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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씨 선비족 기마병의 완벽한 복원 by 제홍씨帝鴻氏



4~5세기 신라는 선비족 기마족이 고구려를 경유해 건너와 세운 나라다.

신라의 무장 체계를 보면 선비족의 무장체계와 완전 똑같다.






(황남대총 금관)


(5~6세기 경주 5세기 중엽의 서봉총 금관. 여왕의 무덤이다.)


(경주시 황오동 361번지 4~6세기 무렵 신라 지배층 공동 묘지 쪽샘지구 목곽묘에서 출토된 중장기병의 갑옷,마구)


(4~5세기 신라 마면투구馬面套具)


(경주 황남대총 금동 말 안장)









(모용씨 선비족의 삼연 문화三燕 文化 목곽묘와 목곽묘에서 출토된 유물들)




(모용씨 선비족의 삼연 문화三燕 文化 금동 말 안장)



(모용씨 선비족의 삼연 문화三燕 文化 황금관(금제 보요관) )


(삼연문화 중장기병의 비늘갑주. 광개토태왕비에도 후연의 군대는 개갑기병으로 묘사되어 있다. )




(삼연 중장기병)





(모용씨 선비족의 삼연 문화三燕 文化 조양 십이대영자 88M1 무덤에서 출토된 삼연 문화 마면투구)



(모용씨 선비족의 삼연 문화三燕 文化 조양 십이대영자 88M1 무덤에서 출토된 삼연 문화 마면투구)




다만 선비족의 비늘갑주는 발견됐으나 투구는 아직까지 발견되었단 보고가 없다. 그래서 의문이지만
4~5세기 (혹은 4~6세기)  신라의 투구는 발견되었다.






고구려계 투구와는 전혀 다른 이 투구는 도대체 어디서 기원한 것일까?


관련 자료를 더 찾아보자. 당시 신라와 동시에 존재하던 임나가야도 모용씨 선비족의 라마동고분군 계열의 동복이나 기타
유물들이 출토되고있어 라마동고분군의 문화를 전파받았음을 알 수 있는데. 놀랍게도 임나가야의 무장체계도 선비족이
이동하여 세운 신라의 무장체계와 똑같다.

5세기 전반 임나가야의 기마인물형 토기를 보자.




위에가 뻥 뚫리고 반이 잘린 이상한 투구는 사실 위에다가 모자를 씌우는 용도로 쓰인거다. 저런 서양식 모자를
쓰기 좋아하는 무장 체계는 5~6세기 야마토 고분의 토용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신라,임나가야의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 5~6세기 야마토 고분 시대 하니와(토용) )



                                                    ( 5~6세기 야마토 고분 시대 하니와(토용) )




그렇다. 4~5세기 모용씨 선비족의 기마병은 바로 이러한 모습이었다. 







모용씨 선비족이 4세기 후엽 고구려를 복속시키고 경주로 이동해 세운 신라는 기마병 체계를 모용씨 선비족을 대부분
닮도록 하되 임나가야의 판갑을 받아들여 방어력을 높였다. 그것이 바로 밑의 사진.










광개토태왕은 바로 이 선비족의 피가 많이 들어간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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