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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군, 한반도를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식민 지배하다. by 제홍씨帝鴻氏

※※※ 이 글은 모두 동서방제국 연표로 옮겨적었습니다.



낙랑군, 한반도를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식민 지배하다.







고조선의 영토 축소 과정




한나라군이 고조선을 멸망시키다 우왕굳ㅋ 












멸망해버린 고조선(딱 북한 정도 크기) 땅엔 낙랑군 현토군 진번군 임둔군이 설치되었는데.

사기 조선전 한서 조선전 후한서 동이전 삼국지 동이전을 모두 모아 읽어보면

진번군 임둔군은 낙랑군에 통합되고 현토군은 수도를 옥저현 함흥에 두었다가 하도 오랑캐 맥貊놈들의 약탈 테러가 심해서 

고구려를 현縣으로 만들어버린 고구려현縣으로 수도를 옮긴다. 근데 신新제국 말기에 고구려왕 '추'(이 당시엔 이름을 반드시 1글자로만 표기하는게 관례라서 사실은 추모란 이름이라 보는게 정답)의 목을 뎅겅 잘랐다가 고구려가 대반란을 일으켜버려서 

고구려현 관청이 추모의 의형제인 오이 마리의 피눈물 분노 반격공격약탈에 탈탈 털려 불타서 수도를 책구루 방면으로

옮겼다가 또 털려서 수도를 요동군 옆마을로 옮긴다. 하지만 현토군 서개마현은 여전히 운영되었다.  







낙랑군을 지배하는 중국계 호족들의 모습이 그려진 낙랑군 유물. 평양에서 출토되었는데. 열받아서 북한이 중국에 팔아버렸다. 














한나라의 식민지 낙랑군은 한나라의 우수한 강철제 무기를 최리 이전부터 중앙정부로부터 공급받고 있었다.



"<서한 초기~서한 중기> 한나라 강철 기술의 발달로 무기 체계가 새로 늘어나 군사력이 강화되어감.
새로 제작된 종류의 무기들은 환두도,대도,소도,월,월극,쇄,연,노기,구양,질려,개갑.

철촉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 이전보다 월등하게 강력한 무장을 갖추게됨. (개갑무사의 출현)
서한 초기부터 문제 시기까지 차츰 발전되어가다 무제 시대에 철기 제작 전성기를 맞이함."

- 이남규 : "낙랑 지역 한대 철제 병기의 보급과 의미 논고 (동북아역사재단 '낙랑문화연구')


한반도 남부의 국가들은 철기를 사용하긴 하지만 중국 전국시대 때의 철기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직

청동기를 대부분 쓰고 청동기 문화에 익숙해있었다.


낙랑군이 처음 생겨질 당시 강철제 무기로 무장한 낙랑군은 한반도 남부의 국가들에게 있어선 크게 위협적이었지만

낙랑군은 철농기구는 물론 철무기 조차 자체 생산을 하지 못했기에 늘 공급받아야했다.

한나라의 강철제 무기들도 무장한 낙랑군은 한반도의 마한,진한을 압박하여 변한,경주 등의 영남지방 외에는

부락 유적지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할 정도로 막강한 군사력 압제를 가하였다.



"낙랑 지역의 토광목곽묘,목곽분 및 전축분들에서 출토되는 철제 병기의 종류로는
장검,단검,대도,소도,'모'와 극,촉,대,철경동촉 및 찰갑편들이 있으며 이에 무기의 기능을
가질 수 있는 겸(鉗),부(斧),착(鑿)까지 포함시킨다면 이 시기의 전체적인 철제 병기류는
10여 종에 이르는 셈이다. 이러한 구성은 서한대 철제 병기류 가운데 상대적으로
희소한 피,구양,간(看) 등을 제외한 대부분이 망라된 것으로서, 다량화된 다량의 철제 병기로
무장한 낙랑 지역의 군사력은 정치,사회적으로 후진적 단계에 있었던 당시의 주변 세력들에게
가공할 위협이 되었음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낙랑 문화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215쪽







(낙랑국의 쇠뇌. 국립중앙박물관 낙랑실 소장)

(한나라 군대 고증)


(한나라 장군 고증)




(초록색 언덕으로 직사각형으로 빙 둘러진 것이 바로 평양 낙랑 구역의 낙랑 토성)

(낙랑토성의 모습. 이거는 무너져내린 토성의 모습이다. 원래는 토성벽이 더 높았고 견고했다.)



(낙랑군 세형동검의 철검 버전)


(낙랑군 철검)


(낙랑군 청동 쇠뇌)



마한에 대한 낙랑의 공세는 어떠하였을까.


낙랑은 함경도 강원도 일대에 분포하던 일부 말갈족에게 뇌물을 먹여 지속적으로 마한을 공략하도록 하였다.


"11년(b.c 8년) 여름 4월에 낙랑이 말갈로 하여금 병산책(甁山柵)을 습격하게 하여 쳐부수고 100여 명을 죽이거나

약탈하였다.

가을 7월에 독산(禿山),구천(狗川)의 두 목책성을 만들어 낙랑의 통로를 막았다."(삼국사기 제1대 백제 온조왕)

"17년(b.c 2년) 봄에 낙랑이 침범해와서 위례성을 불태웠다."(삼국사기 제1대 백제 온조왕)

"18년(b.c 1년) 겨울 10월에 말갈이 엄습해오니.."(역시 온조왕 년도의 기사)

"3년(서기 30년) 겨울 10월에 동부(東部)의 흘우(屹于)가 말갈과 싸웠는데. 마수산(馬首山) 서쪽에서 이기고 살획이 매우 많으므로

왕은 기뻐하여.."

"4년(서기 31년) 가을 8월에 고목성(高木城)의 곤우(昆優)가 말갈과 싸워 크게 이기고 200여 명의 목을 베었다."

"7년(서기 34년) 가을 9월에 말갈이 마수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불을 놓아 백성의 가옥을 태웠다. 겨울 10월에 또 병산책을

습격하였다."(이상 삼국사기 백제본기 다루왕)



 

진한 역시 낙랑의 침략으로부터 예외는 아니었다.

"13년(서기 36년) 가을 8월에 낙랑이 북쪽 경계를 침범하여 타산성(朶山城)을 함락시켰다."(삼국사기, 신라 제3대

유리 이사금)

"30년(b.c 28년) 여름 4월 기해일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낙랑 사람이 군사를 거느리고 침범해 왔다."(삼국사기, 신라 제1대 박혁거세 거서간)

"원년(서기 4년) 가을 7월에 낙랑의 군사가 이르러 금성(경주)을 여러 겹으로 포위하니"(삼국사기, 신라 제2대 남해 차차웅)

또 삼국사기의 백제본기를 보면 "18년(b.c 1년) 11월에 왕(온조왕)은 낙랑의 우두산성(牛頭山城)을 습격하려고

구곡(臼谷)에 이르렀다가 큰 눈을 만나 이내 돌아왔다"라고 적는다. 두산성은 강원도 춘천에 있다.

춘천에까지 낙랑의 세력이 미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신라는 낙랑의 침략을 물리쳐냈다. 삼국사기는 신라가 군사력이 강해서 이긴 것이 아니라 신이 신라를

도와줘서 낙랑이 신라의 덕에 감복하여 감히 치지 못하고 물러 갔다 한다.

그러나 사실은 신라 즉 경주의 진한 소국이 낙랑에 복속되었음을 의미한다.


"원년(서기 4년) 가을 7월에 낙랑의 군사가 이르러 금성을 여러 겹으로 포위하니 왕은 좌우에게 말하기를,
"선대 임금들이

승하하시고 외로운 내가 백성들의 추대를 받아 외람되게 높은 자리에 앉게 되니, 위태롭고 두려워 강물을 건너는

것과 같다. 지금 이웃나라가 침범해 오는 것도 나의 부덕한 탓이니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하니,

좌우가 대답하기를, "적이 우리가 왕이 죽어 장례를 맞아 나라가 소란스러운걸 보고 함부로 군사를 끌고 왔으니

하늘이 반드시 돕지 않을 것이니,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하였는데, 얼마 안되어 적이 퇴군하여 돌아갔다."

(삼국사기, 신라 제2대 남해 차차웅)


 

최종적 낙랑군 VS 한반도의 삼한 연맹의 전투결과는 참담한 패배였다.
 





영남 지역 즉 경상북도,경상남도의 진한,변한은 낙랑군의 영향 하에 예속되었고 마한은 초토화되어 취락들이
제대로 형성되지못하는 참담한 비극을 맞이하게하게되고 한강 유역엔 낙랑군의 멀티인 풍납토성이 설치되어
마한을 지속적으로 견제하고 삼한에게서 조공물을 뜯어 낸다.





"<기원전 1세기~기원후 2세기>  경기도 남부부터 충청도,전라도에 걸친 남한 서부의 대부분 지역에서
기원전 1세기~기원후 2세기의 유적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고 발견된 유적 조차도 소규모이거나 문화 내용이
미천한 상태여서 이 일대의 재지 세력들은 낙랑 설치 후 군사적 압력을 받아 해체된 후 중국의 군현이
약화되어 통제력이 이완될 때까지 장기간에 걸쳐 침체와 파행의 역사.문화 과정을 겪었던 것으로 판단됨."
 - 이남규 : "낙랑 지역 한대 철제 병기의 보급과 의미 논고 (동북아역사재단 '낙랑문화연구')


<기원전 2세기> 한강 유역에 풍납토성 축조. = 백제,마한과는 관련없는 정체불명의 성으로 풍납토성은
낙랑토성과 유사한 전형적인 한나라 토성이다.





"<기원전 1세기> 강원도 서부와 경기도 북부 지역의 경우는 낙랑과의 교류 관계가 상당 기간 유지됨."
 - 이남규 : "낙랑 지역 한대 철제 병기의 보급과 의미 논고 (동북아역사재단 '낙랑문화연구')

--> 경기도 북부는 낙랑과 친연 교류 관계. 풍납토성은 낙랑토성과 모양이 매우 유사. 이로 볼 때
풍납토성은 한강 유역을 지배하기 위한 낙랑의 군사 거점 혹은 낙랑에 부속된 마한의 소국일 가능성이 있다.



"<기원전 1세기> 영남 지역은 단면 삼각형 점토대토기 단계를 거친 후 낙랑군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아
금속기 문화는 재래적 청동기 문화와 새로운 철기 문화가 복합되고 토기 문화는 낙랑의 와질 토기로 급격히 변모.
분묘 문화는 목관묘가 보편적으로 보급되는 큰 변화를 겪게 된다. (...) 낙랑과 영남 지역은 서로
친연 관계였다."

 - 이남규 : "낙랑 지역 한대 철제 병기의 보급과 의미 논고 (동북아역사재단 '낙랑문화연구')


"영남 지역에서는 기원전 1세기 단계부터 철검,철모가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대구 팔달동 유적,창원의 다호리 유적)
목관묘에서 목곽묘로 묘제가 변천하면서 철기의 부장량이 늘 뿐만 아니라 철제 병기도 더욱 발달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영남 지역 철기 문화의 계기적인 발전은 낙랑과의 지속적인 관계 방식 속에서
전개되었던 것이다."

 - 이남규 : "낙랑 지역 한대 철제 병기의 보급과 의미 논고 (동북아역사재단 '낙랑문화연구')
 


"<기원전 1세기 낙랑 설치 이후> 주조 철부,주조 철착 정도의 간단한 공구를 사용하던 금강 유역권의 여러 집단들
문화가 낙랑 설치 이후 실종됨."
"<기원전 1세기~기원후 1,2세기> 금강,영산강 유역권에서는 유적들이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다. "

 - 이남규 : "낙랑 지역 한대 철제 병기의 보급과 의미 논고 (동북아역사재단 '낙랑문화연구')


"압도적 우위의 철제 병기를 보유하고 있었던 낙랑 무력 집단의 등장과 관련시켜 검토해보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다. 게다가 당시 말과 수레를 이용하여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는 기동력에서의 우월성은
낙랑군이 남한의 여러 세력들을 단기간에 유린하고 무력화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힘으로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당시 소규모의 고지성 취락을 이루며 산재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토대토기 집단들은 이처럼 막강한 군사력을
갖춘 낙랑 집단의 위협하에 실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려 있었을 것이다. 이후 내속에 응하지않아
낙랑의 무력에 희생당하는 사례가 속출하였고, 결국 남한의 서부 지역 상당 부분이 약 3세기 동안 가까이 불모화되는
파국의 상태에 빠지게 된 것...."
  - 이남규 : "낙랑 지역 한대 철제 병기의 보급과 의미 논고 (동북아역사재단 '낙랑문화연구')



"한韓은 세 종족이 있으니, 하나는 마한,둘째는 진한,세째는 변한이다.
마한은 서쪽에 있는데, 54국이 있으며, 그 북쪽은 낙랑, 남쪽은 왜倭와 접하여 있다.
변진(변한)은 진한의 남쪽에 있는데. 역시 12국이 있으며 그 남쪽은 왜와 접해 있다.
모두 78개 나라다 ...., 마한 사람들은..., 읍락에 잡거하며 성곽이 없다. 땅을 파서 움집을
만드니 그 모양이 마치 무덤같으며, 출입하는 문은 윗 부분에 있다. 서로 절할 줄을 알지 못하며
나이많음과 어림의 차례와 남녀의 분별 따위의 예가 없다."
-후한서 동이전 한韓


"진한은 ..., 진한의 노인들은 대대로 전하여 말하기를 "우리는 옛날의 망명인이다 ...
낙랑 사람을 아잔阿殘이라 하는데. 동방 사람들은 나我라는 말을 아阿라 하였으니
낙랑인들은 본디 그 중에 남아 있는 사람(진한인의 선조가 낙랑인이란 뜻.)  ... 그들의 말은 마한馬韓과 다르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한韓

--> 마한은 낙랑군에 정벌당해 야만 상태가 되어 더이상 발전을 못하게되는 상태에 놓임.
영남 지방에는 진한,변한이 있고 변한은 변진이라고도 불림. 진한,변한은 같은 진辰 계열의 종족. 고고학적으로
문화도 서로 유사하다. 그런데 진한인들은 자신들의 선조가 낙랑군이라 했고 망명인이라 했다.
진한은 낙랑 문화의 영향을 받아 많이 변화를 겪고 낙랑군의 침입도 겪으면서 낙랑군에 예속되게 된 것이다.
고고학적으로 보면 변한(가야의 전신前身) 역시 마찬가지였다.












끝으로 첨부 더하는 지도.  한사군 대륙설이 헛소리라는걸 증명해주는 짤방 (신채호 리지린 윤내현 이덕일 심백강 팔공산 증산도 환빠의 한사군 대륙설 헛소리를 
 다 날려버려준다.)

 


덧글

  • 천랑성주 2012/05/21 07:34 # 답글

    어허...그래요? 그럼 한반도에서 낙랑무기가 발견된 곳이 어디인지 한 번 설명부탁드립니다...특히 평양 이외의 지역에 초점을 맞추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마에스트로 2012/05/21 12:20 #

    천량성주 님. 그냥 관심병 환자의 정신없는 소리일 뿐이니 무시해 주셨으면 합니다. 굳이 님의 귀한 시간을 낭비하실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 제홍씨帝鴻氏 2012/05/21 12:24 #

    낙랑군 철기 문화나 문호가 북한강 유역,대구,경주,변한까지 진출해있는게 고고학적으로 확인됨.
  • 천랑성주 2012/05/21 15:08 # 답글

    피시시식...왜 낙랑 유적이 대구 경주 변한에 있는지 생각해보기 바람...I expected better, but guess not...
  • 제홍씨帝鴻氏 2012/05/21 19:56 #

    삼국사기 기록은 무시 ???
  • 제홍씨帝鴻氏 2012/05/21 19:56 #

  • ㅋㅋㅋ 2012/08/30 08:53 # 삭제 답글

    왜의 토착 인종들은 동남아인이죠, 그러다, 백제 , 고구려, 신라, 가야,발해, 고려 조선,이 차례대로 식민지배 했죠 100년 서양의 힘에 등입어 전쟁 일으키고 충실한 멍멍이 행세 한 기간 빼놓고는 한민족의 줄곧 노예였고, 곧 다시 그렇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 제홍씨책사풍후 2012/09/01 05:51 #

    신라 발해 고려 조선이 식민지배했다는건 오버구.. 고구려도 오버고. 백제 가야가 정답.
  • Unofficial 2013/05/23 05:08 # 삭제 답글

    먼 개소리지 이건. ㅡ.ㅡ;;
    한나라가 고조선을 무너뜨리고 설치한 4군중 3군은 멸망하고 오래동안 버틴게 낙낭인대.
    망해버린 3군은 어디가고 낙낭이 한반도를 다 지배해..
    그냥 한자쓰고 짤께가 되던가 창시개명하고 쪽바리가되던가..
    아님 영혼을 팔고 개독으로살던가 왜 구차하게 한글쓰면서 사는지 몰라..ㅡ.ㅡ
  • 제홍씨책사풍후 2015/12/29 04:00 #

    진번군 임둔군은 멸망한게아니라 낙랑군에 통합되었다고 후한서 동이 '예'전에 나옵니다.
  • 제홍씨책사풍후 2015/12/29 04:01 #

    현토군은 멸망한게 아니라 군 치소를 옥저함흥에서 고구려를 현縣으로 만들어버린 고구려현縣으로 옮기고 그후 다시 책구루 방면으로 옮기고 태조왕에게 쳐맞고 요동 옆 마을로 또 옮깁니다. 그렇다고 중국 기록 삼국지 동이전 후한서 동이전에 나옵니다. 잘 찾아읽어보세요.
  • 제홍씨책사풍후 2015/12/29 04:02 #

    락랑이 한반도 지배했다는건 삼국지 동이전에도 누차 나오고 삼국사기로도 증명되고 고고학으로도 증명되는겁니다.
    머 모르면 걍 닥치세요. 개새끼야 내가 왜 짱개 쪽바리냐 십새끼야?
  • 제홍씨책사풍후 2015/12/29 04:02 #

    넌 시발 영원히 조상숭배나 하며 살아라. 이 유교빠놈아. 한글은 세종이 만든거지. 대한민국이 만든게아니다.
  • ㅐㅐ 2014/07/07 00:19 # 삭제 답글

    또다른 동북공정 이네
  • 제홍씨책사풍후 2015/12/29 04:02 #

    니 맘에 안들면 동북공정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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