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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올라온 홍산 밸러님의 왕검성 글을 읽고 by 제홍씨帝鴻氏

고조선의 왕검성







최근 올라온 홍산 밸러님의 왕검성 글을 읽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위만조선이 조선 재지 세력과 연,제 유이민의 연합정권으로 오해하지만
사실상 진나라 때 청동기무기와 한나라 때 철제무기로 무장한 연나라계 망명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朝鮮)지역에서 패권을 휘두르고 교역의 독점과 오랑캐(灣夷)를 방어하기 위한
중국계 유이민 집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집단의 성격을 모른채 이들이 세형동검으로 무장하였을 것이란 망상은 지워버려야 한다.


최근까지 진대 청동무기,한대 철제무기는 (북한 일대에선) 기원전 1세기 이전에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다." 


...............,

라고 홍산밸러는 말하였다.



이는 이미 필자가 이전에 지적한 것과 똑같다. 이른바 북한 일대에서 위만조선의 중심지로 볼만한 어떤 고고학적
증거도 나오지않고 세형동검 주류 문화만 나오고 철제무기는 매우 극소수로 나온다.
기원전 1세기 낙랑군 설치 이후에야 북한 일대에서 토착 족속의 토광묘 대신 한대漢代 목곽묘가 본격적으로
조영되기 시작되고 철제무기도 이때에 와서야 좀 받아들여지기 시작하지만 청동기 반,철기 반의 비율로 받아들이며
여전히 세형동검문화를 고수하며 낙랑조선인의 토착 문화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므로 사료들에서 요동군에서 공급받은 철제 무기로 무장하고 1만의 기마대를 보유하여 사방 수천리의 영토를 
정복하는 정복 국가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그 문화의 발전 토대가 철기 사회에 있었던 위만조선의 중심지는
쪼끄만 세형동검이나 쓰고 노는 북한 일대의 낙랑조선인들에게서 찾아야할게아니라 고구려의 초기 수도
졸본 집안 일대에서  찾아야된다고 나는 말했었다.


http://ragwangfal.egloos.com/1667979 필자의 위만조선 중심지 = 현도군 설 포스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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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일대 묘제의 변화와 금속 부장품의 변화



1단계 - 세문경,과 출토,수레 부속은 안 나옴(기원전 2세기 토광묘)

2단계 - 마구,수레부속 출토,세문경,과는 보이지 않음(토광묘)

3단계 - 기원전 1세기 시점이다. 낙랑군 설치 이후인데. 목곽묘가 사용되며 청동기,철기가 비슷한 비율로 발견됨.

4단계 - 철기가 다수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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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ragwangfal.egloos.com/1667900 왕검성이 낙랑군에 있을 수 없다는 결정적 증거

http://ragwangfal.egloos.com/1668370 한국사학의 왕검성=낙랑군 주장의 얄팍함




이글루스 역밸러 '황룡' 제작 http://dragonfear.egloos.com/










그러나 홍산 밸러님은 위만조선의 수도를 요서 험독현 혹은 요동 일대로 보고있는데. 이는 명백한 오류이다.
왜냐면 그 당시에 거기는 요동군이 있었고 위만조선의 발전은 요동군의 까따리 노릇을 하면서 요동군에서
철제무기를 공급받고 조선 토착족속과 진번,옥저 등의 여러 세력들을 무력으로 정벌하였기 때문이다.


후한 때 응소의 요동군의 요서 지역 험독현 = 왕검성 설이나 험독현이 요동에 위치한다는 청나라 때 지도들의 표기나
역사스폐셜에서 험독이 요동에 위치한다고 표시한 것들은 위만조선의 중심지가 요동,요서에 있었다고
볼게 아니라 위만조선 이전 고조선의 수도가 요서,요동 일대에 위치하였다고 보면 될 일이다.




http://ragwangfal.egloos.com/1667902 왕검성이 요동군,요서군에 있을 수 없다는 결정적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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