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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사학이 고쳐아할 점 by 제홍씨帝鴻氏

한사군은 정말 한반도에 존재했나








1. 일제 때문에 낙랑군=평양이란 인식이 최초로 생긴건 아니다.

중국의 남북조시기의 사서들에서 이미 고구려 평양성에 낙랑군이 있었다는 인식이 존재하고있으며
삼국지,후한서 동이전에서도 삼한의 북쪽에 낙랑,대방군이 있고 그 북쪽으로 고구려가 있다는 인식이 있으니까 일제 때문에 낙랑군=평양 인식이 생긴건아니고 이미 그 전부터 있었고 이것이 조선 실학자들의 논의 대상이 되었다고 보는게 옳습니다.



2. 한나라에 항복한 조선 신하들의 산동 제후 분봉 지역 5곳과 한사군은 별개로 봐야함.

사마천은 산동반도에 사군이 있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건 조선 항복자 5명을 제후로 분봉한 지역이 5곳이라는 것이죠.
사군과는 별개로 봐야됩니다.



3. 위만조선 수도가 요동 일대라는 주장은 폐기해야함.(아울러 평양=왕검성 인식도 폐기해야함)

위만조선의 수도가 요하 하류 유역이었다는 것은 아무런 고고학적 증거가 없습니다. 위만조선은 기원전 2세기인데.
이 시기에 요동에는 요동군이 들어서서 한나라의 지배하에 들어갔다는 것이 동북아역사재단 '요동군과 현도군 연구'에
자세한 고고학적 발굴 결과가 나와있습니다.

또 사기,한서의 조선전에 위만조선은 건국 초기 요동군에 복속하고 요동군의 외신外臣이 되어 철기를
제공 지원받아 진번,조선을 정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니 요동과 위만조선은 충돌하지않았습니다.
제 블로그에는 위만조선 수도가 요동이 아닌 현도 일대(고구려 초기 수도 졸본,집안)인 것으로 고증하였습니다.

한반도 평양에 위만조선 수도가 있다는 것 역시 아무런 고고학적증거가 없는 망상이고 북한 일대는 당시 세형동검
주류 문화이고 위만조선같은 철기 중심 문화는 기원전 1세기 목곽묘 조영 이후에야 서서히 이루어져가기 때문에.



위의 재야의 세 주장이 자꾸 반복되풀이되는 이상 재야사학은 녹음기반복,답이 없다라는 인식을 일반인들로부터 지우긴
힘들다.
위의 세 주장은 과감히 필자의 말대로 폐기시켜야된다.











덧글

  • 2012/04/19 01:0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9 01:09 #

    아래 댓글 참고바랍니다.
  • 2012/04/19 01:1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4/19 01:2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19 01:33 #

    ㅎㅎ 넵. 정말 감사드립니다. 네. 님도 좋은 밤 되시기바랍니다.
  • 황룡 2012/04/19 06:10 # 답글

    풍후는 재야도 식민도 아니구나 껄껄껄껄~!!!
  • 제홍씨帝鴻氏 2012/04/19 15:10 #

    허허허허허 그렇소이다. 재야도 식민도 아닌 역사학이오. 허허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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