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풍후 애드센스


반박은 얼마든지 환영하느니라!!!!!!!!!!!!!!!!!!! by 제홍씨帝鴻氏

제홍씨야, 왕험성이 졸본에 있다고?



                                              (고구려 초기 수도 졸본곡)


반박은 얼마든지 환영하는 바이니라!


왕검성(왕험성)은 졸본 집안 혹은 그 일대 어딘가에 있다고 글에서 이미 말했음.

그니까 필자는 왕검성의 위치를 꼭 졸본에만 고정시킨게아니라 졸본 근처 혹은 집안 근처에 있다는 거시다.

난독증부터 고치길 바란다!!!!!!!!!!!!!!!!!!!!!!!!!!!!!!!!!!!!!!!!!!!!!!!!!!!!!!!!!!!!!!!!!!!!




너는 나에게 이런 헛소리를 말하였다.







굔군 曰  :"오히려 내가 알기로는 오녀산성 부근에서는 3세기 이전의 유물은 아예
나오지도 않거든?"
http://kyonkun.egloos.com/2861874



이 인간아.
오녀산성이나 오녀산성 부근에서 아직 고구려 초기 유적 유물이 확인되지않았다는건 헛소리다.


기원전후까지 소급되는 철기 유물이 발굴되었다.


"오녀산성에서 출토된 철곽,철겸 등은 기원전후까지 소급될 수 있어 고구려 전기 유적을 포함하고 있다.
오녀산 정상부가 고구려 전기의 활동 거점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124p 고구려의 역사와 유적 아즈마 우시오 다나카 도시아키



"다만 현존하는 성벽이 과연 고구려 전기까지 소급되는 것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산성으로 사용된 시기와 현존 성벽의 축조 시기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 이 특이한 지형을 둘러싼 산성은 정상부를 지키기 위해서 균열 부분을 지키면 충분하고 절벽을 기어
올라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확실한 천연의 요새이므로, 굳이 성벽을 쌓지 않아도 좋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쩌면 당초에는 성벽을 쌓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24p 고구려의 역사와 유적 아즈마 우시오 다나카 도시아키



더군다나 오녀산성 주위엔 초기 고구려 고분군이 분포하고있다. 


사서도 졸본곡谷(오녀산성)에 주몽이 도읍했다고하는 점으로 보아 오녀산성이 졸본곡이 맞다.



"이와 같이 성벽 자체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산성으로서는 고구려 전기까지 소급되는 것으로
보아도 이상하지 않다. 한눈에 보더라도 범상치 않은 산곡山谷은 영험한 산으로서 경외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전설에 보이는 산성은 이 오녀산성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125p 고구려의 역사와 유적 아즈마 우시오 다나카 도시아키
  

"환인이 졸본이기 위해서는 집안으로 도읍을 옮기는 3세기 초 이전의 유구와 유물이
필요 조건인데. 종래에는 그것이 확인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 환인(졸본)에서 면밀한 조사가 진행되어 그 문제는 점차 해소되고 있다.
오녀산성도 1986년 정상부에서 긴급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는데.
고구려 조기早期의 것으로 보이는 유물도 확인되었다.

적석총에서도 상고성자묘군 등은 3세기 이전으로 소급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제 환인은 졸본으로서의 조건을 충분히 갖추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 120p 고구려의 역사와 유적 아즈마 우시오 다나카 도시아키


 


덧글

  • 굔군 2012/04/27 22:01 # 답글

    아니, 내 말은 철기가 위만조선 당시에도 나오냐고.
    기원전후야 한군현 설치 이후니까 나오는 게 당연한 거고.
  • 제홍씨帝鴻氏 2012/04/27 22:03 #

    난독증이네.
  • 제홍씨帝鴻氏 2012/04/27 22:03 #

    졸본 근처나 집안 근처 어딘가에 있을것이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27 22:04 #

    한반도는 애초에 세형동검문화가 주류고 철기는 조금 사용하는 수준이니 철기국가 위만조선에 부합되지못하고 만주지역에는 연화보 세죽리 철기 문화가 발달했으니 연화보 세죽리 철기문화의 영향이 짙은 만주나 압록강 혼하 일대에서 왕검성을 찾아야한다.
  • 제홍씨帝鴻氏 2012/04/27 22:05 #

    연남생묘지명에 비류수를 패수라고 적었으니 사기,한서 조선전에서 위만이 패수를 건너 동쪽으로 가 상하장에 정착하고 이후 왕검성에 도읍했다하므로 응당 비류수(혼강)의 동쪽인 졸본 집안 일대에서 찾아야하느니라.
  • 굔군 2012/04/27 22:05 #

    결국 거기에서 철기가 나오는지는 확인이 안 된다는 거네?
  • 제홍씨帝鴻氏 2012/04/27 22:06 #

    네놈의 가장 큰 실수는 내가 왕검성 = 졸본이라고만 주장했다는 것이니라.
    난 왕검성이 졸본 집안 근처라고 했지. 졸본이라고 특정지은 적이 없느니라!
  • 제홍씨帝鴻氏 2012/04/27 22:07 #

    한반도의 철기 문화의 수준은 이미 증명되었고
    혼강의 위만조선 당시 철기 문화 유적은 아직 확인되지않았다.

    이미 그 수준이 어떠한지 증명된 것과 확인되지않은건 천차만별 하늘과 땅 차이와 같느니라.


    내 말 뜻을 못알아먹겠느냐?
  • 굔군 2012/04/27 22:07 #

    특정 짓지만 않았으면 뭐해.

    그 지역에서 위만조선 시기의 철기가 나오는지도 모르는데.
  • 굔군 2012/04/27 22:08 #

    확인되지 않았다는 건 증거가 없다는 말.

    고로 네 주장 자체도 증명할 수 없음.
  • 제홍씨帝鴻氏 2012/04/27 22:09 #

    그렇다고 철옹성도 전혀 보이지않고 세형동검을 주로 쓰고 철기는 곁다리로 쓰는 낙랑에서 왕검성을 찾아야되겠느냐? 응당 혼강 일대의 험한 지형과 산성들. 연남생묘지명에 따른 지명연구에 근거해서 혼강 일대에 왕검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니라.

    주몽도 혼강의 비류국을 정복하고 도읍을 다물(되찾았다)하였다고 하였다. 이것은 위만조선의 중심지를 되찾았다는 뜻이다.
  • 굔군 2012/04/27 22:13 #

    그건 네 생각이고.
  • 제홍씨帝鴻氏 2012/04/27 22:14 #

    뭐라?
  • 굔군 2012/04/27 22:14 #

    내가 왕험성이 낙랑군에 있었다는 걸 증명하면 어떡할 건데?
  • 제홍씨帝鴻氏 2012/04/27 22:14 #

    허허. 반박할 근거가 있다는겐가?
  • 제홍씨帝鴻氏 2012/04/27 22:14 #

    허허.. 증명해보시게! 껄껄
  • 굔군 2012/04/27 22:14 #

    당근.
  • 제홍씨帝鴻氏 2012/04/27 22:37 #

    들고온다면서 아직이군. 몹시 애타게 기다리고있느니라! 허허.., 어서 들고오너라. 아니면 자러간것인가. 그런게야?
  • 굔군 2012/04/27 22:43 #

    포스팅할 거니까 기다려.
  • 젖군 2012/04/27 22:45 # 삭제

    굔군 야 이놈아 그어떤 사료, 고고학적 증거를 봐도 왕검성이 평양에 있었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개소리중의 개소리다.
    그걸 주장한다는 자체가 네놈이 이미 뇌가 식민 바이러스에 완전 감염돼서 포맷(죽었다 다시 살아남)되기 전에는 절대로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란 걸 입증하는 것이다.
    임나일본부의 솔까역사랑 친하더니 둘이 역밸 공식 덤앤더머냐?
  • 제홍씨帝鴻氏 2012/04/27 22:56 #

    뇌이버 백과사전 인용하다가 털린 굔군.




    "환인이 졸본이기 위해서는 집안으로 도읍을 옮기는 3세기 초 이전의 유구와 유물이
    필요 조건인데. 종래에는 그것이 확인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 환인(졸본)에서 면밀한 조사가 진행되어 그 문제는 점차 해소되고 있다.
    오녀산성도 1986년 정상부에서 긴급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는데.
    고구려 조기早期의 것으로 보이는 유물도 확인되었다.

    적석총에서도 상고성자묘군 등은 3세기 이전으로 소급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제 환인은 졸본으로서의 조건을 충분히 갖추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 120p 고구려의 역사와 유적 아즈마 우시오 다나카 도시아키


  • 제홍씨帝鴻氏 2012/04/27 22:57 #

    그랬다. 굔군은 멍청하기 짝이 없고 우둔하였다. 아는거라곤 네이버백과사전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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