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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東明)은 고조선의 개국 시조였다. by 제홍씨帝鴻氏

 

(고조선(요동 정가와자 문화)의 청동단추 구두)




동명(東明)은 고조선의 개국 시조였다.





"그 선조는 유웅씨(有熊氏)의 묘예(苗裔,후예)로 대대로 북이(北夷) 땅에서 거주하다 자몽의 들(紫蒙之野)에서
읍락을 이루고 동호(東胡)라 칭했다."
-진서 모용외전


"동명(東明)의 후예가 진실로 조선을 세웠도다.
호(胡)를 위혁하고 맥(貊)을 제압하였으며 서주(徐州)와 통하고 연(燕)을 막았도다. 험준함과
굳음에 의지하여 예부터 옮기지 않았는데 .........
"옛날 왕 만(滿)이 연을 그리워하다가 비로소 외신(外臣)의 요(要)를 얻어 마침내 한(漢)과 통함을 이루었으나
겸백(?帛)의 영예만이 들렸을 뿐이다."
-연남산묘비명





요서의 동호東胡(십이대영자 문화)에서 기원하여 요하를 건너 고조선(요동 정가와자 문화)을 세운 족장은
'동명(東明)'이며 동호의 땅은 '자몽의 들'이라 불렸는데.
자몽은 '주몽'과 유사하며 고구려에서 주몽과 동명은 동일 인물로 여겨졌다.






(유병식동검문화는 고죽 문화로 추정됨.)






비파형동검 자체가 애초에 기원전 9세기 하가점상층문화(산융)에서 먼저 나온겁니다.

하가점상층은 비파검을 별로 많이 애용하지는 않고 공병식동검을 사용하였습니다.




(십이대영자문화의 비파형동검)




비파형동검을 수입해서 요서에 비파형동검 중심문화를 이룩한게 기원전 9~8세기 요서 조양시 십이대영자 문화입니다.




십이대영자의 비파형동검 문화가 동쪽으로 확대되어 요동 심양 일대에 조성된것이
요동 비파형동검 심양 정가와자 유형 문화입니다.

정가와자문화의 연대가 기원전 7~6세기입니다. 학계는 이 정가와자문화를 고조선으로 봅니다.








십이대영자문화는 동호東胡의 문화로 보구요. 십이대영자는 하가점상층으로부터 영향받은 북방계 문물이 다량 분포해있고
정착생활을 하는 유목민족적 스타일과 정착농경민족 스타일이 합쳐진 문화입니다.


정가와자 문화 역시 이 십이대영자의 영향을 받아 무기,화살,마구류가 다량 출토됩니다.
두 문화 모두 상당히 군사력이 강했던 문화로 추정됩니다.



(요녕 심양 정가와자 무덤의 고조선 지배층의 무덤. 비파형동검,다뉴경,미송리형토기가 부장되어있다.)




정가와자 문화는 십이대영자문화의 동쪽 확대로 생긴 문화로 요서의 동호족과 요동의 예족이 결합하여 지배층은 동호족. 피지배층은 요동의 예족이 된 것입니다.
정가와자 문화의 형성을 전후하여 요동에 형성된게 미송리토기문화입니다.

요동의 예족의 토착 묘제는 고인돌입니다. 정가와자 문화 형성 후 비파형동검,미송리토기,고인돌은 서로 겹치며 분포하고있습니다.


이 시기에 예맥족이 형성되게 되는데. 예+맥족으로 맥족의 원주지는 요서입니다.
요서의 비파형동검 문화의 유입과 함께 맥족 역시 동호족과 함께 요동으로 온 것으로 보입니다.
요서의 맥족의 묘제가 뭔진 모르겠지만 요동에서의 맥족의 문화는 요동반도 남단의
누상,강상 대형 적석묘를 조형한 진번국의 문화로 적석총이 묘제인걸 알수있습니다.
이후 이들은 압록강 중류로 이동하여 고구려의 전신인 적석총 문화를 그 땅에 뿌리게됩니다.


고조선의 지배층이 동호족이라면 동호족의 십이대영자문화는 학술적 용어로 원조선原朝鮮이라 불릴 수 있습니다.


십이대영자문화는 상나라 청동기 문화의 큰 영향을 받아 많은 무늬를 새겨넣은 수준높은 청동거울 다뉴경 문화를 만드는데.
이 다뉴경의 원조가 상나라 청동거울 부호묘에서 출토된 청동거울입니다.

십이대영자 문화의 전신인 위영자 문화의 형성 시기인 기원전 11세기에 상나라의 왕족 기자 세력이 요서로 와서 일부가 위영자 문화의 형성에 참여한게 고고학적으로 모두 밝혀졌습니다. 한국,중국의 기자조선 전승도 이 점에서 풀릴 수 있다고 봅니다.


(십이대영자문화 청동거울 '다뉴경')




(상나라 부호묘의 청동거울. 십이대영자 다뉴경의 원조다)


(상나라 여전사 부호)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말하겠음.


"그 선조는 유웅씨(有熊氏)의 묘예(苗裔,후예)로 대대로 북이(北夷) 땅에서 거주하다 자몽의 들(紫蒙之野)에서
읍락을 이루고 동호(東胡)라 칭했다."
-진서 모용외전


"동명(東明)의 후예가 진실로 조선을 세웠도다.
호(胡)를 위혁하고 맥(貊)을 제압하였으며 서주(徐州)와 통하고 연(燕)을 막았도다. 험준함과
굳음에 의지하여 예부터 옮기지 않았는데 .........
"옛날 왕 만(滿)이 연을 그리워하다가 비로소 외신(外臣)의 요(要)를 얻어 마침내 한(漢)과 통함을 이루었으나
겸백(?帛)의 영예만이 들렸을 뿐이다."
-연남산묘비명




요서 십이대영자 문화는 사서에  동호東胡로 기록되고 이 동호에서 동명東明이란 젊은 족장이 요하를 건너서
고조선(정가와자 문화)을 세움.

동명은 동호에선 '자몽'이라 불렸고 후세 고구려인들에겐 '동명' '주몽'이라 불림. 부여인들에겐 '동명'이라 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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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준생제홍 제홍생백민帝俊生帝鴻帝鴻生白民 : 선비족과 오환족은 고조선의 후예다. 2012-05-22 11:58:43 #

    ... 장수 진개의 침입으로 패망해 조선은 한반도 청천강 이남으로 도피하고동호는 멀리 도망쳐 오환과 선비가 되버린다.이에 대해서 자세한 포스팅은 여길 참조 http://ragwangfal.egloos.com/1686909"(오환인들은) 오환 사람들이 약속한 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대인의 말을 어기면 사형에 처하고 도둑질을 그치지 않으면 사형에 처하였다. 만 ... more

덧글

  • 이젠 2012/05/17 19:44 # 삭제 답글

    이젠 님글도 식상하고 질리네요..특히 이순신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손오공 원숭이라는 주장이나 (이와 비슷하나 다른걸로 임진왜란이 동양판 십자군전쟁이였고 이순신은 이도교의 수장이고 고니시는 천주교신도였으므로 하나님의군대였다는 괴측한논리 펼치신거 하나 있는걸로 압니다) 막 외계인 음모론같은거 퍼뜨리면서 수준높은 글도 아니고, 박박우기는모습 보여주시는데 너무 실망스럽고
    까놓고 말해서 정이떨어집니다. 그동안 간간히 유익한자료 올려주셔서 감사하구요 저는 이만 떠나렵니다 안녕히계세요
  • 제홍씨帝鴻氏 2012/05/17 20:58 #

    난 이순신이 이교도의 수장이라거나 고니시가 천주교신도였다고 말한적없음. ㅇㅅㅇ 닥치고.
  • 제홍씨帝鴻氏 2012/05/17 20:58 #

    고니시가 하나님의 군대였다고 말한 적도 없음.
  • 제홍씨帝鴻氏 2012/05/17 20:59 #

    ㅇㅇ 잘가. ㅋ
  • 길쌈 2012/05/17 21:27 # 삭제 답글

    이제 풍큐 본색이 나왔네 ㅎㅎㅎ
    지금까지 예의있는척한건 다 가식이였다능!!!
    생각하는거하고는 눈에는눈 이에는이 <-이걸또 조상님이 물려주신 지혜 드맆 ㅋㅋㅋㅋㅋ
    말하는거하고는 사고력이 초딩수준 ㅋㅋㅋㅋ하긴 초졸에서 끝난인생이니
    이해는한다능..불쌍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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