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호의 홍산문화에 대한 그릇된 해석이란? by 제홍씨帝鴻氏

시호의 홍산문화에 대한 그릇된 해석이란?








* 매식자들의 홍산문명 = 신시배달,고조선을 부정하는 주장은 다음과 같이 원천 봉쇄,반박이
가능하다.




시호
: "홍산문화가 고조선과 관련이 있다. 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홍산문화와 고조선의 고고학적 유물및 유적을 통한

검증이 필요한데, 이들은 이런것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시공간을 무시한채 무조건 지리적으로 가깝다라는 말로 일축하고

있음. 이게 타당하다고 생각함? 빗나간 민족주의로 자위하면서, 전공자들의 책은 식민사학이라면서 내팽개치고, 사이비

비전공자의 책으로 자위하는 인간들은 좀 반성하길 바람."


제홍씨:"저기요. 말씀에 심한 어폐가 있군요. 홍산문화하고 고조선을 연결시키는 분은 이형구 교수도 계시는데.
그 분은 강단사학이지. 재야사학도 아닐뿐더러 그 분은 전공자인데요?
어디를 봐서 사이비 비전공자라는건지요?"



(뭐? 내가 비전공자라고? 사진 설명: 이형구 교수)







시호: "홍산문화는 기원전 3천5백~ 2천 5백년전의 것으로 고조선과 전혀 연결되지 못함.
홍산문화의 뒤를 잇는 하가점하층문화는 산융으로 추정되는 하가점상층문화에 의해 교체됨

시기는 대략 상말주초무렵(기원전 1300년대)임""








제홍씨:"글쎄요? 귀하가 말씀하시는 홍산문화는 기원전 4000(혹은 3500년)~기원전 3천년까지 존속한 우하량문화와
기원전 3천에서 기원전 2천 5백(혹은 2천년)까지 존속한 소하연 문화를 이르는 것일텐데요.
그리고 소하연 문화에 이어서 등장한 하가점하층문화는 기원전 2천년대~기원전 1300년대까지로 측정되고
하가점상층문화는 귀하의 말씀과 같지요.


자, 재야사학자 그 어느 누구도 우하량,소하연 문화를 고조선이라 하지않습니다. 신시배달이라 하지요. ^^


기원전 4000~기원전 3천년의 우하량 문화는 환단고기의 기원전 3897~기원전 2700년의 환웅의 신시배달국과 연결되고
기원전 3천에서 기원전 2천년대까지 존속했다는 소하연 문화는 환단고기에 신시배달과 고조선의 중간 단계라 나오는
웅씨국이라 해석되고있죠.

강단사학의 이형구 교수와 재야사학은 우하량을 신시배달 하가점하층문화를 기원전 2333년의 단군조선이라 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단군조선이 아니라 '단군숙신'이겠죠. 사기 오제본기,대대례에 중국의 북쪽으로 발發,숙신이 있다
하였으니 북쪽은 바로 요서이므로 발發은 홍산문화를, 숙신은 홍산문화에 뒤이어 일어난 새로운 종족의 하가점하층문화입니다.

숙신의 원음이 청나라 만주원류고에서 '주신Jusin'이라 하였고 [관자]에서 발,숙신의 구도가 발,조선의 구도로 바뀌니까
주신(숙신)이 나중에 조선으로 변하였다라는 것이 되겠습니다."



시호:"고조선의 것으로 추정되는 심양 정가와자의 경우, 기원전 5~6세기 것이라는 의견이 중론이고,

이보다 앞선 조양 십이대영자의 경우는 전형적인 고조선의 유물이 일괄출토되지 않고, 다른 문화의 영향이 크게 보이므로

고조선의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음"



제홍씨:"귀하의 말씀엔 오류가 있군요. 귀하는 꼭 우리 문화의 연관성이 크게 보여야만 '고조선'이라고 보십니까?
고조선이란 나라를 살피는데에 있어선 그런 전제가 큰 선입견을 낳습니다. 종족의 이동,혼란,사회격변 등으로
예전의 문화를 유지하기란 힘들 뿐더러 그 당시에 '우리 문화'라는 것도 없는 시기에서 꼭 요동의 조선의 고고학적 문화가
요서에도 70% 비슷하게 나와야만 합니까? 오히려 요동의 조선 문화는 나중에 완성된 시기의 문화.
그리고 요서의 문화는 조선의 원형으로 파악할 수 있는거죠.


하가점하층문화(단군 주신)가 이민족 산융의 침입으로 기원전 1300년에 멸망하고 하가점상층문화(산융)가
들어섭니다.
그 후 하가점상층문화를 주인으로 떠받드는 새로운 문화가 하가점상층문화의 남부에서 생겨나는데,
이게 위영자 문화로 기원전 1000년대입니다.
하가점하층 유민 세력과 상나라 유민 세력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문화임.

하가점상층 남부의 조양 일대에서 탄생한 위영자 문화는 이후 비파형청동검을 만들어서 기원전 9세기에
비파형동검 중심 십이대영자 문화를 만들죠.

그 후 십이대영자 문화가 기원전 6~5세기에 요하 동쪽으로 이동하여 정가와자 유형 문화를 만듭니다.


중국 사서에서 기원전 7세기~6세기 관자의 시기에서부터 '조선朝鮮'이란 국호가 요동 일대에서 등장하죠.
이 조선이 바로 기원전 6~5세기 즈음에 요동에서 성립된 정가와자 유형 문화 이구요.

그렇다면 십이대영자 문화와 정가와자를 어떻게 해석해야할까요? 간단합니다. 정가와자 문화는 십이대영자 문화에서
형성된 비파형동검 문화의 큰 영향을 받아 생긴 또 다른 비파형동검 문화입니다.
그렇다면 정가와자 유형 문화를 '조선(朝鮮)'이라 하고 십이대영자 문화를 '원조선(原朝鮮)'이라 할 수 있겠군요.
중국 사서 기원전 7~6세기의 상황을 전하는 [관자]에서 '발發,조선朝鮮'이란 기록이 등장합니다.
또 사기 오제본기,대대례의 순 임금 시기 기원전 2천년대에 발發은 중국의 북쪽에 있다고 하니까 요서에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발發은 위영자 문화 이전에 요서에 있었고 기원전 7~6세기에도 있었다고하니 위영자 문화가
바로 관자 시기인 기원전 7~6세기의 발發 즉 십이대영자 문화 시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허허.. 반박할려면 해보시죠.



(십이대영자 문화에서 발견된 비파형동검)




(고조선의 다뉴 청동거울의 원조는 십이대영자 다뉴 청동거울)


시호:"홍산문화및 하가점하층문화와 고조선의 것으로 "추정"되는 문화는 공간적(내몽골~ 발해연안 및 요동)인 차이 및,

수백년에 이르는 시간적 차이가 존재함. 그리고 이 둘의 친연성을 연결시킬 유물은 거의 없음"



제홍씨:있잖아요. 비파형청동검.

홍산문화-소하연문화-하가점하층문화-하가점상층문화로 이어지는 홍산 일대의 문화 단계는
어떤 종족이 망하면 새로운 종족이 어떤 종족을 흡수하고 그 종족이 살던 지역 일대에서 살아가죠.

그리고 하가점상층문화를 주인처럼 받들고 따른, 하가점상층 남부의 조양 일대에서 탄생한 위영자 문화는
이후 비파형청동검을 만들어서 십이대영자 문화를 만들죠.

십이대영자문화는 요동으로 전파되어 요동의 또 다른 비파형청동검문화 '정가와자 문화'를 만들죠.

이 과정에서 꼭 홍산과 요동의 문화가 친연성이 꼭 있어야할 필요는 없는데요? 시대가 흘러가다보면 변천도
많고 그러다보면 어떤 한 유물을 일정하게 고집하긴 힘들죠. 중국 대륙의 신석기시대 문명의 채색토기가
은나라에서 나오던가요? 주나라에서 나오던가요?





시호:"기자는 한사군이후, 한나라가 서북한 지역의 정당성을 위해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실제 기후세력은 상말주초 요녕객좌지역에서 활동했으나 매우 잠시동안이고, 이들은 모종의 이유로 인해 청동예기를 땅에 묻고 급박하게 그곳을 떠냐야했음. 그뒤 중원지역에서 활동함. 고로, 기자동래설은 뻥.

아. 그러니까 기후세력이 요녕 객좌지역에 잠시 둥지를 틀었지만, 무슨이유로 급박하게 청동기를 묻고, 이후 중원지역에서 보인다구요.
아시겠습니까? 이게 뭘 뜻하는지? 상말주초에 잠시 요녕지역에 있던 기후의 세력은 이후 이봉되어 중원으로 옮겨간 겁니다. 여러 정황으로 볼때, 이는 주변 이민족의 경쟁에서 졌음으로 추측되는데, 뭔놈의 기자동래설?"





제홍씨:"자자, 사마천 사기의 기자가 조선으로 간 이야기가 한사군 이후 한나라가 정당성을 위해 꾸며낸 이야기란 소리
라구요?

그런 소리는 객좌현에서 상,주 청동예기들과 고죽국,기후란 금문이 적힌 청동예기들이 나오기전까지나 통용되던거구요.
그런 것들이 나온 이상엔 아예 근거가 없는 소리라고 할 수 없죠.
한나라가 정당성을 위해 꾸며낸거란건 어디까지나 상상,망상이죠.

중국 고대 사서에서도 기자가 고죽국으로 갔다라고도 얘기하고있습니다. 근데 실제로 고죽국이란 나라가 존재했음이
객좌의 상주 청동예기의 금문이나 고고학적 발견을 통해 입증되었죠.

삼국지 동이전의 [위략]에도 조선 왕은 기자의 40대 후손이라느니, 주나라 왕실을 지키기위해 거병했다느니
조선 왕의 자세한 이름도 나오는데. 이게 과연 정당성을 위해 꾸며낸 이야기라고 봐야만 하는가?






('고죽' 글자가 새겨진 요서 객좌현의 상나라 청동기)



('기후' 즉 기자 제후란 뜻의 글자가 새겨진 요서 객좌현의 상나라 청동기)



객좌의 상나라 유민 세력이 청동예기를 묻고 중원 지역으로 갔어도 일부는 남아 조양 일대의 위영자 문화의 형성에 참여햇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왜냐면 위영자 문화를 구성하는 4가지 요소로

1. 갑조 유적

2. 을조 유적

3. 병조 유적

4. 정조 유적이 있는데요.


갑조는 하가점하층 문화의 요소이고
을조 유적은 요하 동쪽 고태산 문화의 요소구요.
병조 유적은 장가원상층 문화와 중원 상,주문화의 요소고,
정조 유적은 주개구 문화의 요소입니다.

병조 유적으로 볼 때 상나라 유민 세력이 위영자 문화 형성에 참가했고 이후 위영자는
비파형동검 쓰는 십이대영자문화(원조선原朝鮮)로 발전하고 이게 요동으로 가서 조선(정가와자)을 형성했다라고
볼 수 있고 그리고 정과와자 단계에서 기자를 먼 조상으로 삼는 어떤 가문이 후에 조선의 왕가를 이루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말이 근거가 전혀 없다라고 볼 순 없겠죠.


이미 객좌에서 고죽,기후가 적힌 상주청동예기나 출토되면서 기자동래설이 허구로 지어낸 소리라는건 '개소리'임을
충분히 알 수 있겠습니다.



시호:"대다수의 한국인들이 청동기시대인들이 북방 바이칼호에서 내려온 북방민족이라 생각하지만

형질인류학적으로 두개골을 분석한 결과 화북지역의 용산문화및 은허의 상대 인골과 매우 비슷했음.

청동기도 역시 마찮가지. 일반적인 별무늬 청동거울의 경우 그 시원을 은허의 동경에서 찾을 수 있으며 북방계통에서는

찾을 수 없으며, 청동기 성분역시 상나라의 것과 일치.

한국의 다뉴조문 청동거울 등은 상나라 부호묘의 청동거울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음.

즉, 이것은 한국의 청동기 문화가 북방이 아닌, 중원지역의 상나라에서 전래되었음을 의미함."




제홍씨:" 시호씨! 자폭 감사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은나라와 요하문명 한민족 이 삼자를 연결하는 증거군요! 기자조선도
입증시켜주는 논리네요."




(상나라 부호묘의 청동거울. 고조선 다뉴경의 원조라고 시호가 주장.)

덧글

  • 리카아메 2012/05/06 19:49 # 답글

    친일냄새가 나는 짤이네요. 이래서야 되겠슴메?
  • 제홍씨帝鴻氏 2012/05/07 07:10 #

    저건 그냥 일본 애니지. 친일이 아님. 그리고 나 일본애니도 잘 안봄. ㅋ
  • 2012/05/07 07:11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5/07 07:13 #

    보냈어. ㅋㅋㅋㅋㅋ
  • 제홍씨帝鴻氏 2012/05/07 07:13 #

    화풀어 미안해.
  • 제홍씨帝鴻氏 2012/05/07 07:13 #

    대충한거아니거든.
  • 가녀린 허스키 2017/08/04 17:59 # 답글

    주류라고하는 강단 가짜매국노사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믿을게 못됨...연구도 하는 사람들을 학자라고 부르면 진짜 학자들이 섭하겠지...
    짱개들이 우하량문화니 홍산문명이니 떠들고 동북공정이니 탐화공정이니 하면서 국가적으로 연구하고 있는데 주류라는 탈을 쓴 가짜매국노사학자들은 우리것이 아니니 관심없어 하면서 연구도 안하고 국가가 연구비로 주는 세금은 띵가띵가 기득권 유지하면서 허비하는 버러지들...사학계가 최고의 1순위 적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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