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굔군의 왕검성=낙랑군 주장에 대한 간단한 반박 by 제홍씨帝鴻氏

굔구니의 글에 대한 핑백 ^^



굔군의 왕검성=낙랑군 주장에 대한 간단한 반박



졸본,집안에 대해 반박한건 1편을 참조바람. http://ragwangfal.egloos.com/1681118


(굔군을 노려보는 위만조선 장군 성기)


굔군은 누선장군 양복의 수군 상륙지가 '열구'이고 '열구'라는 지명이 낙랑군에 있으므로 그렇다라고 주장하는데.
단순 지명이 같다는 문제만으로 말해선 안된다. 낙랑 역시 위만조선의 영역이었고 위만조선 이전엔 고조선의 중심지가
있었으니 당연 '열구'라는 지명을 한 곳에만 있다라고 단정할 순 없다.





(낙랑군에 속한 '열구 현'의 위치)


그리고 백번 양보해서 이 낙랑의 열구가 위만조선과 한나라가 싸울 때 한 수군의 이동경로라고 해보자.
그렇다면 조선현이 위만조선의 중심지였다고 가정해보자.


근데 문제는 굔군의 주장은 고고학적인 뒷받침이 전혀 안된다는거다. 낙랑토성이 위만조선의 중심 수도라고 볼 수
없다는건 모두가 동의하는거고, 대동강이 패수라고 볼 수 없다는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현 사학계에서도
패수를 청천강으로 보고 왕검성은 대동강 이북에서 청천강 이남 쯤에 있을거라 보지만..,


전한,후한을 통틀어 평양 일대가 왕검성 수도라는 인식도 전혀 없었을 뿐더러
북한 일대는 사료에서 확인되는 철기로 무장한 정복 국가인 위만조선의 위상과는 달리 세형동검이 주류이고
철기 무기는 거의 나오지가 않는다. 이 지역에서 철기 무기가 나오기 시작하는건 기원전 1세기 낙랑군 설치 이후부터다.
사실이 이러한데.


굔군은 위만조선이 낙랑군이란 증거를 제시한다면서 고고학적인 증거는 커녕 사료 장난만 치고 있다.
멍청한 놈일세. 허허....,



<기원전 3세기> 청천강 이북 지역에 분포하는 위원군 용연동 유적,영변군 세죽리 유적 등에서
철제의 모(?),과(戈),鏃(화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의 기원전 2세기의 서북한(낙랑)의 유적들에서는 철제 무기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적석목관묘 계통 분묘에는 다수의 청동기와 함께 겨우 주초철부가 1점 정도 부장되어 있는데
불과하다.
- 이남규 : "낙랑 지역 한대 철제 병기의 보급과 의미 논고 (동북아역사재단 '낙랑문화연구')


옛다! 굔군아! 이 글 읽고 공부 더 해라! http://ragwangfal.egloos.com/1680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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