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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부여 역사의 고고학 전개 과정 by 제홍씨帝鴻氏

부여 왕국의 유서깊은 역사









원原부여 문화


길림 일대를 중심으로 서단산 문화(기원전 9~8세기)를 이끌었던 예족 세력은
기원전 3세기까지 계속된다.

이후 북쪽의 눈강 지역인 송눈 평원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던 '한서 상층 망해둔 문화' 세력이
서단산 일대로 이주해 와 서단산 문화와 합치고 성장한다. 이 때가 기원전 4~3세기이다.




예왕濊王 문화


부여는 기원전 2세기부터 문헌에서 등장하기 시작한다.(중국 문헌)


고고학적으로 부여는 '예맥 문화의 중심'에 해당한다.

부여의 고고학 문화인 포자연 유형은 기원전 2세기~기원후 3세기까지
송화강 유역의 길림시를 중심으로 발달한 문화로 한漢나라식 철제 농기구와 토기,널무덤 등을 특징
으로 하는데.

중국 기록의 창해군,예군 남려 관련 기록들,중국 삼국지 동이전 부여편을 종합해보면
기원전 2세기부터 등장하는 이 문화는
기원전 2세기 함경남도,함경북도의 지배자인 예군 남려와 그의 종족이 함경도에서 위만조선 우거왕에게 패해
그의 백성 28만명을 이끌고 두만강 동북으로 달아나 송화강 길림의
부여 지역에 정착하여 한나라 요동군의 도움으로 다시 세력을 일구어 소위 '예왕濊王'이라
불리며 부여 문화의 전신前身을 이루었다는 기록을 증명하여준다.



초기 부여 문화


서기 49년부터 부여 왕이란 존재가 중국 사서에 등장해 한나라와 밀접한 문화 교류를
하기 시작한다.(중국 문헌) 이로 보아 '부여'라는 명확한 정치적 실체가 이 때부터야
등장함을 알 수 있다.
고고학적으로 보면 초기에 군사적인 성격이 매우 강하여 고구려와 잦은 대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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