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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족오를 숭배한 동이족의 '다원커우' 문명 by 제홍씨帝鴻氏

삼족오를 숭배한 동이족의 '다원커우' 문명




                                                           (동이족의 '다원커우' 문명의 문장)









중국 고대 기록들에는 중국의 산동반도에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 임금이 다스리는 소호국(少昊國)이 있다고
한다. 소호 임금은 모든 관직을 새의 이름으로 짓게하였고 그 왕국도 새들이 다스리는 나라였다고 한다. (춘추좌씨전)

소호금천씨는 준(俊) 임금(제준帝俊)이라고도 불리는데. 태양새 10마리가 그의 10명의 아들들로
세 발 달린 태양새(삼족오) 10마리들이다. (산해경)




(고구려의 삼족오)



태양새 10마리는 하늘과 땅을 잇는 거대한 우주 나무에 둥지를 틀다가 교대로 하늘에 떠올라 지상을 비추었다고 한다. (산해경)

태양새 10마리의 어머니는 '희화'라는 여신이고, 12개의 달은 준 임금(소호)의 또 다른 아내 '상희'라는 여신이 낳았다한다. (산해경)







또 준 임금의 나라에 태양이 떠오르는 골짜기가 있다고 한다. (산해경)




"소호의 도시는 곡부(산동반도 곡부)에 있으며 노나라의 성 내에 있다. [제왕세기]에서 말하기를
"소호는 궁량에 살았으며 제위에 올랐고 곡부로 옮겼다"고 한다. 따라서 지금 곡부에는 소호릉이 있다."

- (춘추좌씨전 . 정공 4년 두예의 주석)


"소호금천씨는 궁상(궁 뽕나무)에서 살았다. 태양은 오색으로 빛났으며 궁상을 서로 비추었다."
-태평어람 권3인용 [시자尸子]

"가을 담자가 와서 조례를 하였는데 노공은 담자를 접대하여 연회를 베풀었다.
노공의 신하인 소자가 묻기를 "소호씨는 새로 관명을 정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하였다.
담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소호씨는) 나의 조상으로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옛날에 황제씨는 구름으로 이름을 삼았다.
염제씨는 불로 기록을 남겼기 때문에 불로 각 부문의 수장을 정하였고 불로 이름을 정하였다.
공공씨는 물로 기록을 남겼기 때문에 물로 이름을 정하였다.
태호씨는 용으로 기록을 남겼기 때문에 용으로 수장을 삼았으며 용으로 이름을 정하였다.
나의 고조 소호씨는 이름이 지로 제위에 오를 때 봉조가 날아왔기 때문에 새로써 기록을 남기며
새로 수장을 삼고 새로 이름을 정한다."
- 춘추좌씨전 소공 17년 -


"희화는 제준의 아내로 열 개의 태양을 낳았다." -산해경 대황남경-


"제준의 아내 상희는 열두 개의 달을 낳았다." -산해경 대황서경-

"동해 밖 대황 중에 해와 달이 나오는 '합허'라는 산이 있다." -산해경 대황동경-

"합허 산에서 해와 달이 나오며 중용국이 있는데. 제준이 중용을 낳았다." -산해경 대황동경-

"요임금은 마침내 예에게 명령하여 10개의 태양을 쏘았는데 9개가 맞았으며 태양 안에 있던 까마귀는
모두 죽었다."
-산해경 대황동경 곽박 주석 인용 [회남자]

"태양 중에는 '준오俊烏'가 있다. (고유 주석:준은 삼족오다.) - 회남자 정신편 -

"태양 중에는 삼족오가 있다." -논형 설일편-

"탕곡이 있다. 탕곡에는 부상(뽕나무)이 있는데. 10개의 태양이 목욕을 하는 곳이다.
탕곡은 흑치의 북쪽에 있는데 태양은 물속에 산다. 큰 나무가 있는데 아홉 개의 태양은 나뭇가지의
아래에 살고 하나의 태양은 나뭇가지 위에 산다."
- 산해경 해외동경-



소호국의 연대는 중국 고대 기록에서 대략 기원전 3천년대로 나온다.


과연 기원전 3천년대에 그러한 문명이 산동반도에 있었을까? 그렇다. 있었다.


3개의 발이 달린 태양새를 숭배하고 태양새가 해를 나른다는 것을 믿으며 태양새 숭배가 문명의 중심 신앙인
기원전 4천년~기원전 2천 5백년까지 존재하던 상고시대 문명으로 도자기 제작 기술이 매우 발달하였다.


그 문명의 이름은 바로 '다원커우 문명'이다.






(태양을 나르는 새가 산에서 승천해오르는 위대한 다원커우 문명)










참고 서적:김인희의 '소호씨 이야기', 필자 소장 다원커우 문화 유물 전집



다원커우는 중국 신석기 문화 중 도기가 가장 발달한 지역이다.

다원커우 도기 문화의 특징은 백도,흑도를 제작한 고도의 기술, 다양한 용도의 도기, 도기의 예기화,
루공도,새 모양의 삼족규,높은 다리를 가진 두와 그릇받침 등을 꼽을 수 있다.

훗날 중국의 도기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된다.



다원커우의 도기는 채도,홍도,회도,흑도,백도 등이 있는데, 가장 특징적인 것이 백도로 전체의 18퍼센트를 차지하고,
그러나 전체에서 보면 홍도,회도가 각각 30퍼센트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이고,
흑도는 12퍼센트 이상이고, 채도는 3퍼센트 정도를 차지한다.
초기에는 붉은색 도기 위주이고 중기에는 회도가 중심이다.
백도와 흑도는 다원커우를 대표하는 도기라 할 수 있다.


다원커우의 채도는 도기를 만든 후 채색해 구운 붉은색 위주. 앙소의 것과 문양이 매우 유사하여 앙소문화로부터
초기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여러 도기들 중에서도 '삼족규'가 다원커우 문명의 대표적인 도기이다.

삼족규는 새 모양,새 주둥이에 세 개의 발을 가진 그릇으로 다원커우인들이 매우 애용하고 제작에 심혈을 기울인 도기이다.
새 모양,새 주둥이,세 개의 발은 다원커우가 세 개의 발을 가진 태양새를 숭배한걸 보여준다는 것이 중국학계의
정설이며 중국학계는 이 다원커우 문명을 소호금천씨의 소호국으로 파악하고 있다.



(다원커우 문명의 세 발 달린 새 모양의 삼족규. 삐죽 삐져나온 주둥이가 새 입이고 세 발 달린 새 모양이라는건 중국학계의 정설이다. 다원커우 문명은 삼족오를 숭배하는 문명이었다.
다원커우 문명은 장강 하류의 롱치우장 문화에서 '규' 도기 제작 기술을 도입하여
자신들만의 새로운 '규'를 만드니 그것이 세 발 달린 새 모양의 삼족규이다.
태양새 숭배는 중국 남방 하모도 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하모도 문화의 도작 재배도 영향받아 농경문화가 발달했다.
)




(다원커우 문명의 높은 다리를 가진 두豆.
두豆는 쑹저 문화의 가장 대표적인 기물이며 기원은 마쟈빈 문화로 쑹저,마쟈빈에서 다원커우가 영향받은 것이다.
구멍 장식이 있는데. 구멍장식 두는 하모도 문화의 영향. 다원커우에 와서 구멍장식 기술이 현저히 발달하여
많은 구멍이 달린 도기들이 줄줄이 나오게 된다
.)




(높은 술잔. '고병배')


(다원커우 문명의 여러 도기들)




(다원커우 문명의 출토 현장)



다원커우인은 대단히 거인이었다.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다원커우인의 남성 평균 신장은 171.3~172.2cm.
최단신은 167.5cm. 최장신은 175.2cm.
190cm,185cm의 당시로선 대단히 큰 거인도 발굴되었다.


그래서 산해경에선 이들을 대인국(大人國)이라고도 기록한다.
동이족의 갑골문 글자인 이夷가 사람의 모습인데. 설문해자는 이 글자의 뜻을 대인大人이다라고도 풀었다.




(다원커우 문명의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대사제로 추앙받은 대추장의 모습)


(다원커우 문명에서 여신으로 숭배된 M10무덤의 여성 주인공의 복원 모습)


다원커우 문명의 추장들은 머리를 누르는 편두를 하고 이빨 중간의 앞니,아랫니를 뽑는 발치를 행하여
깃털을 머리에 꽃고 새부리를 입에 달고 날개 옷을 입고 옥,보석 장식품으로 몸을 치장하고
신권(神權)을 상징하는 월(도끼)을 들고 자신이 삼족오 신인 소호금천씨의 대리자라고 천명하였다.




다원커우의 말기에 만들어진 '태양새 승천 산山 문양' '나무 문양'이 새겨진 팽이형 토기 역시
중국의 동이족 신화의 준 임금(소호금천씨)과 일치하는데.

태양을 지고 새가 산에서 날아올라가는 '태양새 승천 산山 문양'과 거대한 나무가 새겨진 '나무 문양'은
나무에 태양새가 살며 하늘로 날아올라 세상을 밝게 비춘다는 산해경에 기록된 준 임금의 10명의 태양새들이
나무에 살다가 하늘로 날아올라 세상을 밝게 비추며, 혹은 준 임금의 나라에 태양이 떠오르는 골짜기가 있다는
것과 일치한다.




(다원커우 팽이형토기의 '태양새 승천 산山 문양' )



(다원커우 팽이형토기의 나무 문양)







다원커우 문화의 초기 - 기원전 4100~기원전 3500년

초기 유적: 왕인 유적,에덴 유적 - 편두,발치 유행,돌구슬을 입에 뭄. 앙소문화의 영향을 받아 이차(二次) 합장 습속,채도가
생김,옹관묘도 앙소의 영향.돼지 모양 규 출토됨.

이 초기 단계에는 생산력 수준이 낮아 대부분의 무덤에 수장이 없다. 있는 경우도 고작 해야 2~3개 정도다.
전체적으로 가난한 사회였다.




(돼지 모양의 규)



다원커우 문화의 중기 - 기원전 3500년~기원전 3000년

중기 유적: 다원커우 유적이 대표 유적이다. 중기에 이르러 부족사회가 해체되고 추장사회로 진입하는 여러 징표들이 나타난다.


머리를 눌러 변형시키는 '편두',중간 이빨의 앞니,아랫니을 뽑는 발치가 성행했다.

이 편두,발치의 목적은 스스로 '새'가 되기 위함이었다.




무덤에 돼지하악골이 수장됐다. 다원커우인들은 중기부터 물레로 도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세 발 달린 새 모양의 규,구멍장식 도기가 매우 유행했다.




(다원커우 문명의 세 발 달린 새 모양의 삼족규. 삐죽 삐져나온 주둥이가 새 입이고 세 발 달린 새 모양이라는건 중국학계의 정설이다. 다원커우 문명은 삼족오를 숭배하는 문명이었다. )




(다원커우 문명의 구멍장식 도기)



(산동성 박물관 소장 다원커우 문명의 구멍장식 도기)




다원커우 문화의 말기 - 기원전 3000~기원전 2600년


말기 유적:다원커우 유적,시샤호우 유적,링양허,화팅



화팅 유적: 기원전 3400~기원전 2800년 - 다원커우 말기 문화 : 계급 분화 뚜렷,순장습속 등장.
부족사회를 지나 추장 사회로 진입.


링양허 유형- 산동 동남. 다원커우 말기. 깨진 규의 발을 수장. 술잔인 '고병배'가 다량으로 발견.
음주문화가 상당히 발달. '태양새 승천 산山 문양' '나무 문양' 팽이형토기 출토.



말기에 이르러 물레 사용이 보편화된다.



다원커우 말기에 이르러 완전히 추장사회에 진입하여 국가로 발전하기위한 초보적인 준비를 갖추게된다.
(농경 발전으로 인구가 늘고 정착을 함으로써 씨족중심 사회가 해체되고 혈연적 관계가 아닌 집단들이 모여
사회집단을 형성하고 집단,개인 사이에 발생하는 모순을 조정하는 기관으로 절대 권력자인 추장이 등장하게 된다.
절대 권력을 지닌 추장들은 물품이나 노동을 일반 백성들로부터 징수하여 전문 엘리트들을 양성하고 더 많은
부를 축적할 목적에서 상대 부락과 전쟁을 시작하게된다.)
추장사회의 추장은 강력한 권력을 소유하고 미약하긴 하나 관료조직까지 갖추게 된다.
수직적인 관계의 형성과 함께 관료체계는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미쳐 사람들은 위계를 세우고 명령하고 통제하려 든다.


다원커우 사회의 추장은 자신을 신의 대리자 또는 신이라 칭하였다. 동이족의 최고신인 소호를 대신해
자신이 곧 신이라고 주장했다. 신권을 대신하는 징표로 옥으로 만든 '월'을 내세우고
새 모습으로 분장도 했다.
성대한 제단을 만들고 대사제로서 소호에게 제사를 올렸다.



(다원커우 문명의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대사제로 추앙받은 대추장의 모습)






다원커우 말기에 조성된 무덤들을 보면 대형묘는 추장같은 지위가 높은 사람의 무덤이며,
중형묘는 관료급 무덤이다.

이 시기에 계급 분화가 이루어지고 빈부 차이가 뚜렷해진다.



다원커우의 대형묘를 보면 주인공이 나이 어린 아이인데도 대형묘에 귀중한 수장품을 상당량 가지고 있다.
아버지의 권력을 그대로 승계받은 아이의 무덤이다.
대형묘의 주인공들은 산동에서 생산되지않는 옥이나 상아로 치장하였으며 노예를 순장하는 풍습도 생겨났다.



(다원커우 문명의 출토 현장)





다원커우 유적에서 가장 많은 수장품이 묻혀진 무덤은 M10 무덤으로 4.2 곱하기 3.2M의 구덩이에 원목을 중첩해
끼워 목곽을 만들고 중앙에 장방형 구덩이를 파서 시신을 안장하고, 곽 아래에는 붉은색 흙을 두 덩어리
묻었으며 무덤의 주인공은 여성이다. 여성의 키는 160센티미터이다. 여성의 시신에는 옷이 묻혀져있었는데.
검은 재가 되어버린채로 발견됐고
각종 수장품은 160여개에 이르고 정교한 채도,홍도,백도와 각종 장식품이 규율에 맞게 배열되어있다.
상아,옥,녹송석으로 만든 귀한 장식품으로 온 몸을 치장했다.
다원커우 사회 말기 최고의 귀족층 여성이었다. 신권을 상징하는 '월'을 오른손에 들고 있다.




(다원커우 문명 여신으로 숭배된 여성 최고 귀족 1인의 무덤 M10)






(다원커우 문명에서 여신으로 숭배된 M10무덤의 여성 주인공의 복원 모습)



채도에는 여신을 상징하는 삼각형 문양이 새겨져있다.







여성을 많이 차별하고 심지어 여성 영아 살해,여성 영아를 먹는 일까지 저질러지던 다원커우에서
이런 이례적으로 여성의 대형무덤이 출토된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그 위상은 산해경山海經에 나오는 동이족의 여신 희화와 매우 일치한다.

고로 당시에 동이족의 여신 희화 그 자체로 여겨지던 여성의 무덤이라 볼 수 있겠다.




희화 여신은 중국 신화의 여신 '여와'와 발음이 유사하다. 희화 여신으로 숭배된 M10 무덤 여성의 머리에는 빗이 꽃혀있는데.
이 빗에는 태극 문양과 팔괘가 그려져있어 태극,팔괘를 그렸다는 복희씨를 연상케하며 복희씨의 아내가 '여와' 여신이니까
신기함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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