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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화상석에서 비파형동검 그림이 발견되다. by 제홍씨帝鴻氏

한나라 화상석에서 비파형동검 그림이 발견되다.













이 화상석은 후한後漢(후기 한나라) 시기의 산동 가상현 무씨사 화상석으로 탁록대전+단군신화를 새긴 것임은
이미 필자가 증명한 바 있다. http://ragwangfal.egloos.com/1664251 참조









이번에 말할 것은 이 화상석에서 곰과 도철 호랑이가 티격태격 싸우는 모습에서 곰이 발에 끼고있는 무기의 모습이다.

이것은 비파형동검과 매우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










혹시 필자의 말이 틀리고 이 무기가 혹시 다른 무기의 모습이라면 언제든 제보 부탁한다.
혹시 필자의 말이 틀리고 이 무기가 혹시 다른 무기의 모습이라면 언제든 제보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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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필자의 말이 틀리고 이 무기가 혹시 다른 무기의 모습이라면 언제든 제보 부탁한다.






 

탁록대전에 대한 새로운 학설! 매식자들은 거



품을 물고 쓰러진다!

홍산문명과 고조선이 연관된다는데에 대해서 필자의 말을 더 부언하자면...,

중국 역사서들은 홍산문명을 '판천씨 치우의 나라' ,'곰족 황제헌원의 나라'라고

2개의 나라의 연합체로 적고 있는데.

중국 역사서들은 판천씨 치우천왕이 도철 괴물들을 거느리고(도철 괴물들은 은나라의 청동그릇들에서

호랑이로 표현되어 새겨져있습니다.) 곰족 황제헌원과 '판천대전','탁록대전'이란 전쟁을 치뤘다고 나옵니다.





(치우천왕 :김산호 화백의 유명한 치우천왕 그림. 이미 인터넷에서 치우천왕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명화.)


(탁록대전)




즉 곰족과 호랑이족 2개의 연합체가 구성하고있던게 홍산문명이라 볼 수 있고 이 2개의 연합체가

격돌된 역사가 탁록대전인데. 이 탁록대전의 연대가 기원전 3천년경입니다.

게다가 판천,탁록 이 2개의 땅은 모두 홍산문명이 있는 땅 근처에 있는 것입니다.

이 기원전 3천년경이 고고학적으로 보면 홍산문명의 원시 국가 단계인 '우하량문화(환웅의 신시)'가

멸망하던 그 때에 해당됩니다.


반면 우리나라 삼국유사에서는 이런 내용이 곰으로 대표되는 환웅이 호랑이와 싸웠다..,

라는 식으로 전해지고있습니다. 환웅의 연대도 똑같이 기원전 3천년대에 해당됩니다.

환단고기에서는 '신시배달국'의 '치우'라고 불리는 임금이 황제헌원과 싸웠다고 나옵니다.








요약을 해봅시다.

우리가 익히 아는 단군신화(삼국유사에 적힌)의 곰과 호랑이가 싸우고 환웅이 곰의 편을

들었다는건 중국쪽에서는 곰족인 황제헌원이 도철(호랑이족)족의 수장 치우와 '판천','탁록'애서

격돌하였다라고 적히고 있습니다. 둘 다 같은 연대이고 같은 사건이란 것이고

황제헌원이 환웅과 동일인물이며 치우는 호랑이족의 수장입니다.

(황제헌원은 중국 '산해경'이란 기록에서 '제홍帝鴻'이란 이름으로 적힙니다. 제홍은

동방 만주의 '준'이란 나라의 임금 '준 임금(帝俊)'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송호수 박사가 펴낸 '단군은 실존인물이었다.'에 실린 단서대강,홍사 등의 송호수 박사가 소장한

고조선 관랸 야사들의 기록에 따르면 환웅은 '홍제洪帝'라고 적힌다고 합니다. 한자는 조금

틀리지만 둘 다 똑같은 발음입니다. 송호수 박사는 산해경의 제홍이 자신이 소장한 야사에 나오는

홍제와 동일인물이라고 주장한 바가 없으니 더 신기합니다. 제가 송호수 박사를 직접 만나서 대화해봐서

송호수 박사가 무슨 주장,생각을 하는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엄청난 새로운 획기적인 사고방식의 전환이 이루어집니다.
황제헌원이 곧 환웅이었고 곰과 호랑이의 싸움은 사실 탁록대전이었다!



이를 증명해줄 다른 증거가 있는가? 예, 있습니다. 바로 단군신화하면 자주 등장하는, 매식자 이기백마저
무씨사 화상석은 단군신화와 연관있다고 주장한 바로 그 무씨사 화상석입니다.




이게 산동 가상현의 무씨사 화상석 중 '단군신화'와의 관련이 언급되는 것입니다.
무씨사 화상석은 후한 대에 그려진겁니다. 이 무씨사에는 복희,여와,황제헌원,우임금,공자 등의 다양한 화상석들이
나와 중국 신화나 중국 역사에 대한 자세한 그림자료들의 보물 창고입니다.

이 무씨사 화상석의 많은 화상들 중 이 화상석을 보면 화상석의 1층에는 하늘에서 구름 수레를 타고 내려오는 신인(神人)
이 있으며




(하늘에서 구름수레타고 내려오는 하늘의 왕자 환웅)


2층에는 구름 수레를 타고 북을 망치로 치는 뇌공,수레의 뒤에서 바람을 입으로 부는 풍백,물단지 들고
땅으로 단지를 쏟아부어 비를 내리는 우사가 있습니다. (단군신화의 풍백,우사,운사 중 2명이 나오는겁니다.
단기고사라는 고조선 관련 야사에는 풍백,우사,운사가 아니라 풍백,우사,뇌공 조합이 나옵니다.)
이 화상석 2층을 풍백,우사,뇌공으로 해석하는 것에는 화상석 학자들 간에 이견이 없습니다.



(풍백)


(우사)




(뇌공)

그리고 화상석 3층을 보면 곰들이 무리를 지어서 어느 한쪽으로 몰려가는 가운데 3층의 맨 오른쪽 구석에선
여러개의 무기를 온 몸에 장착한 곰과 그에 대항하여 사람을 먹는 호랑이같은 신인이 서로 싸우고있습니다.




(3층 화상석의 곰들)




(티격태격 싸우는 5가지무기 장착한 괴물곰과 호랑이 신인의 대결)





그리고 화상석 4층을 보면 맨 왼쪽 구석에서 호랑이 한 마리가 사람에게 크게 울어대며 사람이 도망가고있고
한 편을 보면 호랑이 2마리가 사람들에게 업혀진 채 사람들이 어디론가 도망가고있습니다.


(4층 화상석의 패배하여 업혀진 호랑이들과 뭔가에 패해 도망가는 부족)



3층 화상석에는 곰이 압도적으로 등장하고 곰과 대치하는 호랑이같은 신이 등장하는 반면 4층에선 곰은 나오지않고
호랑이가 3마리나 등장하고 2마리는 업혀져서 도망가는게 나옵니다. 이 대치적인 구도는 명백히 단군신화의
곰 VS 호랑이를 보여주며 게다가 단군신화의 풍백,우사와 단기고사의 뇌공까지 등장하고 1층에선 신인이 구름수레를
타고 내려오고있으니 이야말로 완벽한 조합인 것이죠.


그런데 3층 화상석의 여러 무기를 장착한 곰에 대해서 다른 해석을 하는 화상석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말인 즉, 이 여러무기 장착한 곰은 한나라 때의 방상시를 표현한거지. 곰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단군신화와의 관련을 부정합니다. 하지만 한나라 때 방상시가 여러 무기들을 쥐고 춤을 추며 귀신쫓아내는 의식을
거행한건 사실이지만 그 방상시도 곰 가면 곰 가죽을 쓰고 그런 의식을 거행했다는걸 잊어선 안됩니다.

또 그 사람들의 반박을 들어보면 사람을 먹고있는 호랑이 모습의 신인은 단지 호랑이처럼 보이게하는 신의 모자를
쓴거지. 호랑이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단군신화와의 연관성을 거부합니다.

심지어 그들은 '초사'라는 중국 고대 신화들이 많이 담긴 시집을 인용하며 4층 화상석은 초사의 초혼 시편을 해석한거라고
주장하지만 초혼 시편과는 다른 장면들이 있고 초혼 시편을 인용해도 3층 화상석의 내용은 해석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저는 명쾌한 해석을 내리도록하죠.


무씨사의 3층 화상석은 거대한 신화적인 전쟁을 보여주고있습니다. 이것을 단순히 방상시의 의식이라 보기에
무리인건 1층에서 4층에 걸쳐서 뭔가 장대한 서사적인 그림들의 연속을 보여주기때문에 그런 해석을 뭔가
바람직하지않아보입니다. 이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왜 방상시가 여러 무기들을 온 몸에 장착하고 곰 가면 곰 가죽을
쓰고 하는 의식이 한나라 때 왜 존재했냐는겁니다. 그 의식들의 기원은?


그 의식들의 기원을 파헤치고 올라가보면 우리는 중국의 고대 기록들에 적힌 (노사,태평어람 용어하도 등의)
치우천황에 대한 묘사를 보면 "치우는 쇠뇌,창,칼,극,모 5가지 무기로 온 몸에 장착하였고
무기들의 시조이며 전쟁의 군신이다...,"라는 기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기록에 묘사된 치우는 온 몸에 쇠뇌,창,칼,극,모 5가지 무기를 장착한 괴물이며 전쟁의 신이며 괴물입니다.




(후한 산동의 무씨사의 다른 화상석에 나오는 치우의 모습. 단군신화와 연관되는 무씨사 화상석의 3층의
5가지 무기 장착한 곰과 5가지 무기 장착한 모습이 흡사하다.)



그런 강한 존재에 대한 기억은 방상시를 통해 남겨지게된 겁니다. 즉 화상석 3층은 치우나 그와 비슷한
신화적 괴물 '곰'을 나타낸거지. 절대로 방상시 따위의 시시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화상석 학자들이 3층 화상석을 '귀신쫓아내는 그림'이라 해석하면서도 이런 해석들에 스스로 의문점을
표시하는 것은 뭔가 모를 석연치않은 구석들이 있기때문입니다. 그들은 신화 전쟁의 거대한 서사시 그림을
한낱 귀신쫓아내는 그림으로 매도한 것이죠.

또 화상석 3층의 사람을 먹고 있는 호랑이같은 모자를 쓴 신인 역시 호랑이라 볼 수 있는 것은 3층과 4층의 대비적
구도에서 3층에선 곰이 다수로 나오고 4층에선 호랑이가 다수로 나오며 곰은 승자,호랑이는 패자의 구도로 나옵니다.
호랑이같은 모자를 쓴 신인은 호랑이의 의인화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 신인은 사람을 먹는 모습으로
나오는가?
고대 중국 신화에서 사람을 먹는 괴물은 '도철'입니다. 중국 기록들에서 도철=치우라는 인식이 많이 등장합니다.
혹은 치우는 여러 도철 중의 하나라는 인식도 등장하구요. 아무튼 은나라의 청동그릇들을 보면
'호랑이의 모습'으로 묘사된 도철 괴물이 은나라의 왕이나 은나라인을 잡아먹는 모습이 나옵니다.

괴물에게 잡아먹히는데도 평온한 은나라왕이나 은나라인의 모습에서 은나라의 신앙은 도철을 숭배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은나라 청동기에 도철문양이 자주 나오는 것이죠.

노사의 치우전의 기록에 따르면 황제헌원이 치우를 죽인 후 치우의 목과 몸을 토막냈는데. 치우의 목만
남은 모습을 '탐욕'의 상징으로 여겨서 청동그릇들에 새기게했는데. 이것을 도철이라 부른다고 적고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은나라 청동그릇에서 자주 보이는 도철문에 대한 고대 중국의 신화적 설명입니다.

아무튼 여기서 우리는 고대인들은 도철=호랑이=치우라고
인식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화상석의 내용은 유웅씨有熊氏로 불린 곰족의 황제헌원이 1층에선 구름수레 탄 신인으로
등장하다가 3층에선 도철 치우와 싸워서 도철 치우를 물리쳤다는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황제헌원은 자신의 나라의 관직 칭호를 운사雲師라 부르게했다던가, 황제헌원은 구름을 통해 나라를 다스렸다는
춘추좌씨전의 기록은 바로 구름수레 탄 신인의 모습으로 그려지고있고 삼국유사에선 풍백우사운사의 '운사'로서
언급된다는 점을 기억.)


그렇다면 왜 곰족 황제헌원이 중국 기록들에 묘사된 치우의 5가지 무기 장착한 모습이 왜 황제헌원에게
표현되고있는가? 그것은 원래 황제헌원의 모습이 치우에게로 와전되었다든가, 아니면 치우의 무기를 황제헌원이
빼앗앗다든가 여러가지 추정이 가능하겠지만 아무튼 여러가지 증거로 봐서 이 무씨사 화상석은 탁록대전의 내용을
담고있습니다.




산해경의 기록으로 보아도 탁록대전에서 치우와 헌원의 전쟁에 풍백,우사가 가담하고
뇌공의 북과 망치도 등장할 정도이니, 이런 해석이 신빙성이 매우 높습니다.





결론을 내리죠.


황제헌원 = 환웅 = 곰족 치우 = 호랑이 이고 기원전 3천년대에 일어난 거대한 탁록대전을 그린 것이
무씨사 화상석이고, 탁록대전의 기억이 와전되어 형태만 남겨진게 단군신화이고
황제헌원(환웅)과 치우는 신시를 대표하는 양대산맥이었으며 한국사의 시초 인물들이다.

실제 고고학적으로 기원전 3천년에 '탁록'의 땅인 홍산문명이 멸망했으니 그 당시에 그런 전쟁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고!

홍산문명도 신시,고조선이라고 증명되었고 무씨사 화상석을 통해 고조선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식도
알수있으니 이 얼마나 대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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