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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요서 진출을 증명하는 양직공도 by 제홍씨帝鴻氏

백제 요서 진출을 증명하는 양직공도 백제국사재기


 (5세기 야마토의 하니와(무사 토용)  백제계 소년 무사 혹은 소년 수장으로 필자는 추정한다. 백제계 갑옷이 아닐까??)







매식자들은 중국 남조 사서보다 더 이른 '양직공도'의 백제국사재기 기록을 제시하며
중국 남조 사서에 소위 백제가 요서로 진출하였다는건 양직공도의 '낙랑'을 백제로 잘못 기록한거라고 망상을 한다.


뭘 모르는 사람들은 그들의 아리송한 해석에 홀딱 넘어가지만 눈을 뜨고 똑바로 보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못한다.

 


양직공도의 백제국사제기의 원문과 이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망상 해석 두 가지를 제시하여 쉽게 설명하겠다.



百濟舊來夷馬韓之屬:   晉末駒驪略有遼東樂浪亦有遼西晉平縣

自晋已來常修蕃貢 -원문



 

"백제는 예로부터 오랑캐 마한에 속했다. (서)진나라 말 (고)구려가 요동,낙랑을 약탈하고 점유하자
백제 역시 요서 진평현을 점유하였다. (동)진나라 이래로 언제나 속국으로서 조공을 하였다."
-올바른 해석




"백제는 예로부터 오랑캐 마한에 속했다. 서진 말기에 (고)구려가 요동을 공략해 점령했다.
낙랑 역시 요서 진평현에 있었다. (동)진나라 이래로 언제나 속국으로서 조공을 하였다."
-망상 해석




망상 해석을 따르게 되면 백제 이야기를 하는데 왜 갑자기 뜬금없이 낙랑이 나오는건지 의문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올바른 해석을 따르게 되면 역사적 사실과 부합한다. 서기 4세기 서진 말기에 고구려 미천왕이 요동으로 진출하고
낙랑을 점유하게 되니까.


그리고 양직공도 이후에 출현한 남조 사서들은 요렇게 백제의 요서 진출에 대해 적고 있다.

 


"其後高驪略有遼東, 百濟略有遼西。百濟所治,謂之晉平郡晉平縣 - 송서宋書

(그후 고구려가 요동을 공략해 점거했다. 백제는 요서를 공략해 점거했다. 백제의 치소는 진평군 진평현이라고 했다.)

 

晉世句驪既略有遼東,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矣,自置百濟郡 - 양서梁書

晉世句麗既略有遼東,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矣,自置百濟郡 - 남사南史

(진나라때 고구려가 요동을 공략해 점령하니 백제 역시 요서 진평 두개 군에 근거해 있으면서 스스로 백제군을 설치했다.)

 

그러므로 올바른 해석대로 해석되야하고 백제라는 주어가 중간에 빠진건 생략한걸로 이해하는게 합당하다.





반론할 수 있으면 해봐라     평신들아.





http://comic.naver.com/challenge/list.nhn?titleId=501438





덧글

  • 깜놀 2012/05/02 23:38 # 삭제 답글

    마인크래프트라고 한참 유행하는게임의 멀티서버에서 어떤사람과 뜻이맞아 시시콜콜한 역사얘기를 나누던도중 (상대는 어린학생이고 역사에 관심잇어서 역갤을 살짝 탐방해본경험이잇는 자엿음) 그분이 에휴 우리하는얘기가 꼭 풍큐같네요. 해서 깜놀햇습니다 그 오래된단어를 알다니 ..그래서 요즘은 제홍씨로 이름을 바꾸셧고 논리도 대폭수정해서 중도적인 입장에서 논리잇는글을 쓴다고햇더니 옛이미지가 가시지않는지
    계속 풍큐(그시절)님을 까더군요? 자기가 뭐 풍큐글에 댓글달앗는데 손오공이 원숭이라고 벅벅우겻다는둥 풍큐 또라이라는둥 ..아무튼 깜놀햇습니다 풍후라는아이디로 남겨진 흔적은 의외로 역사관심잇어서 소소한 역사글 검색하다가도 자주 발견되거든요. ㄷㄷ
  • 깜놀 2012/05/02 23:41 # 삭제 답글

    과거에매달리지마시고 꿌꿌하게 갈길가십시요 과거는 과거일뿐 새롭게태어나셧으니 풍큐시절의 오점은 깨끗히 떨어져나갈것입니다. 과거는 회상하는것이고 미래는 상상하는것이며 현재,현재가 현존이고 현존이 실체이며 실체적이지 않은것은 공허합니다. 현재가 중요하며, 과거에 마음을빼앗기는것은 쓸데없는 공상에 마음을뺴앗기는것과 마찬가지로 우둔한것입니다. 현재가 중요하니 현재를 가꿔나갈 뿐입니다.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십쇼!!
  • 제홍씨帝鴻氏 2012/05/03 11:56 #

    허허 조언 감사합니다. 하지만 풍후 시절에는 오점이 없었습니다. 다 역사를 탐방해가는 중간 과정이죠. 그것을 오점이라고 한다면 무엇이 오점이라는지도 의문일 뿐더러 오점은 누구나가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5/03 11:56 #

    ㅎㅎ 네 감사합니다.
  • 황룡 2012/05/03 02:08 # 답글

    이 시발새끼야 내가 매식자라는거냐? 지랄을 해라
  • 제홍씨帝鴻氏 2012/05/03 11:54 #

    왜 욕질이냐?!?!?!
  • 황룡 2012/05/03 23:14 # 답글

    내가 최초로 주장한 낙랑요서 오해설인데 즉 내가 매식자라는 거잖으냐
  • 제홍씨帝鴻氏 2012/05/04 07:36 #

    음. 낙랑요서 오해설은 사실 황룡 공이 최초로 주장한게아니라 이미 학계에서 주장되어 오던 것이라네.
  • 제홍씨帝鴻氏 2012/05/04 07:37 #

    대신 자네의 설은 조금 기존의 설과는 말하는 방식이 차이가 나는 것같은데.
    난 기존의 설을 비판한 거라네.
  • 황룡 2012/05/03 23:15 # 답글

    내 낙랑요서 오해설이 요즘 유행인거 같은데 말야
  • 제홍씨책사풍후 2012/09/06 03:59 #

    음..!
  • 천재님 2012/09/03 23:12 # 삭제 답글

    낙랑역시 요서 진평현에 있었다 낙랑이 요서에 있었는데 군사적으로 진평현을 점령한건 백제라는 해석이네요 낙랑 영토를 백제가 공격한거네요 안그렇나요?
  • 제홍씨책사풍후 2012/09/06 04:00 #

    그게 아니라 백제가 요서 진평현을 점유했다는겁니다. 낙랑은 반도 평양이구요.
  • 독립적인 북극의눈물 2013/08/18 14:50 # 답글

    양직공도의 백제국사제기의 원문과 이에 대한 1)올바른 해석과 2)중간 바른 해석 3)바르지 못한 해석 3 가지를 제시하여 쉽게 설명하겠다.

    百濟 舊 來夷馬韓之屬, 晉末 駒驪 略有遼東樂浪 亦 有遼西晉平縣, 自晋 已來常 修蕃貢 -원문
    1)
    백제는 옛날 동이족인 마한의 속국이였다. 진나라 말 고구려가 요동의 낙랑을 약탈하고 점유하자,
    백제 역시 요서의 진평현을 점유하였다. 진나라때 부터 내방하여 향상 속국으로서 조공을 하였다." -바른 해석
    2)
    "백제는 예로부터 오랑캐 마한에 속했다. (서)진나라 말 (고)구려가 요동,낙랑을 약탈하고 점유하자
    백제 역시 요서 진평현을 점유하였다. (동)진나라 이래로 언제나 속국으로서 조공을 하였다." -중간 해석
    3)
    "백제는 예로부터 오랑캐 마한에 속했다. 서진 말기에 (고)구려가 요동을 공략해 점령했다.
    낙랑 역시 요서 진평현에 있었다. (동)진나라 이래로 언제나 속국으로서 조공을 하였다." -잘못된 해석
  • 냐온 2013/08/29 12:18 # 삭제 답글

    양직공도의 백제 설명 해석은 이렇게 해야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오랑케라고 계속 해석하는 분들 뭡니까, 식견이 그리도 없습니까

    1) "백제는 옛날 래이(來夷), 마한의 무리이다(혹은 마한에 속했다)"
    래(萊)이는 산동반도에 살던 동이족의 한 계파입니다. 즉 배달국과 단군조선때 우리와 문화와 정치를 공유하던 동족으로 봐도 되지요.

    2) "백제는 옛날 이(夷)에서 와서 마한에 속했었다."
    이(夷) 한반도와 중국 요서 산동반동 남동해안까지 퍼져있던 구이족에게서 마한으로 이주해서 마한의 한곳에 속해서 살던 애들이 현재 백제로 성장했다는 식으로 해석이 가능하겠습니다만, 어차피 마한도 이夷라고 볼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夷에서 와서 마한에 속했다는 문장은 뭔가 이상한 문장으로 봐집니다.


    래이는 산동반도에 살던 동이족의 한 계파입니다.

    즉 저 문장은 두 가지로 해석될수 있는데,
    하나는, 래이에서 온 사람들이 마한에 융화되어 속했다는 것과
    또하나는, 이夷(어느 이?)에서 마한으로 와서 융화되어 속했다는 것입니다.

    래이는 보통 萊 이 글자인데 來(올 래)가 들어간 來夷를 萊夷로 볼수있는지에 대해선 확신이 없습니다. 그리고, 백제는 널리 알려져있는 상식으로는 부여에서 기인했다는 기록이 많죠. 부여는 산동반도와 거리상 멉니다. 주로 얘기되는 부여를 제외하고 래이를 말한것도 이상하기에, 전 2번 해석에 무게를 두고, 여기서 쓰인 이夷는 막연한 이夷가 아니라 부여를 지칭한다고 봅니다.(서토의 애들은 옛날 夷를 구체적으로 지역적으로 9가지 이夷로 분류해서 따로 지칭했었습니다) 부여라고 적었으면 더욱 정확한 문장이겠으나, 양나라나 저쪽 애들에게는 그냥 같은 이夷족이니 쉽게 이夷라고 표기했다 이해됩니다.

    夷에다 주석을 부여라고 단다면 정확한 문장이 된다고 보네요.
  • 냐온 2013/08/29 12:22 # 삭제 답글

    그리고 지도의 지명표시들이 당시의 지명들과 다르다고 봐야합니다.
    옜날 요하를 현재의 요하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인데,
    옛날의 요하는 지금 요하와 다르다고 봐야합니다.
    옛 요수의 특징을 검토해보면 현재의 난하가 요하가 됩니다.
    그리고 현재 요하는 옛날엔 서압록수가 됩니다.

    따라서 지도상 요서와 요동의 글자는 난하를 기점으로 양쪽에 배치해야합니다. 몇백리를 왼쪽으로 옮겨야한다는 것이지요.

    두번째 한漢의 사군에 나오는 낙랑은 현재 난하의 주변으로 봐야할 것입니다.(이후 고구려가 밀어낼때 서쪽으로 이동했을 가능성도 염두해야하구요) 평양의 낙랑은 한漢의 낙랑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평양은 낙랑국이고, 낙랑국은 최씨 왕이 다스렸던 동이족의 나라였고, 한사군의 낙랑은 태수가 다스렸던 지방집단이었지요. 낙랑이라는 지명은 원래 낙랑홀이라는 도읍이 평양근방에 고조선부터 있었기때문에 최씨의 국가는 그 지명을 따서 낙랑국이라 했던것 같고, 한漢은 동방에 유명한 지명들을 차용해서 차지한 지역에 그냥 갖다붙였다고 봐집니다.

    낙랑(군)의 위치는 북경이 있는 화북지역에서 산동까지의 어느 지점에 있었을듯 합니다. 그곳이 또한 요서입니다.
  • 냐온 2013/08/29 13:10 # 삭제 답글

    참고로 전 위 글의 전반적 바른해석의 흐름에 이의를 제기한것은 아닙니다.
    자잘한 것을 보충하는 차원에서 글을 쓴것입니다.

    분명 위 문장에서 진평현을 차지한 주체가 낙랑이 될수가 없지요.
    문장의 주어는 백제이니, 뒤에 백제와 상관없는데 고구려와 낙랑의 영토를 기술할 이유가 없습니다. 바보가 쓴 글이 아닌이상말이지요.
    요서와 진평(다른 사서에서 공통으로 보이듯이)을 차지한 백제를 설명하면서, 따라붙는게 요동을 차지한 고구려에 대한 것이니 그냥 함께 기록한것으로 봐야겠지요.
    낙랑은 고구려가 차지한 요동과 낙랑으로 해석하는게 분명 바릅니다.

    근데 양직공도에서 적힌 낙랑은 낙랑군으로 볼것인가 낙랑국으로 볼것인가, 삼국사기를 통해 검증하면 낙랑국을 고구려가 점했기때문에 요동과 낙랑국으로 봐야할것입니다. 하지만 양직공도의 글을 쓰던 사람이 최씨낙랑국을 알았을까는 의문으로 그는 낙랑군이라 생각하고 낙랑으로 쓰지 않았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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