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 맥 , 옥저 , 발 숙신 , 헌원 , 신농 , 유융 , 산융에 대한 분석 by 책사풍후미나모토




예 , 맥 , 옥저 , 발 숙신 , 헌원 , 신농 , 유융 , 산융에 대한 분석


예의 발음은 '후이'입니다. 맥의 발음은 '코마'입니다.
맥은 곰돼지혼종같이 생긴 동물이고 

후이(예)는 부여 부루 비류 후루 라는 말과 같습니다.

맥은 예의 별종입니다.
즉 이 말은 고구려인은 부여인의 별종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북부여는 부여, 동부여는 동예입니다 

옥저 예 맥은 다 같은 조선족이라고 삼국지 후한서 동이 예 옥저 편에 나옵니다.

옥저의 후손은 낙랑후국을 세우고(그중 하나가 최리)
동예는 대소 금와 
맥은 졸본부여 혹은 고구려 부락을 이루고살다가 한나라 현토군의 고구려현이 됩니다. 이후 '추'라는 제후의 영도를 받아 
현토군에서 독립하기위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 (흉노 정벌 신나라군의 군진에서 탈영)


맥은 구려라고도 하고 그중엔 조선호胡(요동 정가와자 문화)란 자들도 있습니다. (요동 험독의 만왕滿王)

요서 창려 도하에 있었다고하는 고죽조선(기자조선)은 '요서 대릉하 창려 도하 땅의 위영자 => 십이대영자 => 동대장자 문화'입니다.

발 숙신은 고태산 문화와 관련지을수있습니다.

발 숙신은 발 조선이라고도 불렸습니다. 발은 숙신족의 일종이고 그들이 조선 그러니까 요동 일대의 범가죽 자원을 주도했다고 볼수있겠습니다.
그들은 '말갈' 혹은 '읍루'라 불렸고 옥저 예는 말갈을 두려워하였습니다. 말갈의 활동반경은 넓었습니다.
발 숙신은 웅雄이란 신이 항상 있다고 믿으며 백두산의 장승을 그 신의 화신으로 숭배했습니다.
환웅이 바로 그 웅이며 퉁구스족의 시조 신 하다우 혹은 아도는 어떤 관련이 있다 볼수있겠습니다.

발은 요서 하북에선 '박'으로 활동했다합니다. 
붉은 물에서 격리되어 살았다는 황제헌원의 딸이자 가뭄의 여신인 '발' , 헌원의 땅 탁록이 북경인데 북경 묘저구가 홍산문화의 멀티 인점 
뉴허량의 여신이 뉴허랑 부락과는 좀 떨어진 지역에 별도의 신전 속에 격리된 상태인 점
여러가지로 볼때 빗살무늬토기를 만든 신석기 시대 발 숙신 하플로 n은 요서에서 유웅씨 부락을 이루고 살다가 
황하 서북부 앙소문화 신농씨 (하플로는 밝혀지지않았으면 주나라가 하플로 q인걸보면 앙소의 지배층도 q일수도)의 채색도자기 문화를 받아들이고 유럽의 쿠쿠테니 문화의 채도를 유라시아에서 온 새로운 하플로 n(유융씨=하가점하층문화)을 통해 받아들여서 요서의 발 혹은 박(홍산 부락)은 발전합니다.
중원의 o3 짱개가 북진하여 홍산 부락으로 많이 와서 연인의 조상이 되는데 홍산 부락에서 그들의 씨족신 전욱,제곡을 숭배합니다.

산동 가상현 무씨사 화상석과 사마천 사기 오제본기는 서로 비슷한걸 말하는데 
바로 풍백 우사 뇌공을 이끄는 수령 유웅씨(헌원)와 중원인(인육짱개 도철씨)의 충돌 과정 중에서 중국의 선사시대가 발전되어 갔다는 것입니다.
숙신은 하북 지역에도 살았으며 공자 역시 숙신씨의 화살을 받을 정도로 교류가 있었습니다.

이런 하플로 n의 역사는 문자로 기록되지못하고 신화로 남아서 중국 편 이야기는 헌원씨 이야기로 , 
만주 편 이야기는 단군신화로 정리되었다고 보면 정리가 깔끔한거같습니다.

하가점하층문화는 은나라의 조상인 유융씨로 봐야합니다.
요서 지역에서 홍산~소하연~하가점하층~상층 시대에 걸쳐 나오는 하플로 n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박(숙신)족(홍산) 유융(하층) 산융(상층) 이렇게 구분해서 볼수있습니다.




* 이글루스 역밸 초록불 패거리들은 어리석고 무지한 환빠들을 이렇게 훈계할 생각을 하지않고 
비웃기만하며 역사를 열심히 파보지않고 모르면 그냥 덮고 생각치않고 새로운 발상을 안하니 
실로 필부들 아닌가? 







덧글

  • 역사는 지도다 2017/03/03 14:00 # 답글

    신라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많네요.
    http://qindex.info/drctry.php?ctgry=1763
  • 책사풍후미나모토 2017/03/03 14:54 #

    지도 감사합니다.
  • 책사풍후미나모토 2017/03/03 14:55 #

    진나라 잔민 얘기는 낙랑예족이 진시황에게 복속되어 만리장성 부역을 명받았는데 그때 진나라 사람들과 함께 경주로 간거같습니다.
    일부는 그대로 평양에 남았습니다
  • 中国分割工程 2017/03/08 19:42 #

    보통 진의 고역이라고 하면 진나라 말기의 내란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해 왔는데 진장성을 쌓는 일로 해석할 수도 있겠군요.
    마침 진장성이 낙랑 수성에서 시작되었다는 기록도 있으니 그쪽 장성을 쌓는 일은 당연히 낙랑 사람들을 동원했겠죠.
    http://kallery.net/s.php?i=626
  • 책사풍후미나모토 2017/03/09 13:27 #

    북한 지역 장성 쌓는 일에는 소수 진나라 기술자들과 많은 수의 진나라 군인 그리고 다수의 낙랑예족들이 동원되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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