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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 추천!!! 임나,왜倭 고고학 연대표 by 제홍씨帝鴻氏

강력 추천!!!   임나,왜倭 고고학 연대표







<3세기>
한반도 남부의 신라와 변진(가야)은 많은 철제품을 생산해 내는 고도의 기술이 있었다.
백제,신라,변진(가야)에선 도질(陶質)토기가 폭넓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3세기> 왜는 변진로부터 철정을 많이 수입. 철제 농기구 제작


<4세기 전반> 김해 대성동고분 언덕에 왕묘급 무덤이 조성됨. 임나에 강력한 권력 집단이 성립됨.
대성동 고분군 왕묘에 파형동기,통형동기(왜의 지도층 세력이 사용하는 정치적 신분을 상징)가 다량으로 수장된 걸로 보아
임나의 왕은 왜倭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던 것으로 보임.


대성동 고분군의 40여기의 무덤에서 나온 유물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무기와 마구 감주 등 철로 만들어진 군사물품.

수많은 대형 철정(鐵錠) 큰 칼, 단검, 철촉, 갑옷, 철정 등 철제품이 대량으로 쏟아짐.

상당한 수준급의 철제품이자 군사물품들임.

북방유목민족들이 사용하는 호형대구(호랑이 장식 허리띠),동복(청동솥)이 출토되고 대성동 고분군에서
한반도 토착 세력들에게선 보이지않는 북방 족속의 순장 풍습이 확인됨.

임나 세력은 한반도의 변진 세력(토착 가야)을 정복한 이민족으로 추정되며 바다 건너 왜倭와도 단순한 교류를 떠나서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됨.



<4세기> 왜는 임나로부터 철정을 많이 수입하여 철제 농기구,철 갑옷을 제작했다.


왜의 철제갑못류 중에는 단갑(短甲)이라고 해서 여러 장의 철판을 마치 조끼처럼 붙여 만든

보병용 갑옷과 괘갑(掛甲)이라고 해서 조그만 쇠편들을 가죽 위에 매달아 입는 기병용 갑옷이 다수 출토되었는데

최근 김해 부산 지역, 그리고 경주지역에서 나온 철제유물들로 해서
이들 일본 갑주의 원류가 한반도임을 일본학계는 인정하고 있다.



<4세기> 일본 열도에 전방후원분 등장. 야마토를 중심으로 중심권력체 등장.(야마토 왕국)
야마토,지방 호족들의 연합체 구성. 야마토와 규슈와의 긴밀한 연합연결.

3세기, 4세기에는 변진의 철을 왜가 구하러 왔다는 유명한 기록이 있습니다.

변진지역을 중심으로 한 철자원을 일본 열도안에서 유통시킴으로서 얻어지는 커다란 힘을

누가 갖느냐 하는 것으로서 분쟁이 있었을 것이고 그 분쟁이 끝나고서 거기서 승리한 야마토의 왕이

커다란 정권을 만들었다고 추정됨.



고대 야마토 정권이 있었던 곳으로 보이는 나라지방의 무덤에서는
다른 지역보다도 철기나 갑주 유물이 많이 나오고 있다.



<서기 391년> "백잔, 신라는 옛부터 고려 속민으로 조공을 해왔다.
그런데 왜가 391년에 건너와 백잔을 파하고 ▨▨ 신라 … 하여 신민으로 삼았다."
-광개토태왕비



<서기 399년>"백잔이 맹서를 어기고 왜와 화통하였다. 왕이 평양으로 행차하여 내려갔다.
그때 신라왕이 사신을 보내어 아뢰기를, ‘왜인이 그 국경에 가득 차 성지를 부수고
노객으로 하여금 왜의 민으로 삼으려 하니 이에 왕께 귀의하여 구원을 요청합니다’라고 하였다.
태왕이 은혜롭고 자애로워 신라왕의 충성을 갸륵히 여겨, 신라 사신을 보내면서 계책을 돌아가서 고하게 하였다."

-광개토태왕비





<5세기 전반> 김해 대성동고분군 축조가 갑자기 중단 (임나의 멸망)

"서기 400년(영락 10년). ...관군(고구려군 5만)이 막 도착하니 왜적이 퇴각하였다.
(고구려군이) 그 뒤를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라의 종발성에 이르렀다.
성은 곧 함락하여 그곳에 신라 군사들을 안치시키고 지키게 하였다.
이에 왜구들은 모두 흩어지며 달아났다." -고구려 광개토태왕비문




"○後三年(己亥歲) 襲津彦出伐新羅 新羅告急高麗 高麗卽大發兵救之 我軍敗績 禍及任那 王巳本旱岐(一作 伊尸品) 王子百久底 提其族避難於百濟 事聞 天皇卽遣木羅斤資(百濟宰也 斤資與吉士同) 領精兵入任那 復其社稷 邀戰數次 任那縣邑 劫掠焚燼 將士多死之
<補> 이하 생략

3년후, (기해년, 399년) 襲津彦(습진언)은 출정하여 신라를 벌하였다.
신라는 급히 고구려에 보고를 하여, 고구려는 즉시 병사를 크게 발진시켜 신라를 구했다.
우리(왜) 군사가 패배하니, 禍(화)가 任那(임나)까지 미쳤다.
(임나)왕 巳本旱岐(사본한기)(혹은 伊尸品이시품)와 왕자 百久底(백구저)는
그의 가족(백성)을 데리고 백제로 피난하였다. 이 일을 듣고, 천황은 즉시 木羅斤資(목라근자)
(백제의 재상(우두머리)이다,斤資(근자)는 吉士(길사)와 같은 말이다)를 파견하여 정예 병사를
인솔하여 임나로 들어가게 하여, 그 사직을 복구시켰다. 전투를 맞이하여 여러차례
임나의 현읍은 약탈당하고 불에 탔으며, 장사는 많이 죽었다. *邀戰數次 => 次 글자였다.
*399년보다 400년에 일어난 사건으로 봅니다. "
- 팔린통빙고 권2, 仁德朝




<5세기 초> 대가야 중심 재편성 : 5세기 초~ 후반 - 고령 지방 (경상도 내륙 산간 지역)


<5세기> 일본은 5세기경 야마토를 중심으로 통일 국가를 형성. 강력한 왕조의 등장.
왜倭 5왕의 출현


<5세기> 왜는 비로소 철을 생산.



(5세기> 왜는 비로소 스에키(도질토기)를 제작.

5세기에 비로소 일본에 스에키, 곧 도질토기가 만들어진 것은

기술 수준에서 2백년의 차이가 있는 것인 만큼

당시 가야로부터 일본에 스에키를 만들 수 있는 기술자들의 집단적인 이주가 있었다는 말이 된다.

5세기에 일본에서 철이 만들어지고

고도의 토기가 새로 만들어졌다면

그 5세기는 한반도에서부터 기술자 혹은 종족의 대량의 집단적 이주가 있었다고 보지 않으면 안된다.


<서기 404년> "왜가 법도를 지키지 않고 대방(황해도) 지역에 침입하였다. …
왕(광개토)의 군대가 적의 길을 끊고 막아 좌우로 공격하니, 왜구가 궤멸하였다. 참살한 것이 무수히 많았다."

-광개토태왕비


<5세기> 왜 5왕이 중국 남조의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서 임나가 자신들의 땅이라 주장.

송서(宋書 488 南朝梁 沈約 等) 夷蠻
太祖元嘉二年,贊又遣司馬曹達奉表獻方物。贊死,弟珍立,遣使貢獻。自稱使持節、都督倭百濟新羅任那秦韓慕韓六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國王。表求除正,詔除安東將軍、倭國王。珍又求除正倭隋等十三人平西、征虜、冠軍、輔國將軍號,詔並聽。

 


425년에 찬(贊)이 또 사마 조달을 보내어 표를 올리고 특산물을 바쳤다. 찬이 죽자 아우 진(珍)이 왕이 되어
사신을 보내어 공물을 바쳤다. 스스로 사지절 도독 왜/백제/신라/임나/진한/모한 육국제군사 안동대장군 왜국왕이라 불렀다.
표를 올려 바른 벼슬을 요청해와 조서를 내려 안동장군 왜국왕에 봉했다. 진이 또 왜인 수(隋) 등 13명에게
평서, 정로, 관군, 보국장군의 이름을 붙여 달라 하므로 모두 들어 주었다.


451년에 사지절 도독 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 육국제군사 벼슬을 더해 주었다. 안동장군은 예전과 같다.
명단에 오른 23명에게는 모두 군(軍)이나 군(郡)의 벼슬을 주었다.

흥(興)이 죽자 아우 무(武)가 왕이 되었다. 스스로 사지절 도독 왜/백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 칠국제군사
안동대장군 왜국왕이라 칭했다. 478년에 사신을 보내 표를 올렸다. ...
조서를 내려 무에게 사지절 도독 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 육국제군사 안동대장군 왜왕의 벼슬을 주었다.

 


479년에 왜 임금에게 새로 벼슬을 내려주어 사지절 도독 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 육국제군사 안동대장군으로 삼았다.
왜 임금 무(武)는 호칭을 진동대장군이라 하였다.


진(晉) 안제(396-418)때 왜왕 찬(贊)이 있었다. 찬이 죽자 동생 미(彌)를 왕으로 세웠다.
미가 죽자 아들 제(濟)를 왕으로 세웠다. 제가 죽자 아들 흥(興)을 왕으로 세웠다.
흥이 죽자 동생 무(武)를 왕으로 세웠다.
제(齊) 건원(479-482)때 무에게 지절 독 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 육국제군사 진동대장군의 벼슬을 내렸다.
고조(502-549)가 즉위하자 무를 정동장군 직함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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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임나의 수장 무덤에서 왜倭의 파형동기,통형동기가 다량으로 나온것으로 보아 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것같다.
임나의 우수한 철기,갑옷 제작 기술이 그대로 왜로 갔고 또 야마토 세력이 임나의 우수한 철기,갑옷 제작기술에 힘입어서
야마토 정권을 출범시켰으며.., 또 왜가 임나를 본거지로 삼고 신라를 공격했다는 태왕비의 기록을 보면
임나와 왜는 단순한 별개의 집단이 아닌 긴밀한 교류와 연결을 하고있다고 보인다.

즉 임나 세력이 건너가 야마토에서 야마토 정권을 출범시키는데 크게 일조하고 야마토는 자신들의
문화적 조상인 임나에 임나에서 만든 철정을 들여와 갑옷을 만들어 군사를 양성. 바다를 건너 임나에 군사를 주둔시켜
임나의 국경을 지키고 신라를 압박했다고 추정할 수 있겠다. 

쉽게 스타크래프트로 비유해서 말하자면 임나는 본진이고 야마토는 임나의 멀티 기지다.
5세기 전반에 광개토의 침공으로 임나 본진이 멸망하자 임나 세력은 바다를 건너 야마토 왕조를 통일 왕국으로 성장시켜
왜倭 5왕을 출범시키는 쾌거를 이루게된다.

이 왜倭 5왕들은 중국 남조(南朝: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임나가 본래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중국 남조측의 기록을 봐도 필자의 이런 생각은 사실임을 알 수 있다.







덧글

  • 제홍씨帝鴻氏 2012/04/27 03:00 # 답글

    임나의 수장 무덤에서 왜倭의 파형동기,통형동기가 다량으로 나온것으로 보아 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것같습니다. 임나의 우수한 철기,갑옷 제작 기술이 그대로 왜로 갔고 또 야마토 세력이 임나의 우수한 철기,갑옷 제작기술에 힘입어서 야마토 정권을 출범시킨걸 보면 .., 또 왜가 임나를 본거지로 삼고 신라를 공격했다는 태왕비의 기록을 보면 임나와 왜는 단순한 별개의 집단이 아닌 긴밀한 교류와 연결을 하고있다고 보입니다.
    즉 임나 세력이 건너가 야마토에서 야마토 정권을 출범시키는데 크게 일조하고 야마토는 자신들의 문화적 조상인 임나에 임나에서 만든 철정을 들여와 갑옷을 만들며 군사를 지원해주어 임나의 국경을 지키고 신라를 압박했다고 추정할 수 있겠습니다.
  • 고등어 2012/04/27 03:03 # 삭제 답글

    좀 헛갈려서 질문드리는데 제홍씨님은 임나 세력이 왜와 합작해서 가야 지역을 통치했다고 하는건가요?
    그렇다면 이것도 어쨌근 왜가 가야를 지배했다는 소리니까 앞으로 문제가 심각해질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왜가 바다를 건너서 가야를 포함한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것이 일본이 주장하는 이른바 솔까역사식 임나일본부아닙니까?
    님은 왜가 가야를 포함한 한반도 남부를 지배하기는 했는데 단독은 아니고 임나 세력과 합작해서 그렇게 했다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만.
  • 제홍씨帝鴻氏 2012/04/27 03:04 #

    임나 세력과 합작했다고 보는 것이 광개토태왕비로 보나 고고학적인 사실로 보나 합당한 것입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27 03:06 #

    왜가 가야를 지배한건 아닙니다. 태왕비에 임나가 왜의 본거지라는 기록이나 왜가 대규모 군사를 상시 주둔시켰다는 것 등을 보면 임나와 왜는 매우 긴밀한 합작을 이루었다고 보면 좋겠습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27 03:06 #

    5세기에 왜倭 5왕들이 중국 남조(南朝: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임나가 본래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중국 남조측의 기록도 큰 증거입니다.
  • 고등어 2012/04/27 03:10 # 삭제

    아하 이제야 말씀하시는 논지를 알겠습니다.
    임나 세력과 밀접한 왜 세력이 임나의 주도하에 임나와 합작했다는 것이니 솔까식의 주장과는 근본부터가 다른 것이군요.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이것도 매우 일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단순히 봐서는 얼핏 제홍씨님께서 일반적인 임나일본부에 동조하는 것으로 오해받으실 수 있으니 차후에는 오해의 소지가 없게 근본적인 차이점을 조금더 상술해주시는 것이 좋을듯합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27 03:30 #

    ㅎㅎ 네. 감사합니다. 그리 해보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글을 좀더 자세히 쓰는게 영 귀찮은 작업인지라.
  • 오호 2012/04/27 20:13 # 삭제 답글

    참신합니다.논문투고를 고려해보심이...
  • 제홍씨帝鴻氏 2012/04/27 20:17 #

    ㅎㅎ 감사합니다. 근데 뭐 대학교의 역사학과라도 가야 논문을 낼수있죠. 헐헐...
  • 역사가 2013/06/21 16:59 # 삭제 답글

    영산강유역을 마한으로 설정하셨군요. 이 그림을 그린 분은 근초고왕이 부여씨라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부여씨는 영락 17년에 나타나는 여신이 처음입니다. 근초고왕은 해씨입니다. 여구는 금강유역의 진왕입니다.
    영산강유역의 옹관묘가 부여씨들의 묘제입니다. 영산강유역의 3대성씨가 부여씨, 목씨(목라근자 등), 사씨(사택지적 등)입니다. 이 중에 부여씨가 금강유역에 진출하여 백제(진왕이 통치하던 칠지도의 백제)의 정권을 잡은 것은 4세기입니다. 이들이 고구려에 패하여 일부는 왜국으로 후퇴하고 남은 무리의 일부는 다시 한강유역으로 진출해 정권을 잡으니 5세기 초 비유왕입니다.
    응신-인덕-이중-반정-... 다 부여씨입니다.
    이제 역사가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 역사저널 2018/05/02 16:09 # 삭제 답글

    김해에서 부여유물이 발견했습니다 그거는 어떻게 된일이죠?만야 임라가 일본현이면 왜 부여 유물이 나오거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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