룡 숭배 종족(과거의 차하이,싱룽와,조보구 문화)이 황제족과 함께 융합하여 두 가지의 돼지룡이 출현한다.
하나는 완전한 돼지룡이고 또 하나는 곰과 돼지가 융합된 퓨전 형태의 돼지룡이었다.





(우하량 문화(홍산문화)의 '특별한 인물'급의 무덤의 남성의 머리에 놓여진 말발굽 모양 옥베개.
여기서는 상투가 아닌 베개로 쓰인다. 동시에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기둥을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복부에는 옥곰룡과 옥돼지룡이 있다. 서로 다른 형태의 옥룡 두 개가 매장된걸로 통해
곰룡,돼지룡 종족의 융합을 알 수 있다. : 우하량 제2지점 1호총 4호묘)



(우하량 문화(홍산문화)의 우하량 제2지점 1호총 4호묘에서 출토된 돼지룡 옥기의 옆 모습)




(우하량 문화(홍산문화)의 우하량 제2지점 1호총 4호묘에서 출토된 돼지룡 옥기의 앞 모습 )




(우하량 문화(홍산문화)의 우하량 제2지점 1호총 4호묘에서 출토된 돼지룡 옥기의 아래 모습 )





(우하량 문화(홍산문화)의 적석총에서 출토된 또 다른 돼지룡)






(우하량 문화(홍산문화)의 적석총에서 출토된 또 다른 돼지룡 )




위의 3가지 돼지룡들은 표기상 '돼지룡'으로 표기하였지만 사실 완벽한 돼지룡이라고 부르기엔 애매하다.

왜냐면 이 돼지룡들은 우리가 아는 돼지의 콧 구멍이 영 엉뚱한데에 위치해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돼지의 코 구멍의 위치)



(붉은 선으로 표시한 홍산문화 돼지룡(?)의 코와 입)

(붉은 선으로 표시한 홍산문화 돼지룡(?)의 코와 입)

(붉은 선으로 표시한 홍산문화 돼지룡(?)의 코와 입)




기원전 3천년 홍산문화 시기에 만들어진 돼지룡(삼성타랍 유적에서 출토된)은 밑의 사진이 대표적이다.
돼지룡을 이렇게 만드는거지. 위처럼 저런 식으로 만들면 정상적인 돼지라고 볼 수 없다.



(삼성타랍에서 출토된 기원전 3천년경 홍산문화의 옥돼지룡)



그렇다면 콧구멍이 영 딴 데 위치해서 정상적인 돼지라고 볼 수 없지만 돼지같이 보이는 저 이상한 돼지룡같은 것들은
도대체 뭘까?

그건 중국 고대 기록들에서 황제헌원의 손자라는 전욱을 말한다.

(전욱이 홍산문화와 연관된다는건 이 자료를 참고. http://ragwangfal.egloos.com/1673887 )

전욱의 아버지는 돼지룡(이름이 한류韓流)이라고 산해경에 나오는데도 전욱은 곰(황제헌원)의 손자라고
사마천 사기,제왕세기 등에 기록되어있다.

황제헌원은 유웅씨(有熊氏)라고 불리며 그는 제홍으로 불리며 제홍은 '신이경'에서 곰룡의 모습을 하고있다.

왜 돼지룡의 아들이 곰룡의 손자가 되어있는 것일까?


이 모순은 양 종족의 융합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돼지룡 종족이 홍산문화의 곰룡 종족(황제헌원족)의 지배 아래 복속되고 그 후에 곰룡 종족과 융합하여
후계 2인자 자리를 꿰어차게된 것이다. 그렇게하여 정상적인 돼지룡이 아닌.., 그야말로 곰룡과 돼지룡이 합체한
새로운 형태의 곰+돼지룡이 된 것이다.





이렇게 홍산문화의 곰룡,돼지룡을 논하였다.






이제 홍산문화의 여신 '웅녀熊女'를 논해보자.



곰과 함께 숭배되는 홍산의 여신은 그야말로 단군신화의 웅녀다.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182 페이지에 표시된 우하량 여신묘에서 나온 진흙 곰발)



"여신묘의 주실에서 확인된 동물의 양발은 영락없는 곰의 발이었다. 네 발톱이 이렇게 노출된 동물은 곰이 유일하다."
-183p 코리안 루트를 찾아서 성안당 출판사




(홍산의 여신)



홍산문화는 서아시아나 중앙아시아 문화의 요소가 많이 발견된다. 도기를 일부러 깨서
매장하거나 진흙으로 여인상을 만드는 습속은 모두 중앙아시아나 서아시아와 관련이 있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양사오 문화의 여러 곳에서는 도기로 만든 사람상이 발견되는데 토르소 형태도 있고 임신한 여자
형태도 있으며 머리만 있는 경우도 있어. 이들은 코카서스 인종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
이 소조상이 나온 지역은 웨이하(위하) 부근으로, 이곳은 오랫동안 동서문화가 교차한 곳이야.
아마도 여성 소조상들을 만든 무당은 중앙아시아에서 온 무당일 것이다.
우하량의 여신묘에서도 이런 종류의 토우와 거대한 트기의 여신이 나왔어. 모두 서아시아나 중앙아시아의
영향이라 볼 수 있지.
우하량에서 나온 거대한 크기의 여신은 파란색 눈을 가지고 있어. 사석에서는 중국 학자들도 갸우뚱해하며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고백하고는 해. 까만 눈을 가진 황제족이 여신상을 만들었다면
당연히 까만 눈이어야 할 게 아닌가 말이야.
게다가 음팡진 눈과 큰 입은 동양인 이목구비와는 영 딴판이지."
- 326-327P 김인희의 소호씨 이야기에서






홍산문화(우하량 문화)의 여신 숭배나 홍산문화의 채도는 앙소문화를 통해 서아시아 문화권의 영향을 받아
서아시아의 여신 숭배,흙으로 여신상 만드는 문화가 홍산문화로 유입된 것이다.




(우하량 문화의 여신전에서 출토된 여신상의 얼굴 부분)



산해경에 이 여신은 여발女魃로 등장한다. 여발은 황제헌원의 딸로 가뭄의 여신으로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적수赤水 물가 멀리에 거주하게하여 따로 숭배받게하였다고 나온다.



"푸른 옷을 입은 사람이 있어 황제여발이라고 한다. (...)
황제(黃帝)가 천녀인 발을 내려보내니 비가 그쳤고 마침내 치우를 죽였다.
발이 다시 (하늘로) 올라갈 수 없게 되자 그가 머무는 곳에서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숙균이 황제에게 이 사실을 아뢰자 후에 그녀를 적수(赤水:붉은 물 즉 홍산紅山의 강)의 북쪽에 두어 살게 하였고
숙균은 그리하여 밭농사의 책임자가 되었다.
발이 때때로 그 곳을 빠져나오면 그를 쫓아내려는 사람들은 "신이여! (적수의) 북쪽으로 돌아가소서!"
라고 명령하듯이 말했다. 그리고 우선 물길을 깨끗하게 하고 크고 작은 도랑을 터서 통하게 해놓았다."

- 산해경 대황북경


중앙아시아 사막 혹은 그 너머에서부터 온 여신은
홍산인들에게 있어선 모래 사막을 통과해온 가뭄의 여신으로 여겨져 두려움과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얼마나 두려웠냐면 그들은 그들의 집단 숭배 묘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여신 사당을 만들어서 거기에서
따로 숭배할 정도였으니..,


단군신화에서 이 여신은 웅녀熊女로 등장한다. 여신묘에선 진흙 곰발과 곰 턱뼈가 출토되어 여신과 곰이
함께 최고의 위치에서 숭배되었음을 증명하고있다.
시베리아 신화에서 곰은 어머니 여신의 자식으로 등장하는데. 시베리아 신화는 홍산문명의 신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이다.










결론 요약:


1. 기원전 5000~4000년 조보구 문화는 서아시아 채색토기 문화의 전래로 이루어졌다.
조보구 문화는 환웅(황제헌원)의 초기 부락이고 이 때 최초의 천손강림 신화가 탄생했다.


2. 이 당시 중원의 황하 중류 유역에 염제신농의 앙소문화가 있었다.


3. 기원전 4000년경에 조보구 문화가 우하량 문화 단계로 진입한다.

기원전 3500년경에 홍산 근처인 판천,탁록 일대에서 앙소문화와 부족 충돌을 일으켜(판천대전)
이들이 서로 융합하여 '본격적인 우하량 문화 단계(홍산 문화)'로 진입한다.
적석총,제단,여신전이 건립되어 '원시 국가 단계(고국古國)'로 진입한다.

일반 마을과는 구별된 적석총,제단,여신전의 집합군 즉 '성역'의 출현이 이루어진다.(단군신화의 신시神市)

이것이 환웅의 신시배달이며 황제헌원의 헌원국이다.

우하량 문화(홍산문화) = 환웅의 신시배달 = 황제헌원의 헌원국


4. 홍산 문화의 최고 용신(龍神)은 곰룡이었고 이는 황제헌원(환웅)과 동일시되었으며 이것이
단군신화의 곰신과 연결된다.


5. 이후 홍산문화 안에서는 돼지룡을 토템으로 하는 종족이 황제헌원으로 대표되는 곰룡 종족과 융합을 이루어
후계 2인자 종족으로 굳혀져가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중국 사서에서 황제헌원의 손자 '전욱 고양' 임금으로 나온다.


6. 홍산 문화의 여신 숭배는 단군신화에는 웅녀熊女로 , 중국 사서 산해경에는 황제헌원의 딸 '발'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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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여러분들의 후원금으로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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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3:15 #

    황제헌원이 환웅의 신하 아들이라는건 후대의 기록인 태백일사의 기록에 불과합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3:16 #

    황제헌원이 탁록 일대에서 문명을 일으켰다는 중국의 기록이나 여러 문헌 고고학적 증거의 일치,
    황제헌원의 모습이 신이경에서 '곰룡'으로 나오는 것으로 볼 때 황제헌원은 홍산문명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중국대륙의 다른 곳에서는 황제헌원과 일치하는 다른 문명의 존재가 전혀 드러나지않습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3:17 #

    그리고 치우천황이란 것 자체가 홍산문명하고 절대 일치될수가없습니다.
    홍산문명은 옥기문명이지. 청동기로 무장하고 싸우는 전투국가가 절대 아닙니다.

    제정일치 사회,제의적인 것에 지나치게 쏠린 원시 국가(고국古國)입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3:21 #

    http://ragwangfal.egloos.com/1673525

    치우천황은 량주문화입니다.

    산동의 대문구 문화 = 소호국

    황하 중류의 앙소 문화 = 염제신농입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3:23 #

    황제헌원이 환웅이라는 종합연구결과입니다.

    http://ragwangfal.egloos.com/1674485
  • 제홍씨帝鴻氏 2012/06/18 19:58 #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치우천황의 문명은 홍산문화가 아니란겁니다. 홍산문명 최고 통치자가 황제헌원이고 이 인물이 환웅과 동일인물이란 겁니다.
    치우천황이 홍산문화란 고고학적 증거는 전무全無하며 모든 고고학,사료적 기록을 검토했을 때 치우천황은 량주문화(장강문명)이지. 홍산문화가 아닙니다. 확실히 아시기바랍니다.
  • 알콩달콩 2012/04/10 13:32 # 답글

    태백일사의 기록에 불과 하다 하셨는데 그럼 태백일사는 위서인가요? 산해경은 진서 이고?? 너무 편엽적인 역사 인식이 아닌지 걱정입니다..
    홍산문명은 고조선 이전의 나라이며 나라 단계에 접어든 문명을 가진 유적인건 아시죠? 바로 배달국을 뜻하는 나라가 홍산문명인데...치우천왕을 부정한다면 배달국도 부정되어야 정상 아닌가요? 거기에 헌원을 끼워 넣는다는건 홍산문명 또한 중국의 역사다란 논리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환단고기에도 14대 환웅은 치우라고 되어 있습니다..전 이것이 거짓이 아니라고 봅니다..왜냐면 산해경보다 환단고기가 더 신빙성 있고 정확하다고 보기 떄문입니다..산해경은 고작 치우와 헌원의 전쟁만 나오지만 환단고기는 치우와 헌원의 전쟁은 물론 연대기와 인물의 이름등 세세하게 나와 있는게 환단 고기 입니다..믿지 않는다고 하여도 상관 없습니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난중에 진실된 역사는 밝혀지게 되어 있으니까요..식민사학은 영원할수 없기 떄문에 전 정의 를 믿습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3:35 #

    위서라는건 아닙니다.
    홍산문명이 워낙 오래전의 역사이기에 중국에선 황제헌원으로, 한국에선 환웅으로 기억하는데.
    태백일사는 조선시기의 사서이고 태백일사의 근간되는 사료가 고구려,고려 시대에 저술되었다고 추측한다면 고구려,고려,조선 어느 시기에 황제헌원을 다른 종족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임의적으로 기록을
    추가했을 가능성을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3:36 #

    치우천황을 부정한다고 배달국이 부정되진않습니다. 삼국유사에도 나오는게 환웅의 신시이니까요.
    그리고 환단고기의 배달국이 부정되는건 절대로 아닙니다.

    환단고기의 배달국은 기원전 3897년~기원전 2700년까지로 연대가 되어있는데. 이건 홍산문명의 연대가
    매우 근접하게 일치하고있습니다.(홍산문화가 기원전 4천년~기원전 3천년)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3:38 #

    량주문화의 치우 머리 옥기의 원형이 홍산문화의 짐승 머리 옥패입니다. 량주문화는 홍산으로부터
    안후이성의 링쟈탄을 거쳐온 홍산의 옥기문화를 전수받은 것이구요.

    사마천 사기 오제본기에도 진운씨(황제헌원)의 서자 아들이 바로 도철(치우)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량주문화(치우국)는 홍산의 영향을 받아 생겼으며 치우 신앙의 원형도 홍산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 알콩달콩 2012/04/10 13:36 # 답글

    보니까 죄다 중국자료들만 인용하셨네요 내국인을 위장한 중국인 같습니다??ㄷㄷㄷㄷ (이런말 까지 하고 싶지 않앗는데...너무 중국인 티가 납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3:39 #

    중국 기록들을 인용한다고 중국인이라 하시는건 매우 큰 오해이십니다.
    중국이고 한국이고를 구분하면 매우 주관적이 될 수가 있습니다. 중국의 기록들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 알콩달콩 2012/04/10 13:39 # 답글

    어떻게 들으실지 모르겟지만 저 또한 헌원을 중국인이라 보진 않습니다.. 헌원 또한 동이족이라 보고 있지요..허나 그렇다고 해서 헌원이 환웅이 될수 있다곤 생각하지 않네요..역사적인 사실이 그렇습니다..산해경만으론 헌원이 주인공이죠..하지만 환단고기를 보시면 알겠지만 헌원은 환웅중에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3:40 #

    황제헌원이 환웅이 아니라면 황제헌원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않는겁니다. 고고학적으로 그렇다는겁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3:40 #

    헌원=환웅 발음이 유사합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면으로 고증해보면 황제헌원 환웅 둘 다 동일인물이란건 매우 쉽게 알 수 있습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3:41 #

    중국대륙의 대표적인 신석기 문화는 황하 중류의 앙소문화,산동의 대문구 문화,장강 유역의 량주 문화가 있습니다. 앙소는 염제신농이고 대문구는 소호금천이고 량주는 치우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홍산이 황제헌원이 아니라고 봅시다. 그렇다면 황제헌원의 문명은 어디에도 존재하지않게되는겁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3:44 #

    그리고 황제헌원과 치우간에 탁록대전이 있었다하셨는데.
    홍산문화는 고고학적으로 고찰해보면 치우의 문명으로 절대 볼 수가 없습니다. 청동 무기가 전혀 안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홍산보다 나라의 틀이 '방국' 형태로 매우 강성햇던 량주는 도철을 숭배하고 후에 황하 유역으로 치고 올라가 룽산 문화(용산 문화)를 세워 청동기 문화를 크게 일으키고 북진하여 탁록까지 진출함이 고고학적으로 확인됩니다.(기원전 2700년대)

    이게 고고학적으로 확인된 탁록대전입니다.
  • 알콩달콩 2012/04/10 13:41 # 답글

    ㅎㅎ 그거 아시는지요 헌원이 곰룡인지는 모르겟지만 치우의 소 토템은 전셰계에 분포 하고 있다는것을요..이것만 봐도 치우는 널리 알려진 인물이지만 현재는 잊쳐진 인물중에 하나 입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3:42 #

    치우는 소 토템이 아니라 '도철'입니다.
  • 알콩달콩 2012/04/10 13:50 # 답글

    너무 중국쪽 자료만 인용하시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위대한 유산이 있는데 남에것에 의존하는게 너무 하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발음이 유사하다고 헌원이 환웅이 된다면 이세상에 유사한것은 다 이것이고 저것이고 다 똑같겟지요..전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환웅이란 말은 배달국이 세워지면서 사용하던것입니다..그런데 유사하다는 이유로 헌원이 환웅이 될수는 없는것입니다.. 환단고기에도 나왔듯이 헌원시절 14대 환웅은 치우천왕이었습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3:51 #

    남에것이 아니라 공동의 것입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3:51 #

    유사한것때문에만 그러는게아니라 환웅의 문명 지역과 헌원의 문명 지역이 완벽히 겹치기때문입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3:51 #

    환웅의 문명 지역과 헌원의 문명 지역이 완벽히 겹친다면 양자는 동일 인물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한 겁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3:53 #

    일단 홍산문명이 배달국이라면 홍산문명은 절대로 치우천황일수가없습니다.
    고고학적으로 확실히 그렇다구요.

    같은 말만 되풀이하시니까 답답하군요.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3:53 #

    치우천황은 청동기를 제련하고 천하를 두렵게할 정도로 매우 강한 군사력을 갖추고 그 위압이 심하였다하는데. 왜 홍산문명에서는 옥기,석기만 나오고 무기류는 거의 안나오고 제의적인 형태의 성격으로 치우친 원시 국가인걸까요?!
  • 알콩달콩 2012/04/10 14:01 # 답글

    세계 여러곳에 알려진게 소토템이나 소 형상이란 말이었습니다..도철이 아니라..
    제홍씨님 치우문명이라뇨....누가 치우문명이고 헌원 문명입니까..한 나라의 왕이 다스린다고 해서 그 왕의 문명이 되는건 아니잖아요 ? 그 나라의 문명일수는 잇어도...왕의 문명은 될수 없어요..
    그럼 치우문명에서 안나온 청동기가 헌원문명에서 나왔다는 소린가요?ㅎ 유물로만 역사를 본다면 한계가 잇습니다...그리고 한반도와 만주 그리고 산동성 밑에 까지도 구이(배달국)의 영토엿습니다..알고 계신지요?정확히 수도가 어딘지를 모르겟으나 전 홍산문명이 시작이고 후대에는 산동 아래쪾으로 옴겨갔을거라 생각합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02 #

    홍산문명이 산동으로 옮겨간 증거는 0%입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02 #

    신동 남부 안후이성의 링쟈탄 문화가 홍산의 옥기문화를 강하게 보여주고있어서 홍산인들이 이동한거라 볼 수는 있지만 문화의 크기도 작을 뿐더러 홍산문명의 중심 세력이 이동한거로 볼 순 없습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03 #

    제 말을 오해하십니다. 홍산문명에서 청동기는 나오지않았다는겁니다. 게다가 청동 무기는 절대 출토되지않고있습니다.
    홍산문명이 치우의 것이라면 왜 치우의 청동기가 안나옵니까?
    게다가 홍산문명은 치우처럼 전투적인 국가가 아니라 제사장의 국가입니다. 전투하고는 거리가 영 멀다구요.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04 #

    고고학적으로 확인되는 치우 문명은 량주 문명이지. 홍산문명이 아닙니다.
  • 알콩달콩 2012/04/10 14:03 # 답글

    그리고 치우천왕 시대엔 중기대 거의 후대 입니다...
  • 알콩달콩 2012/04/10 14:03 # 답글

    홍산문명이 산동으로 옴겨간게 아니라 배달국의 최대 영토가 산동 아래까지란 말입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04 #

    홍산문화의 영토는 산동까지 간 적이 없습니다. 홍산문화하고 산동의 대문구문화는 전혀 별개의 문화입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07 #

    홍산문화는 붉은 색 구름무늬 채도,빗살무늬토기,적석총,석관묘,발달된 옥기 문화,제정일치적 원시 국가 형태,구름 신 숭배,여신 숭배,곰룡 숭배,거북 숭배로 대표되는 문화입니다.

    하지만 산동의 대문구 문화는 삼족오 모양의 '규'란 그릇으로 대표되는 새 숭배 문화이며 옥기보단 석기의 양이 많고 추장 사회를 벗어나지못했고 원시 국가 단계로 진입도 못했으며 토광식목관묘를 썼을 뿐
    적석총,석관묘를 쓴 적도 없습니다. 그리고 채도보다는 회도 등의 비율이 많습니다.

  • 알콩달콩 2012/04/10 14:06 # 답글

    홍산문명이 산동으로 옴겨간게 아니라 배달국의 최대 영토가 산동 아래까지란 말입니다 치우천왕 시대는 중기에서 후기에 접어든 시기 입니다..그 시대에 꼭 홍산문명만이 배달국이라 보진 않습니다..배달국은 이미 산동 아래까지 영토를 확장한 상태엿으니까요.. 그렇다고 치우가 랑주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영향을 미쳣을것이란 것엔 찬성이지만..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07 #

    홍산문화는 붉은 색 구름무늬 채도,빗살무늬토기,적석총,석관묘,발달된 옥기 문화,제정일치적 원시 국가 형태,구름 신 숭배,여신 숭배,곰룡 숭배,거북 숭배로 대표되는 문화입니다.

    하지만 산동의 대문구 문화는 삼족오 모양의 '규'란 그릇으로 대표되는 새 숭배 문화이며 옥기보단 석기의 양이 많고 추장 사회를 벗어나지못했고 원시 국가 단계로 진입도 못했으며 토광식목관묘를 썼을 뿐
    적석총,석관묘를 쓴 적도 없습니다. 그리고 채도보다는 회도 등의 비율이 많습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07 #

    홍산(배달국)의 고고학적 범위는 딱 북경 일대 즉 탁록까지입니다. 산동까지로 내려간 적도 없습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08 #

    님이 홍산만을 배달국이라 보지않으신다면 그렇게 볼시에 유일한 가능성은 홍산-산동 대문구가 영국 스코틀랜드같이 연합왕조라고 보는 것 밖에 없는데. 그럴 가능성은 0%입니다.
  • 알콩달콩 2012/04/10 14:08 # 답글

    홍산문명이 아니라 배달국을 말하고 잇습니다..바로 치우천왕의 시기를 말이죠..홍산문명은 배달국 초기 시기라고 생각됩니다..그런데 치우와는 관려이 없는게 당연하지요..치우천왕은 14대 인것을요..;;;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09 #

    홍산문명=배달국입니다. 만약 홍산문명 외에 또 다른 배달국이 있다면 고고학을 모르셔서 말씀하시는겁니다.
    중국대륙에서는 배달국에 해당되는 문화가 전혀 없고 요하 동쪽의 만주,한반도 일대에도 배달국에 해당되는 수준의 문화는 전혀 없습니다. 오직 홍산 밖에 없다는겁니다.
  • 알콩달콩 2012/04/10 14:10 # 답글

    홍산문명이 그렇겠지요 허나 배달국은 산동 아래 지역까지가 배달국 즉 구이의 영토였습니다..탁록대전이 구이의 앞마당에서 벌어진 전투입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10 #

    고고학적으로 절대 그렇지않다니깐요.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11 #

    대문구 문화는 홍산문명하고 완전 별개의 문화입니다. 그니까 배달국 영토가 산동 아래 지역까지 이를 수가 없다는겁니다.
  • 알콩달콩 2012/04/10 14:14 # 답글

    제가 위에도 말햇다시피 홍산문명은 배달국의 초기라고 했습니다..치우천왕은 중기나 후기 일 것입니다...영토란 변화 하는것이고 축소 되기도 하고 확장 되기도 합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15 #

    그니까 답답하게 반복하시는데. 아무리 그렇게해봤자 홍산하고 대문구가 별개의 문화인 이상 배달국의 영토가 산동남부까지 이를 가능성은 0%라니깐요.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16 #

    영토가 변화 축소 확장되는걸 제가 모릅니까?
  • 알콩달콩 2012/04/10 14:15 # 답글

    홍산문화는 치우 시기가 아닙니다...시기로 따지자면 배달국 초기란 소리 입니다..배달국의 영토를 우쨰 북경까지라고 생각하시는지 의문이군요..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16 #

    아니.. 그니까.. 제 말은 들으시는겁니까?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16 #

    홍산문화 치우 시기가 맞아요. 홍산문화 연대가 기원전 4천년부터 기원전 3천년까지거든요.

    치우도 기원전 3천년대입니다. 어딜 봐서 아니라는겁니까?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17 #

    글고 배달국의 영토가 산동남부까지 이르렀다는건 고고학적으로 '불가능'하다니깐요.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18 #

    글고 산동의 대문구 문화 역시 군사적인 성격의 정복국가하고는 거리가 매우 멉니다.
    거기는 석기를 주로 쓰던 동네이고 도자기 만드는데 취미 빠진 애들이에요.
    걔들이 무슨 치우라는겁니까?
    산동 남부에까지 치우의 배달국의 영토가 있었다면 치우의 호전적인 전쟁 문화가 어떤식으로든 유물 유적에 나타나있어야되는데. 그렇게 없다는겁니다. 전혀요.
  • 제홍씨帝鴻氏 2012/06/18 19:55 #

    전 이미 충분히 설명했습니다.
  • 알콩달콩 2012/04/10 14:19 # 답글

    어쩃든 저의 생각은 환웅은 헌원이 될수 없다 입니다...역사적 사료를 통해서도 14대 환웅은 자오지환웅인 치우천왕 입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20 #

    그니까 홍산문명이 치우천황일수가 없다니까요. 배달국의 영토가 산동남부까지라는것도 고고학적으로 말이 안되구요.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20 #

    자기 생각 우기는게 역사학도가 할 일입니까? 맞는 말엔 수긍을 하셔야죠.
  • 알콩달콩 2012/04/10 14:29 # 답글

    전 역사학도가 아닙니다..역사를 사랑하는 한 국민일 뿐이죠..저도 그렇지만 제홍씨님 또한 제말에 수궁하지 않는건 마찬가지 입니다..서로 생각이 다르고 역사관이 다르기 떄문이겠죠..전 이걸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홍산문화 배달국 이런건 다 떄려치우고..헌원은 중국의 시조이고 치우는 한국의 시조이다란 말을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헌원이 동이족이라 하지만..중국에서 그렇게 생각 하지 않는다죠...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31 #

    왜 자꾸 지금의 사상,사고관으로 고대의 역사를 재단하려하시는겁니까.
    홍산문화 배달국 이런걸 다 때려치운다구요? 어떻게 선조의 문화와 역사를 때려치운답니까?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32 #

    지금의 사상,사고관은 지금의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자기 민족이 이렇게 말한다고 그 민족의 사상,사고관에 평생을 바치고 역사를 연구하면 동북공정하고
    다를게뭐고 일본의 독도하고 다를게 뭡니까?

    진실이 중요한거지요. 우긴다고해서 진실이 되는것도 아닌데. 그걸 민족의 영광이라 하면 중국,일본하고 다를게 도대체 뭡니까?

    그건 역사를 사랑하는게아닙니다.
  • 알콩달콩 2012/04/10 14:34 # 답글

    그럼 제홍씨님은 그 위대한 선조들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관에 옹호하시는건지 모르겟군요..제홍씨님이야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시겟지만 전 그렇게 느껴집니다..헌원이 환웅이라니...천벌받을 소리를 하시는군요..위에도 말했지만 후대에 아주 후대에라도 역사는 밝혀지겟지요 아직 이나라에 정의는 살아 잇으니까요..아 그리고 때려치운다는 말은 말뿐이엇는데 너무 그거 갔고 꼬트리 잡으시네요..중요한게 말하고 싶었던건 헌원은 절대 환웅이 될수 없다고 말한것 뿐인데요 ㅠ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35 #

    중국의 역사관에 옹호하는게아닙니다. 황제헌원(환웅)은 우리 역사라는거죠.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35 #

    물론 중국도 황제헌원을 자신들의 시조로 보고있습니다. 그렇다면 홍산문명은 한국,중국의 공통 조상 문명이 되는겁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36 #

    왜 진실을 찾는다는걸 중국의 역사관에 옹호,천벌받을 소리라고 매도하는건지 모르겠군요.
    진실을 찾는게 어찌 천벌입니까?

    오히려 황제헌원(환웅)이 들으면 대노하시겠군요.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37 #

    헌원이 환웅이 될 수 없다라고 말하는게 순 억지라는겁니다. 상대방 말을 귀기울여듣지않고 자신 말만 옳다고하는 자세야말로 버려야할 자세입니다.
    진지하게 고고학적 증거에 숙연해지고 경청하셔야합니다. 그게 바로 선조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입니다.
  • 알콩달콩 2012/04/10 14:37 # 답글

    님은 진실은 아시늗듯 말씀하시는데..님부터 역사관을 바꾸셔야 합니다..친일의 역사에 고통 받는 이나라의 역사를 너무 옹호하진 마세요..현 국사학계및 사학계가 잘하고 있는건 아니잖아요..동북공정이 터져서 나몰라라 하는계 현 사학계잖아요..그리고 너무 중국 사서에만 취중하지 마셨음 합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38 #

    중국 사서가 무슨 죄냐니까요?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38 #

    제가 언제 우리 사학계를 변호했습니까?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39 #

    도대체 중국 사서가 무슨 죄이기에 이렇게 극단적인 민족감정으로 죄없는 중국사서를 몰아가는겁니까?

    중국 사서의 저술 연대는 동북공정이 이루어지는 연대하고는 천지 차이로 먼 옛날인데요?

    그 사람들은 있는 사실들을 그대로 적은 것뿐인데. 왜 이리 마녀사냥입니까?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40 #

    그리고 전 중국 사서에 치중한적없구요. 왜곡하지마시기바랍니다. 중국 사서 한국 사서를 모두 보고
    절충해서 황제헌원 = 환웅이라 한거고 배달국의 왕이 치우천황이라는건 고고학적으로 전혀 그러지못하다고 결론내린겁니다.
    이게 어딜 봐서 치중하는겁니까?!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40 #

    사료를 모두 검토한 후 고고학적으로 판결을 내리고 절충을 시켜서 제일 합리적인 결론을 내렸는데.
    이런 것을 '치중했다.'라고 한다면 정말 왜곡도 이런 왜곡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 알콩달콩 2012/04/10 14:43 # 답글

    중국사서가 죄가 업다라...정말 의문이군요..아는 사람들은 다 알는 중국사서의 중화사상을....홍산문명 또한 중국이 중화사상으로 만들기 위해 작업중인걸 모르시나요? 중국의 시조인 황제는 물론 염제 신농 치우천왕까지 중국의 역사로 만들고 있습니다.
    있는 사실을 쓴거라..하셨는데..그게 왜곡되었다곤 생각 안해보였나요?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44 #

    동북공정 시절에 중국 사서가 저술된적이 없는데. 왜 자꾸 동북공정을 꺼내는겁니까?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45 #

    중화사상이 있다고해서 황제헌원에 대한 기록까지 다 거짓이라는 보장이 있습니까? 없잖아요.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45 #

    그리고 중국 사서의 기록들이 모두 '고고학적으로 검증'되는데도 왜곡되었다고하시는건 도대체 무슨 경우입니까? 이건 완전 억지죠.
  • 알콩달콩 2012/04/10 14:55 # 답글

    무슨 중국사서 기록들이 검증이 되요..무조건 검증되었다고 하면 검증 된줄 아시나요?
    도대체 어떤 사서가 검증이 됫는지 궁굼하군요...
    그리고..전 홍산문명을 중국이 중화사상으로 만든다고 햇지 동북공정은 꺼내지도 않았거든요..
    헌원 치우 염제 신농을 중국의 시조로 만드는게 역사공정이 아니고 멉니까...동북공정은 시작에 불과 합니다.
    홍산문명을 중국화 하기 위해 동북공정은 시작에 불과 하다구요...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57 #

    제 글 하나도 안읽으셨네요.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57 #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58 #

    말하는 말씀 하나 하나 모두 비어있고 빈 수레요. 오직 자기 말을 주장하는 아집밖에 없으시군요. 고치시기바랍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4:59 #

    홍산문명을 중국이 자기 역사로 끌어들이려고한건 현대에 와서 동북공정하면서부터입니다.
    그걸 증거로 고대 중국 기록이 왜곡되었다고 님이 말하는건 님이 시공간을 착각,왜곡하셔서 하시는 말씀에 불과합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5:01 #

    헌원 치우 염제신농이 중국의 시조라는 고대 중국 기록들은 꼭 동북공정이니 중화사상이니로 볼 수 없습니다.
    애초에 그 당시 중국,한국이란 뚜렷한 구분이 없었을 뿐더러 홍산문화를 담당한 사람들은 기원전 3천년대에 기후대재앙으로 망하여 중국으로 많이 이동,피난하거나 일부는 홍산에 남아서 소하연문화를 열고 그 후에는 기원전 2천년에 하가점하층문화(단군조선)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 하가점하층 종족이 황하로 이동하여 기원전 1800~1700년에 상나라를 세웁니다.

    상나라의 후손이 오늘날의 중국이구요. 그러니까 꼭 중화사상으로 왜곡했다기보다는 그냥 자신들 조상이라서 적은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 알콩달콩 2012/04/10 15:01 # 답글

    님부터 고치시기 바래요..꼭 님의 말이 맞는건 아니니깐요..물론 저또한 제말이 무조건 맞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사료에 나와 있는걸 왜 왜곡하시는지 모르겟어요..제가 말하는건 산해경은 믿으시면서 환단고기는 안믿으신다는 느낌이 드는것이죠.. 사서로 봤을때 산해경보다 환단고기가 더 정확한데도 말이죠..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5:01 #

    그니까 님이 말씀하시는 '배달국의 왕은 치우천황이다.'라는건 고고학적으로 말도 안되는 소리라니깐요.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5:02 #

    환단고기의 기원전 4천년~기원전 3천년의 배달국의 연대는 홍산문화하고 정확히 일치하지만
    배달국의 왕이 치우천황이라는건 전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겁니다. 고고학적으로.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5:03 #

    제가 언제 환단고기를 안믿는다고했습니까? 고고학하고 안맞는거만 믿지않겟다는거죠.
    왜 자꾸 제 말을 왜곡할까요?
  • 알콩달콩 2012/04/10 15:05 # 답글

    어차피 역사관이 다른걸 어쩌겟어요..어쩃든 님의 좋은 생각 잘들었습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5:07 #

    그렇습니다. 역사관이 다른게 문제죠. 고고학적 사실을 인정하지않고 무조건 우기는게 바로 잘못된 역사관입니다.
  • 알콩달콩 2012/04/10 15:11 # 답글

    허참...그놈의 고고학...제발 제대로된 역사관을 보시길 바라면서 제홍씨님의 안녕을 바랄께요^^ 건강하세요 또 올게요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5:15 #

    네~ 글 봐주시고 토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5:15 #

    네. 기다리고있겠습니다.
  • 넌 누구의 후손이냐 2012/04/10 16:56 # 삭제 답글

    제홍씨. 넌 누구의 후손이냐. 위의 내용으로 볼때 넌 중국의 후손이구나.
    어찌 얕은 지식으로 세상의 사람들을 이해시키려하는가. 그런다고 역사가 바뀌는가.
    불쌍하다. 제발 이 나라에서 사라져라. 그리고 다시는 우리 천손 민족의 역사를 왜곡하지 마라.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6:57 #

    환웅(황제헌원)의 후손일세.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6:58 #

    환웅은 중국도 아니고 한국도 아니고 한국과 중국의 공통 시조일세. 그대야말로 조상을 욕보이지마시게.
  • 청림본좌 2012/04/10 17:39 # 삭제 답글

    청림책사풍후 만세! 만쉐이!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9:15 #

    ㅎㅎ 감사합니다.
  • 세계지도 2012/04/10 19:14 # 삭제 답글

    좋은 역사 자료 감사 합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0 19:15 #

    ㅎㅎㅎ 감사합니다!~!
  • sad 2012/04/13 19:41 # 삭제 답글

    환빠 내분 쩌네
  • 제홍씨帝鴻氏 2012/04/13 19:47 #

    내분이 아니라 충돌,융합,발전입니다.
  • 지은이 2012/08/28 20:52 # 삭제 답글

    환웅과 황제헌원은 각각 다른 동이족의 환웅과 한족의 헌원은 다른인물입니다.
  • 제홍씨책사풍후 2012/08/28 20:55 #

    그게 아니에요.
  • 천강 2017/04/06 21:38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홍산문화 고조선 관련하여 많은 자료를 받아갑니다.
    무엇보다도 값진 글들에 대하여 감사드리며
    동북삼성을 오가며 흩어져 사는 조선족의 우리 동포들을 보면서
    많이 아쉽고 아팠죠
    중국역사는 2~3백년을 이어가지 못하였고 역사는 반복되므로
    다시 배달국때의 영토를 회복하면서 세계평화가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선조가 약탈과 수탈이 아닌 융합정책으로 이루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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